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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에서 질서로- 1월 1일, 그 시작의 계기
  • 이종찬 기자
  • 승인 2005.01.01 00:00
  • 호수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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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일 새해가 밝았다. 세순이는 지난 달력을 걷어버리고 ‘2005년’이 시원스레 찍혀 있는 새 달력을 벽에 건다. 어제와 달라진 건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은데 세순이는 왠지 기운이 솟아오르고 활력이 넘친다. 그러나 12월 31일 붉게 저문 해는 1월 1일에 ‘새’해가 돼 나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12월 31일, 재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새해를 기다린다.


우리는 지구의 자전에 하루를 맞추고 달의 공전에 한 달을, 그리고 지구의 공전에 한 해를 맞춘다. 그러나 천문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한 이러한 달력체계에도 오차가 존재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윤달과 윤시 심지어 윤초까지 마련해 인위적인 시간 구분에서 오는 부정확성을 만회하려 했다. 그런데 사실, 근대 과학을 바탕으로 한 서구의 시간 개념이 전세계를 지배하기 전까지 이러한 시간 구분은 무의미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농사일과 관련되는 계절을 파악할 수 있을 정도의 시간 구분이면 충분했다. 건너마을 오서방은 해질녘에 만났고, 갑순이는 산 속 부엉이가 울 때쯤 만나면 됐다. 사람들은 시간이 끝을 향해 날아가는 화살이 아니라, 반복되는 계절의 흐름 속에서 돌고 도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처럼 각 사회는 자신들만의 방법으로 시간을 인식했다. 리차드(E.G Richards)는 『시간의 지도: 달력』이라는 책에서 시간과 달력을 구분한다. 그에 따르면 달력은 시간을 안내하는 지도다. 고대 그리스의 제논과 같은 철학자들은 무한히 나뉘는 시간에 대한 수수께끼를 몇가지 던졌다. 그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2004년 12월 31일 0시는 2004년일까, 2005년일까? 0시라는 것이 존재하기는 할까? 우리는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0시를 지나 2005년으로 들어간다. 1월 1일의 의미 역시 마찬가지가 아닌가? 이러한 질문은 연결돼 있는 시간을 인위적으로 구분지어 놓는 데에서 생기는 역설 중 하나다. 그러나 우리는 달력을 통해 무한한 공간에 깃발을 세움으로써 역사를 만들고 사회를 꾸려나갈 수 있었다. 리차드는 달력을 “지나간 날과 다가올 날에 이름을 붙여주는 체계적인 방법으로, 우리 인간들이 만들어낸 발명품이다”라고 평했다. 우리는 모든 것을 언어를 통해 분절화시켜 세상을 인지하기 때문에, 시간 역시 끊어 놓지 않으면 인식할 수 없다.


소중한 사람과 함께 있을 때 시간이 평소보다 더 빠르게 느껴지는 것 같이, 우리가 느끼는 시간은 사회가 끊어놓은 시간의 구분과 관계없이 흐르기도 한다. 윤우식 교수(문과대·철학)는 “시간은 기본적으로 인간의 의식과 관련이 있다”며, “생성과 소멸의 절대적 시간 속에 있는 우리지만, 우리 의식 속의 시간은 무한히 늘어나기도, 줄어들기도 한다”고 말한다. 이렇듯 우리 의식의 시간 속에서 시간의 잣대는 오로지 ‘나 자신’이 된다.


한편 사람들은 이와 같이 카오스적 혼돈에서 코스모스적 질서로 넘어가는 의례로서 시간에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윤교수는 “1월 1일은 사람들에게 지금까지 매듭짓지 못한 일에서 벗어나 새로운 결단을 내릴 수 있도록 한 시점을 마련해 준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이어 윤교수는 “작심삼일이라도 1월 1일 새해 계획을 세운다는 것 자체가 자신의 삶을 맹목적인 시간의 순환과정에 던지지 않고, 자신을 시간의 주체로 세운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고 덧붙였다.


우리의 시간은 절대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고 우리의 의식 속에서 형성되는 것이다. 꼭 1월 1일에만 모든 시작이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시간에 의미부여를 하는 매순간이 새로운 시작이다. 매주 월요일이, 매일 아침이 새해 1월 1일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1년에 한번 뿐인 1월 1일을 넘어서, 시작의 기회를 얼마만큼 만들어낼 수 있는지는 결국 자기 자신에게 달려 있다.

이종찬 기자  ssucy@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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