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특집
<2004 연세문화상 당선작> 『잔칫날』

은 날이었다. 때때로 뺨을 스치고 지나가는 삭풍(朔風)은 언뜻 눈물이 어릴 만큼 날카로웠으나, 새파란 겨울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화창하게 개어 있었다. 재래식 농가의 부엌 쪽으로 걸어가던 사내는 문득 고개를 들어올렸다. 추위가 위력을 떨치는 한겨울이라 그런지 햇살조차도 창백하게 빛나는 것 같았다. 사내는 파르께하니 빛나는 햇살이 추수철만 되면 매가리 없는 얼굴을 하고 밭두둑에 앉아있던 어떤 계집아이를 닮았다고 생각했다.
사내는 어려서부터 그 계집아이를 좋아하였다. 논두렁을 지나쳐 읍내에 갈 때면 늘 계집아이를 떠올리며 장터를 기웃거렸고, 몇 안 되는 또래들과 어울려 쏘다닐 때에도 사내아이는 계집아이의 물기 어린 새까만 눈과 제 무릎을 그러모으고 있던 작고 가느다란 손매를 마음에 품고 있었다. 세월이 흘러 파릇하니 까까머리를 하고 지내던 열다섯의 겨울날, 사내아이는 계집아이를 좋아하는 제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그이를 불러내었다.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겨우 꺼낸 말은 참으로 못나게도 계집아이가 아닌 이곳이 좋다는 소리였다. 사내아이의 어설픈 고백 앞에서 계집아이는 이렇게 대답했었다. ‘내는 여가 마 죽을 정도로 싫다.’ 모질게 내치는 계집아이의 말 앞에서 사내아이는 그저 입을 다물었다. 계집아이가 좋아서 이곳이 좋다는 자신의 말처럼, 이곳이 싫어 여기 살고 있는 사람들 또한 싫다는 계집아이의 닫힌 마음을 그 한 마디로 깨우친 까닭이었다. 싸늘한 거절 앞에서 힘없이 눈길을 떨어뜨렸던 사내아이가 껑충하니 자라났듯이, 어린 날의 단발머리 계집아이 또한 훌쩍 커서 이제 혼례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아후우웅. 요새는 뭐 하노? 순이 가스나 시집보낸다고 많이 바쁘제?”
한 차례 늘어지게 기지개를 편 다음 눈곱을 떼어내는 동갑내기 친구 동일을 보고는 사내는 비죽이 웃었다.
“암만 그래도 순이 가스나가 뭐고? 사촌 누부한테. 인자는 시집도 가는데. 그러고도 가스나 가스나 할끼라?”
아직도 계집아이의 일을 입에 올릴 때면 가슴이 저려오는 사내였다. 그러나 그는 스스로의 마음을 모른 척 순하게 대꾸했다. 그런 사내의 말에 동일은 머쓱한 듯 툴툴거렸다.
“사촌 누부는 무슨 누부로? 갑장이고 지캉내캉 빨가벗고 컸는데. 새삼스럽구로 누부라 카는기 되나? 남진이, 니는 뭐라카노?”
“나는 안 부른다 아이가. 나중에 알라 낳으면 아 엄마라 카지 뭐. 저거 남편이 김씨라카이 김실이라 하던가.”
“김씨? 김씨라 카드나? 이름은 뭐로?”
“대의라 카든가 대리라 카든가. 뭐 그랬는데 잘 몰것다.”
얼마 전에 군(軍)에 간 동일은 정말 시기적절하게 휴가를 나왔고 동리에 몇 남지 않은 또래의 친척 중의 한 명인 순이가 시집간다고 동네가 시끌벅적한 틈을 타 놀기 좋아하는 본성을 살려 밤낮으로 놀고 다녔다. 지난밤만 해도 새벽까지 부어라 마셔라 진탕 놀다가 잠이 들었으니 해가 중천에 뜬 지금에야 일어 난 게 어쩌면 당연한 건지도 모른다고 남진은 생각했다.
“니는 뭔 술을 그래 마시노? 고마 좀 작작 처 묵으라. 그카다 간이 부아 죽는데이.”
남진은 걱정이 되어 잔소리를 했지만 동일은 언제나 그러하듯 마이동풍이었다.
“젊어 한 때 아이가. 지금 안 놀면 언제 놀끼고? 나 제대하면 니 먹이 살릴라꼬 돈 많이 벌낀데. 그라면 놀 시간이 있겠나?”
