7. 41대 총학생회 교육투쟁 파행

지난 2004년 3월 17일 ‘41대 통일연세 총학 해오름식, 연세인 총궐기(아래 해오름제)’를 통해 정식으로 출범한 41대 총학생회(아래 총학). 총학의 홍보 부족과 학생들의 무관심으로 출발부터 순조롭지 않았던 해오름제처럼, 학생들의 복지와 밀접한 교육투쟁에 있어 총학은 계속되는 난항을 겪었다.

총학은 총장후보 5명의 ‘등록금 예고제 실시’ 공약 비판, 등록금 동결, 반성폭력 학칙 개정 등을 요구하며 지난 3월 31일 ‘8주기 노수석 열사 추모제―3·31 통일연세 총궐기’를 한 뒤 본관을 점거했다. 그러나 당시 본관점거는 총장의 부재와 실처장 이취임으로 인해 협상대상이 부재한 상태였고, 궐기 초기와 달리 시간이 지날수록 본관점거에 학생들의 참여가 저조해져 갔다. 지난 4월 8일 ‘차기총장 불신임’이 안건으로 예정돼 있던 ‘0408 통일연세학생총회(아래 총회)’는 2천명의 성원에 못 미치는 1천12명의 학생들만이 참석해 무산됐다.

이날 총학은 회의를 통해 ▲학생들이 배제된 총장선임과정 ▲총장후보들의 등록금 예고제 등에 대해 반대하며 이를 표결에 부치고자 했다. 전 총학생회장 배진우군(수학·휴학)은 “총회 목적을 학생들에게 절박한 문제로 인식시키지 못했고, 안건을 토론하는 실질적 단위활동이 부족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해 학생들의 관심을 끌어내지 못했음을 인정하기도 했다.(2004년 4월 12일자)

지난 4월 29일에는 15대 총장으로 임명된 정창영 총장과 총학대표들이 만남을 가졌다. 하지만 이 자리는 등록금을 비롯한 학생 요구안에 대해 서로의 입장을 확인하는 데 그쳐 합의를 도출하지 못했다.

이튿날인 지난 4월 30일 전 학생복지처장 백태승 교수(법과대·민법)는 중앙운영위원(아래 중운위원)들에게 ▲등록금 인상율 9.5%에서 6.5%로 조정 ▲총장선출연구위원회에 학생대표 참여 ▲재수강제도 제도개선팀 등의 내용을 포함한 협약서를 제시했고, 중운위원들이 이를 받아들임에 따라 협약서가 긴급 도출됐다. 이에 일부 학생들은 교육투쟁이 확장된 의견수렴 과정을 거치지 못한 상태에서 주말에 갑작스러운 합의를 이뤄낸 점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학내 조직 ‘무일푼’은 ‘연세교육투쟁대책회의(아래 교투회의)’를 조직하고 협약서 가부를 묻는 총투표를 요구했다. 총투표는 5월 24일부터 이틀 동안 실시됐으나 투표율이 50%를 넘지 못해 협약서는 학생들의 무관심에 의해 자동적으로 가결됐다.(5월 31일자)

한편 총학은 지난 4월에 도출된 협약서 내용 중 등록금, 총장선출제도, 재수강제도 등과 관련된 이행사항을 지난 10월 3차 교수학생협의회(아래 교학협)를 통해 학교측과 점검하는 시간을 가졌다. 교학협에서는 ‘등록금책정자문위원회’가 자문기구에서 심의기구로 승격되고, ‘총장선출연구위원회’를 구성해 학생대표의 위원회 참여를 보장했으며, 재수강제도 개선팀을 꾸려 추후 협의를 진행하겠다고 밝혀 학생들의 권리확보에 힘을 싣기도 했다.

하지만 41대 총학은 지난 2003년부터 학교측과 총학이 유보해 온 재수강제도에 별다른 의견수렴 등의 움직임을 보이지 않다가 뒤늦게 반응하는 등 학생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교육투쟁 과제를 성실하게 수행하지 못했다. 결국 재수강제도 논의 등의 과제는 42대 총학에게 넘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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