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영수증'의 주인공을 만나다

‘혼자 살 때보다 지아랑 살면서 좋은 점은 밥을 먹을 때 젓가락으로 두 장 짚게 된 깻잎의 아랫잎을 붙잡아 준다는 것이다. 나를 붙잡아 주는 지아와 함께 ─2001년 7월 12일 오후 9시 35분 슈렉2장 1만4천원 메가박스.’

영수증을 통해 자신의 일상을 들여다보는 한 여자의 이야기를 담은 『정신과 영수증』 중 한 구절이다. 이 책의 주인공은 바로 정신(본명 정경아). 그녀는 자신이 산 물건을 통해 일상을 기록하고, 이를 책으로 펴냈다. 그녀는 왜 영수증 일기를 쓰는 것일까.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 자신의 일상을 기록한다는 것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

─잊혀지지 않는다는 것. 기록된 것은 잊혀지지 않아요.

▲ 영수증 일기를 처음 봤을 때 참 신선하던데, 어떤 계기로 시작했는지.

─5년 전 스물 세살 때 법인회사를 운영하고 있었어요. 관리팀에서 정산에 영수증이 필요해 그냥 무심히 모으게 됐는데, 모으다보니 이 영수증이 한컷 한컷의 필름 같은 거예요. 어제의 영수증이 또 다음 이야기를 만들고, 소비가 멈추는 날까지 계속 찍어 나가는 필름 말이죠. 그 필름에 관한 이야기를 쓰기 시작한 것입니다.

▲ 영수증 일기를 쓰면서 겪었던 에피소드 하나 말해 준다면.

─2001년 겨울 파리에 살면서 라는 가게에서 사진첩을 샀어요. 그런데 전 집에 돌아와서 너무 많이 아팠어요. 그 때 그 사진첩을 계산해 주던 점원이 다시 보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젓가락을 집지 못할 만큼 아팠고, 친구들도 걱정했습니다. 진지해진 나와 친구들은 영수증에 있는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고 그 점원이 전화를 받았어요. 다행히 서로를 기억하고 있었고, 불어를 잘하는 제 친구가 데이트 신청을 해서 우리는 또 만날 수 있었습니다. 파리의 슈퍼마켓, 카페에서 우리들은 데이트를 했고, 크리스마스 이브날 그 점원의 가족 식사에 초대됐죠. 그 해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었어요.

▲ 영수증 일기를 쓰는 데 기쁨이 있다면.

─제 이야기가 삶과 사실에 기반을 두고 진행되는 것이 가장 큰 기쁨이에요.

▲ 영수증 일기를 통해 앞으로 이루고픈 일이 있다면.

─제 작업은 어디에서 생활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작업이에요. 알래스카에 살면서 냉장고를 산 영수증에 대해 쓸 수 없듯이 말이죠. 이건 작년 여름 유럽여행을 하면서 더욱 느꼈어요. 런던에서는 밤마다 클럽에 가고, 네덜란드에서는 제일 먼저 반고흐 미술관을 찾았죠. 이렇게 장소라는 것은 제 프로젝트의 핵심입니다. 일본이나 뉴욕에 살면서도 이 작업을 계속하고 싶어요. 제가 이 작업을 마치고 죽으면 먼 미래의 사람들이 ‘아, 이 시대에는 국수 한 그릇에 얼마였구나, 영화 한 편에 얼마였구나’라고 생각하겠지요? 평생 모은 영수증은 제가 좋아하는 어느 미술관에 기증할 거예요.

 

그녀는 군대에 가 있는 동생에게 어린 시절 썼던 다이얼 비누를 사주며, ‘너도 이 거품냄새에게 부탁해 다시 가보고 싶었던 다섯살에 다녀올 수 있을거야’라고 영수증 일기를 기록한다. 너무나 흔해 소홀히 여길 수 있는 영수증에 자신의 삶을 차곡이 개어 놓는 그녀의 모습에서, 삶을 지극히 사랑해 그 순간들을 오래 간직하고 싶어하는 순수한 애정이 묻어났다. 앞으로 하나하나 늘어갈 그녀의 영수증에 어떤 사연이 담겨질지,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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