“니가 와 날 먹이 살리노? 내 꺼는 내가 알아서 벌어먹는다. 걱정하지 마라.”
쉴 새 없이 손을 움직여 아궁이를 만들고 솥을 걸어 잔치 준비를 하면서도 남진은 동일에게 타박을 해댔다. 그런 그를 보면서도 동일은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움츠리기만 했다.
“아이고 추버라. 문디 가스나. 꼭 결혼을 해도 이 엄동에 할끼 뭐로? 따신 봄에 갈끼지.”
“춥나? 일로 온나. 아궁이 다 됐다. 불 지피 주께 몸 좀 녹이고 있그라. 나는 솥단지 가지러 갔다 오께.”
“오야. 니 없는 동안에 내가 아궁이 잘 보고 있으께.”
말을 하는 동일의 입에선 허연 입김이 술술 번져 나오고 있었다. 남진은 솥단지를 찾으러 나서면서도, 순이가 식을 올리는 모레까지는 눈이 안 와야 될 텐데 하고 생각했다.

람들이 모여들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순이는 어디에 그리 복이 있어 저런 신랑을 만났냐는 둥, 선본 자리가 그리 좋은 자리였다는 둥 하는 소리가 조금 떨어져 있는 남진의 귀에까지 들려올 지경이었다. ‘저 봐라. 인물 훤칠하제, 돈 잘 번다카제, 빠지는 구석이 없는 기라.’는 소리가 귓가에서 또렷하게 울리자, 남진은 몸을 털고 일어났다. 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이 난리인지 궁금하여 그는 일손이 잡히지 않았던 탓이다. 그는 사람들이 몰려서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검은 색 세단에서 내리는 사람은 모레면 새신랑이 될 사람이었다. 남진보다 작은 키였지만, 번듯한 양복차림에 머리까지 완전히 뒤로 넘기고 몰려든 사람들의 시선을 태연스럽게 받아넘기는 모양새가 아주 굳건해 보였다. 평균에도 못 미칠 것 같은 그 체구가 외려 돌조각처럼 단단하고 탄탄해 보여 남진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 남진아 인사해라. 너거 자형 될 사람이다. 처음 보제?”
친척 아저씨가 남진을 사내에게 소개시켜 주었다.
“자네 안사람 될 순이하고는 사촌이네. 나이는 같아도 생일이 순이가 빠르니까 누부는 누부지. 고마 처남카믄 되네.”
“안녕하십니까? 김대윕니다. 처음, 보는군요.”
평소에는 사내자식이 서울 말 같은 것 쓰면 고추 떨어진다고 생각해온 남진이었지만, 자형될 사람이라 그런지 아니면 주눅이 든 탓인지 간지러운 서울말조차 멋지게 들렸다.
“지는 이남진입니더. 고마 차가 억수로 좋네예.”
달리 할 말이 없어 차가 좋다느니 어쨌다느니 하는 말을 하긴 했지만 모자란 녀석으로 보는 건 아닌지 조바심이 일었다. 대의에게 만큼은 시골의 무지랭이 촌뜨기로 보이기 싫었다.
“하하. 뭐 그렇죠. 서울엔 이런 차들이 널렸어요.”
“네엡….”
남진은 말끝을 흐리며 꾸벅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등 뒤로 무슨 소리인가가 들려 왔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휘적휘적 걸어갔다.
“촌구석치고는 물이 참 좋네.”

"모레는 괴기 묵을 꺼니까 오늘은 생선 좀 잡아 묵자.”
잔치를 핑계 삼아 며칠내리 밤새 술판을 벌이던 동네의 청년들은 무리 중 한 명의 발언에 다들 그러자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얼어붙은 수로에는 일견 아무 것도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아래로는 갖가지 어류들이 겨울나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그들은 잘 알고 있었다. 다만 한두 명 가지고는 어림도 없는 겨울 고기잡이를 하고 싶지 않아 시도하지 않고 있었을 따름이었다. 익숙하지 않은 술자리에 끼어 있던 남진은 누군가의 선동에 다른 이들이 부산하게 움직이기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멍하니 자리에 앉아 있기있기만 했다.
“안 갈끼라? 니가 빠지면 우야노? 니 일하는 거 누가 따라갈 사람 있나? 언능 가자.”
동일이 남진의 손을 잡아 일으켰다. 덩치는 자신보다 훨씬 주제에 한사코 어깨에 매달려오는 동일이 얄미워 남진은 몸을 크게 휘둘렀다.
