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오르세 미술관에서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을 보며 감탄한 다음날, 고흐가 마지막으로 살았던 마을이자 그가 잠들어 있는 곳, 파리 근교의 오베르 쉬르 우아즈(Auvers-sur-Oise)를 찾았다.

기차역을 벗어나자 곧 시청이 보였다. 크기는 동사무소 정도인데, 그 앞에는 그림이 그려진 팻말이 있었다. 고흐의 오베르 시청 그림을 세워 놓은 것이다. 고흐가 살았던 집인 라부여인숙과 근처의 골목, 그의 친구인 의사 가셰의 집 앞에도 비슷한 팻말들이 서 있었다. 그림의 무대가 된 곳에 그림을 전시하는 것. 19세기 풍경과 지금의 그것은 분명 다르지만, 그럼에도 다르지 않은 무언가가 보이는 듯 했다.

한가로운 전원을 걸으며 느긋하게 사진을 찍고, 우아즈 강가에서 “안녕하세요”란 한국어 인사말을 할 줄 아는 프랑스인도 만나고, 매일의 일과인 듯 길도 한 번 헤맨 뒤 다시 고흐의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고흐의 유명한 그림 중 하나인 '오베르 교회'까지 둘러보았다. 오베르 교회를 지나, 어둡고 좁은 숲길을 걸어 올라갔다. 한 걸음, 한 걸음. 어느새 눈앞이 환해지면서 밀밭이 펼쳐졌다. 나는 잠시 숨을 멈추었다. 마지막 작품인 '까마귀'가 나는 밀밭좦과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여전히 그곳은 밀밭이고 검은 새가 날고 있다. 나는 시간을 거슬러 온 것인가? 그림이 그려진 캔버스 안에 들어와 있는 것 같다.

예술이 자연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 예술을 모방하는 것이며 예술이 자연을 발견토록 한다’는 오스카 와일드의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고흐의 그림과 생애가 없었던들, 내가 저 밀밭을 이토록 아름다운 맥락과 의미로 읽어낼 수 있었을까.

마지막 그림의 무대이며, 고흐가 자신의 몸에 방아쇠를 당긴 장소인 그 밀밭 길을, 그의 묘지로 향하는 그 길을, 손을 늘어뜨린 채 걷는다. 손끝에 간신히 와 닿는 밀 이삭의 까칠한 촉감이, 나를 다시 현실로 불러냈다.

밀밭을 지나면 공동묘지의 입구가 보이고, 묘지의 구석 한 귀퉁이에 빈센트 반 고흐와 동생 테오의 무덤이 나란히 있다. 그의 무덤을 보았을 때의 느낌은, 딱 알맞다는 것. 너무 화려하지도 너무 초라하지도 않게 그렇게. 빛나는 초록의 잎사귀들이 둘의 무덤을 감싸고 있었다. 무덤 위에 갈대 같은 것들이 놓여 있어 무얼까 유심히 살펴보았더니, 밀 이삭이었다. 아마도 고흐의 순례자들이 밀밭에서 꺾어다 놓은 것이리라. 변덕스런 날씨 탓에 3,4초 간격으로 햇살이 비쳤다 말았다 했다. 쓸쓸해 보이게 싶지 않아 해를 기다려 사진을 찍었다.

4주 가량의 여행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 중 하나는 이렇게 끝을 맺었다. 시간을 뛰어넘어 열정의 예술가를 만났던 초월적 순간 여행은 때로 마법을 부린다.

/김정민(신방·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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