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작품 속의 새해맞이

손끝부터 느껴지는 차가운 겨울 바람에 외투 단추는 꼭꼭 잠궈도, 마음만은 활짝 펴고 싶어진다. 그것이 바로 ‘새해’라는 두 글자가 불어넣는 희망의 마력이다. 새해를 앞두고 불행을 떠올리거나 어둠을 생각하는 이는 없다. 새해가 되면 사람들은 방학을 맞이한 어린아이가 일일계획표를 짜듯 한 해에 이루고픈 계획을 세운다. 이들의 새해 스케치처럼, 시인들은 원고지 위에 새해를 맞는 마음을 담아낸다. 그들은 자신을 향한 다짐을 하거나, 새해의 마음가짐을 끝까지 이어가길 소망하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새해를 시작하기도 한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정월의 보름달만큼만 환하고 둥근 마음/ 나날이 새로 지어 먹으며 밝고 맑게 살아가는 희망의 사람이 되게 해주십시오.
― 이해인 「새해엔 이런 사람이」

「새해엔 이런 사람이」라는 이해인 수녀의 시는 조용한 기도를 통해 시인의 새해 소망을 보여준다. 한 해를 시작하며 지핀 너그러움과 여유, 그 따스함처럼 좋은 사람이 되겠노라 기도하는 시인에게서 희망과 정겨움이 느껴진다. 일상을 멈추고 어려움과 고통을 잠시 잊게하는 1월 1일의 휴식은 ‘새해’가 주는 작은 선물이다. 시인은 새해를 지난 한 해의 ‘마침표’가 아닌 내일을 위한 ‘쉼표’로 바라보며, 이 쉼표는 내일을 향한 원동력이 된다.

오늘은/오늘에만 서 있지 말고,/오늘은/내일과 또 오늘 사이를 발굴러라.
― 김현승 「새해 인사 」

소망을 통해 다짐한 내일을 향한 단단한 의지는 김현승 시인의 「새해 인사」에 잘 나타난다. 어제가 오늘이 되고, 오늘이 내일이 되는 과정에서 ‘발을 굴러야’한다는 시인의 목소리엔 힘이 실려있다. 새해가 주는 그 생동감과 의지를 오늘과 내일 사이에 새기며 살아가라는 시인의 ‘새해 인사’는 새해를 맞는 모든이에게 가치있는 덕담이 된다. 내일을 위한 발구르기. 그 마음과 다짐을 끝까지 이어가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또박또박 시작한 노트도 그 끝무렵엔 삐뚤빼뚤한 글씨로 채워지던 경험처럼 새해 첫날의 다짐을 마지막까지 이어나가는 일은 참 어렵다. 수첩이나 일기장에 적어둔 목표, ‘금연’이든 ‘체중감량’이든 그에 대한 의지는 처음에만 불타오를 뿐, 점점 그 불씨를 잃어가기 마련이다.

새해가 오면 끝까지/부끄럽지 않게 해주소서/아이들과 꽃, 구름과 별/ 풀과 나무, 착한 짐승들에게
― 나해철 「새해가 오면」

한 해의 출발선을 지나고 나면 어느새 첫마음은 희미해진다. 나해철 시인의「새해가 오면」에서는 이처럼 첫마음을 이어가지 못하는 세태를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가 드러난다. 시인은 해맑은 아이들과 순수한 자연에게 부끄럽지 않은 한 해를 꾸려나가겠다고 말한다. 청명했던 새해의 마음에 먼지가 내려앉을 때마다 아이들의 미소를 떠올리고, 갓 피어난 꽃봉오리를 바라본다면 흐릿해진 마음도 닦여질 것만 같다.

눈에 덮여도/먼동은 터오고/바람이 맵찰수록/숨결은 더 뜨겁다
― 신경림 「정월의 노레

새해가 겨울 한가운데 자리한 것은 나름의 깊은 뜻이 있어서일지도 모르겠다. 눈 덮이고, 바람이 몰아쳐도 새해의 아침을 바라보며 시인은 뜨거운 숨결을 내뱉는다고 말한다. 겨울의 추위도, 삶의 고통도 다시 한번 뜨겁게 부딪혀 보라고 새해는 한겨울에 자리하지 않았을까. 시인은 그 이유있는 ‘부딪힘’이 한 해는 물론, 생을 지탱할 뿌리를 낳길 소망하고 있다. 시 속의 생명과, 사람이 생동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2005년에는 연세인 모두가 벅찬 마음으로 새해를 열어 젖히고, 거센 바람에도 쓰러지지 않을 자신을 길러내길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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