“남진아. 니 애정이 식었나? 와 그라노?”
“지랄한다. 니 술 많이 묵었제? 애정은 무신 애정이고? 무거버 죽겠구만 와 매달리가 그라노? 니가 내 보다 키가 적나? 무게가 작게 나가나? 매달리면 내가 매달리야제 니가 와 나한테 늘어 붙노?”
저만치 떨어지는가 싶더니 허겁지겁 달려와 하는 말이 어이없어 남진은 시큰둥하게 쏘아붙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동일은 능글맞게 웃고 있을 뿐이다.
“행님이 무겁더나? 그라면 말로 하지. 니가 내한테 기대라 그럼.”
“나는 사지 육신 멀쩡하다. 뭐하러 니한테 기댈끼고? 됐다 마.”
거부당했다느니 어쨌다니 하면서 갖은 엄살을 떠는 동일을 가볍게 무시하며 남진은 나무망치와 정을 찾아들고 수로로 향했다. 그곳에는 이미 동네 청년들이 저마다 삽이며 양동이, 심지어는 모래자루에 손전등까지 가지고 나와 있었다.
아직까지도 관개시설이 미흡한 까닭에 동네 사람들은 작은 수로에 의지하며 농사를 지었다. 그런 까닭에 매년 하늘만 바라보며 조바심치는 순박한 동리 사람들에게 수로는 명줄처럼 귀했다.
의성의 겨울은 참으로 혹독했다. 아무리 작은 수로라지만 저 밑바닥까지 꽁꽁 얼어붙어 정을 대고 나무 마치로 내려쳐도 좀 채 틈새를 보여주지 않았다. 남진은 키에 비해 근력이 약했다. 워낙 껑충하니 키가 큰 탓도 있었지만 집안 내력이 뼈대가 가늘고 섬세한 편이라 동일처럼 사지가 단단한 편이 못되었던 거다. 그런 남진이 힘껏 얼음 바닥을 내려쳐 봐야 마치를 울리는 진동에 손만 찌르르하니 울려올 뿐이었다.
“비키 봐라. 내가 하꾸마. 아무래도 니는 내가 거둬 살리야겠다.”
점잖게 뒷짐 지고 바라만 보고 있던 동일이 남진을 향해 손을 내밀며 말했다. 놀리는 투에 심사가 사나워져 남진은 눈을 흘겼지만, 그래도 자신이 근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까닭에 군말 없이 나무망치를 그에게 건네주었다.


귀마개에 털옷까지 입고 있어도 코끝까지 빨갛게 물드는 게 의성의 겨울이었다. 망치질에 후끈 달아올랐던 몸이 금방 싸늘하게 식었다. 등줄기에 배어들었던 땀이 식으며 피부에 소록소록 소름이 돋았다. 그러한 추위에도 불구하고 동일은 겉옷을 훌훌 벗어던졌다. 얇은 셔츠 위로 단단해 보이는 상체의 선이 드러났다. 망치를 머리위로 들어올렸다가 얼음바닥으로 꽝꽝 내리치는 움직임을 따라 얄팍한 천 밖으로 꿈틀거리는 근육이 그대로 전해져왔다. 남진은 동일의 탄탄한 등줄기며 길고 강인해 보이는 팔뚝을 부러운 듯이 바라보다가 엷은 한숨을 토해냈다.
동일이 가세하자 견고해 보이던 수로의 얼음바닥이 마침내 균열을 일으키며 갈라지기 시작했다. 퍽퍽하는 소리를 내며 깨지는 얼음 위에 상체를 숙이고 있는 동일의 몸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울퉁불퉁한 근육이 움직일 때마다 팔이고 등판이고 할 것 없이 김이 나는 것이 땀을 꽤나 흘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행님요. 요는 다 됐니더. 거는 어떤 데예?”
동일은 수로바닥까지 다 파자 소리를 내질렀다.
“요도 다 됐다. 모래주머니로 막아라.”
멀리서 이웃에 사는 형이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아무리 끝까지 얼었대도 조금씩 물줄기가 흐르는 것이 또 수로였고 그 자그마한 틈새에 갖가지 물고기들이 겨울잠을 자고 있었다. 위쪽을 파고 모래주머니로 물을 막았다. 그리고 한 10미터쯤 아래로 또 얼음을 바닥까지 깨고 물을 막았다. 그러고 나서 그 사이에 있는 얼음을 모두 걷어내면 커다란 양동이 몇 개쯤은 거뜬히 채울 수 있을 만큼 고기들이 잡히는 것이었다. 물론 이런 거창한 작업은 한 두 사람 가지고는 엄두조차 낼 수 없으니까 동네에 잔치가 벌어지는 날이 아니고서야 아예 말도 꺼내지 않았다. 힘 좋은 남정네 둘이 아래위로 구멍을 뚫어 놨으니 이젠 중간에 있는 얼음을 걷어 내면 되었다. 남진은 얼음을 걷어 내러 가지전에 동일부터 챙겼다.
“자. 입어라. 고뿔든다. 니 몸에서 김 난데이.”
“군바리한테는 고뿔도 못뎀빈다.”
보란 듯이 가슴을 쫙 펴보이며 우쭐대는 동일에게 남진은 소리를 질렀다.
“나 얼음 걷으러 갈끼다. 니 옷은 니가 들어라. 안 입을라카면 던지뿌던가.”
“와 신경질이로? 니 오늘 뭔 날이가?”
느물거리는 동일이 보기 싫어 또 괜한 성질을 부려 댔다.
“치아라. 사내 자슥한테 그기 뭔 말이로? 나는 얼음 걷으러 갈끼다. 니는 요서 얼어 디지든가 말든가 알아서 해라.”
휙 돌아서서 걸어가는 남일을 보고 실실 웃어대던 동일은 몸에 한기가 몰려오자 얼른 옷을 집어 입고 남일의 뒤를 쫓아 갔다.
“남진아. 같이 가제이. 그깐 일로 삐지나?”

다란 가마솥 아래로 장작이 탁탁 불꽃을 튀겨 가며 타오르고 있었다. 설설 김을 내뿜으며 끓기 시작하는 물에 양동이에서 건져와 찬물에다 대강 뿌득뿌득 씻은 물고기들과 대파를 뚝뚝 분질러 넣고 소금을 한주먹 털어 넣었다. 뚜껑을 닫고 얼마간 있으려니 김이 새나와 주위를 온통 희뿌옇게 만들었다. 무거운 뚜껑을 열고 주걱으로 고기들을 뭉갠다. 허연 살들이 떠올랐다 가라앉기를 반복하고 이내 솥 안은 뽀얀 국물과 구수한 냄새로 가득했다. 잘 치댄 밀가루 반죽을 대충 떼서 던져 넣었더니 투명한 얇은 막들이 중앙에서 떠올라 솥의 가장자리로 가라앉았다.
가마솥을 들여다 보는 눈들이 하나 둘 늘어가고 어느새 청년들의 밤잔치가 동네잔치가 되어 버렸다.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나자 동리 이장이 다시 막걸리를 풀었고, 술추렴에 정신없는 동일은 옆에 앉아 있던 남진이 없어진 것도 모르고 그저 부어라 마셔라 하며 코가 비뚤어져 갔다.

"와요? 와 불렀니껴?”
남진은 이 오밤중에 자신을 슬며시 부른 대의를 보며 물었다.
“남진씨. 아니 처남이라고 해야 하나? 아직 식은 안 올렸으니 그냥 이름을 부를까요? 어쨌든, 서울 가서 일 해 볼 생각 없어요? 이런 데 있기는 좀 따분하지 않아요? 남진씨 정도면 할 일이 많을 것 같은데.”
“지는예 배운 것도 없고 할 줄 아는 것도 농사짓는 거 뿐인데예. 지 같은 게 서울 가서 뭐 하겠니껴?”
가만히 대꾸하는 남진을 바라보는 대의의 눈길이 복잡했다. 어찌 보면 많이 피곤하여 핏발이 서있는 것 같기도 했고, 또 어찌 보면 장난감을 앞에 둔 개구쟁이 아이처럼 잔혹해 보이기도 했다.
“남진씨 보고 기술 써먹으란 얘기는 아니고, 나 하는 영업장에 와서 손님들이랑 같이 놀아만 줘도 먹고사는 거는 물론, 돈도 아쉬울 거 없이 모을 수 있을 거야.”
어느 사이엔가 말을 놓아 버린 대의는 남진의 어깨에 은근 슬쩍 손을 올리며 말을 이어 갔다.
“우리 가게, 잘 나가는 사람들만 오는 데라 일하기도 편하고 돈도 많이 생겨. 그러니까 식 마치고 나 여행 갔다 오는 대로 서울로 와. 응?”
“그라몬 지는 더 몬합니더. 지 같은 촌놈이 잘 나신 분들하고 무신 얘기를 하겠습니꺼? 아무 아는 것도 없고예 지 데리다 놓으면 손님들이 싫어 할끼라예.”
정색을 하는 남진을 가만히 응시하던 대의가 느닷없는 웃음을 터뜨렸다.
“놀아 주는 게 어떤 건지 몰라서 그러는구나. 그럼 내가 가르쳐 줄게. 아는 거 없어도 돼. 아니 없으면 더 좋지 뭐. 이리 와 봐.”
대의가 묵고 있는 방은 백 년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동리 어른들이 따로 정갈히 마련한 방이었다. 때마침 다들 어탕 수제비를 맛보러 나가 집안에는 잠든 여자들이나 어린애들뿐이어서 조용하기 이를 데 없었다.
갑자기 자신의 곁에 다가온 대의를 올려다보며 남진은 불안한 듯 눈동자를 굴렸다. 남진의 옆에 다가온 대의는 가만히 그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갖다 대었다. 그가 혀를 내밀어 입술 끝을 살며시 문질러 오자, 혼이 빠진 것처럼 멍하니 있던 남진은 화들짝 놀라 대의를 확 밀쳐냈다.
“와 이러니껴? 남자가 남자 붙잡고 뭐하는 짓이니껴?”
엉덩방아를 찧고 앉아 있던 대의가 웃으며 다시 다가 왔다.
“남진씨 많이 순진하네. 남자건 여자건 예쁘면 되는 거야. 그렇게 예쁘게 생겨서 이런 데 쳐박혀 있으면 아까워서 안 되지. 몸매도 그리 가늘고……. 우리 손님들이 딱 좋아할 타입이야. 아니, 실은 내 타입이지. 우리 어디 한 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관계를 만들어 보자고. 응?”
“옴마야. 진짜 와 이러니껴……. 비키소 마.”
남진은 자신을 덮치듯이 안고 목덜미를 쭉쭉 빨아 대는 대의를 밀쳐내기 위해 손을 뻗었지만, 그의 손은 이내 대의에게 붙들려 옷으로 묶였다. 옷가지를 겹겹이 껴입은 것으로도 모자라 내복까지 입은 남진을 보고 대의는 혀를 찼다.
“아무리 그래도 내복까지 입었네. 서울 가면 난방이 잘 돼서 이렇게까지 춥진 않으니까 이런 거추장스러운 건 안 입어도 돼.”
남진이 저항을 하든 말든 대의는 옷을 벗겨 내기 바빴다. 그의 손길은 아주 능숙해서 얼마 안가 남진은 발가벗겨져 버렸다. 남진은 남들 다 자는 야밤에 이 꼴을 하고 소란을 일으켜 들키는 게 걱정이 되서 소리도 채 지르지 못하고 겨우겨우 몸만 바르작거렸다.
대의는 소리 한번 제대로 지르지 못하고 온 몸을 바르르 떨며 입술을 깨물고 있는 남진을 보고 절반쯤 정신이 나갔다. 남녀를 가리지 않고 맘에 드는 사람이면 취해야 직성이 풀리는 못된 성미 탓에 제멋대로 살다가 집안 어른들의 성화에 못 이겨서 이제야 겨우 장가 들 결심이 선 대의였다. 선대로부터 지역 연고가 있는 이곳에 터를 닦아야겠다 싶어 얌전한 처자 하나 구해 결혼해야지 하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신부에 대한 기대는 애초부터 없었다. 그러나 심드렁한 기분으로 내려온 이곳에서 그는 남진을 만난 것이었다. 커다란 눈과 얇은 입술, 길고 가느다란 사지. 그의 팔다리가 자신의 몸을 감아오는 것을 상상하자 전류가 흐르듯 온 몸이 짜릿해질 정도였다.
대의는 드러난 남진의 가슴에 혀를 세워 둥글게 원을 그리다 추운 대기에 노출되어 뾰족하게 선 유두를 살며시 깨물었다. 남진이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적나라하게 들려 왔다.
“헉. 진짜로 와이라니껴……. 제발 좀 놔 주소. 울 순이는 우짜라고 나한테 이라니껴? 지는 남자라예.”
대의는 대꾸 한 마디하지 않고 남진의 몸을 탐하기 바빴다. 목덜미에 이를 박아 넣고 살살 깨물자 온몸을 떨어대는 남진이 느껴졌다. 대의는 남진의 몸을 구석구석 맛보고 성감대를 찾아내며 기어코 그의 눈에서 눈물을 뽑아낼 때까지 몰아 붙였다.
“흐어어엉엉. 아제요. 제발……. 하지 마소. 아제요…….”
“입 틀어막기 전에 조용히 해라. 다른 사람들 다 깨면 나는 니가 날 유혹했다고 할 거다. 서울 가고 싶어서 내 방에 들어와 덮쳤다고 그럴 거야. 그러니까 얌전히 너도 즐겨.”
남진은 아예 대놓고 엉엉 울고 있었고 대의는 그런 그의 모습이 가일층 자신의 정복욕을 충족시켜 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대의는 입고 있던 옷을 다 벗어던지고 남진 위로 몸을 겹쳤다. 남진의 성기를 만지작거리다가 입으로 애무를 해주니 남진은 아예 죽을 듯이 우는 소리를 냈다.
“허허헉. 아제요. 고마…… 고마하소! 제발……. 이상한기라.”
남진이 아무리 사정을 해도 대의는 멈추지 않았다. 결국 대의의 입에다 방출을 한 남진은 붉어진 얼굴을 하고 숨만 헐떡거리고 있었다. 대의는 그런 그의 다리를 집어 올려 엉덩이의 갈라진 쪽을 슬슬 문질러 댔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울고 있던 남진은 자신의 분문(糞門) 사이로 슬금슬금 들어오는 손가락에 기겁을 했다.
“뭐, 뭐 하니껴? 이거는 또 뭐 하는 기라예?”
답도 없이 웃음만 짓는 대의를 보며 남진의 몸엔 싸늘하게 전율이 흘렀다. 혼비백산하여 뭐가 뭔지 아무 것도 몰랐지만, 대의가 하는 짓이 결코 좋은 일이 아니라는 것은 아까 일로도 알 수가 있었다. 남진은 마지막 기운까지 다 짜내 몸을 뒤척이며 항거했지만, 대의의 손가락은 자꾸만 안으로 치고 들어왔고 그 충격으로 남진의 몸은 점점 굳어만 갔다. 그렇게 들어 온 손가락이 하나 둘 늘어나 몸 안을 휘저으며 고통을 더해갈 즈음, 대의가 갑자기 손가락을 쑥 빼내었다. 남진은 무심결에 안도의 숨을 내쉬었지만, 종전까지와는 도무지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엄청난 충격이 곧이어 남진의 전신을 덮쳐왔다. 좁은 구멍을 비집고 무서운 기세로 파고드는 것은 손가락보다는 몇 배나 굵을 법한 몽둥이 같았고, 그것이 대의의 남성이라는 것을 알게 된 남진은 미처 소리도 지르지 못한 채 새파랗게 질려 눈물만 펑펑 쏟아냈다. 꺽꺽 숨이 넘어가는 소리를 내는 남진은 아랑곳하지 않고 대의는 자신의 욕정을 채우기에 급급했다. 대의의 험악한 기세에 남진은 얼마 못가 하얗게 눈이 돌아 혼절해버렸다.

진은 온몸이 사슬에 감겨 늪으로 빠져드는 꿈을 꾸었다. 꿈인 줄 알고 있었고, 얼른 일어나야지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생각처럼 쉽게 눈을 뜰 수가 없었다. 괴로운 신음을 토해내는 남진을 흔들어 깨운 것은 익숙하지 않은 말투를 쓰는 그 사람, 대의였다. 그 목소리에 흠칫 놀라 눈을 번쩍 뜨니 어슴푸레한 어둠 사이로 트렁크만 입은 채 앉아 있는 대의가 보였다.
“나쁜 꿈 꿨어? 아직 안 일어나도 돼. 날이 밝으려면 좀더 있어야 해.”
“아, 아입니더. 지는 그냥 가 볼랍니더.”
마치 죄를 지은 사람인양 눈도 채 마주치지 못하고 남진은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온몸이 두드려 맞은 것처럼 아팠다. 특히 허리와 그곳이 너무 아파 눈물이 울컥 쏟아지려 했지만 이를 물고 겨우 참아냈다.
“몸도 안 좋을 텐데. 왜 그래? 좀 더 쉬지.”
“아입니더. 사람들 좀 있으면 깹니더. 지는 집에 가서……. 안녕히 계시소.”
“식 올리고 나서 여행 갈 때 너도 같이 가자. 내 여행 다녀 올 동안 너 먼저 서울 가 있어. 이기사한테 얘기할 테니까 내 차 타고 가 있으라고. 이기사가 알아서 너 돌봐 줄 거다. 알았지?”
뒤돌아선 남진의 어깨가 움찔하고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남진이 흠칫거리는 게 느껴졌다.
“안할 랍니다. 지는 서울 안 갑니더. 그냥 여서 살랍니더. 지는 그만 내비 두이소.”
남진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만 던지고 그대로 휘적휘적 걸어가 버렸다. 대의는 그런 남진의 모습에 얼굴을 찡그렸지만 이내 눈을 감고 다시 자리에 누워 버렸다.
온몸이 두드려 맞은 것처럼 아팠다. 특히 허리와 그곳이 너무 아파 눈물이 울컥 쏟아지려 했지만 이를 물고 겨우 참아냈다.
“몸도 안 좋을 텐데. 왜 그래? 좀 더 쉬지.”
“아입니더. 사람들 좀 있으면 깹니더. 지는 집에 가서……. 안녕히 계시소.”
“식 올리고 나서 여행 갈 때 너도 같이 가자. 내 여행 다녀 올 동안 너 먼저 서울 가 있어. 이기사한테 얘기할 테니까 내 차 타고 가 있으라고. 이기사가 알아서 너 돌봐 줄 거다. 알았지?”
뒤돌아선 남진의 어깨가 움찔하고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남진이 흠칫거리는 게 느껴졌다.
“안할 랍니다. 지는 서울 안 갑니더. 그냥 여서 살랍니더. 지는 그만 내비 두이소.”
남진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만 던지고 그대로 휘적휘적 걸어가 버렸다. 대의는 그런 남진의 모습에 얼굴을 찡그렸지만 이내 눈을 감고 다시 자리에 누워 버렸다.


긴 쇠막대기에 대롱거리며 사지가 묶여 있는 돼지의 모습은 우스웠다. 그러나 남진은 돼지를 보며 불쌍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조금 후에 있을 순이의 결혼식에 쓸 놈이라 남진의 백부가 개중 실한 놈으로 진작부터 골라놓은 것이었다. 아직도 꽥꽥거리며 우는 모양새가 자신의 운명을 모르는 듯 싶어 한층 더 딱했다. 워낙에 작은 동네라 따로 돼지를 잡는 사람은 없었지만, 그래도 건너 건너 윗집에 사는 태웅 아저씨가 잡은 돼지가 제일 맛있더라 하는 사람들의 추천으로 오늘은 그가 돼지를 잡기로 하였다.
엄동인 겨울이었지만, 걱정했던 것과 달리 눈도 안 내리고 바람도 잔잔해 오늘은 퍽 날씨가 좋았다. 둘러싼 사람들의 웅성거림 속에서 태웅 아저씨가 나무 장도리를 들고 나왔다. 그것으로 돼지 이마를 조심스레 조준하더니 이내 퍽하고 내려쳤다. 장도리의 원기둥에 되게 맞은 돼지가 꾸엑 하고 그야말로 멱따는 소리를 내질렀다.
한 대 두 대 내려치자 돼지는 이내 기절을 해버렸다. 사람들은 죽이지 않고 기절시키는 것을 일러 기술이라고 했다. 태웅 아저씨가 양동이와 큰 칼을 들고 와서 서슴없이 돼지의 목을 그어버렸다. 뜨거운 김이 확하고 쏟아져 나왔다. 시뻘건 피가 양동이 속으로 콸콸대고 흘러내렸다. 동리 아주머니가 양동이를 가져다가 가마솥 뚜껑에 부쳐 지짐이를 만들었다. 온 동네 아이들이 다 그쪽으로 달려갔다. 이제 조금만 있으면 돼지고기를 실컷 먹게 될 테지만, 겨우내 단백질을 보충할 만한 건덕지가 별로 없는 마을 아이들에게 돼지 선지 지짐이는 별미 중의 별미였다. 아이들마다 손에 한 장씩 들고 우물거리며 먹는 것을 멍한 눈으로 바라보던 남진은 새삼 역한 기분이 들어 고개를 돌렸다.
그 또한 어릴 때부터 아무렇지 않게 먹어 왔던 것이건만 이제야 그런 기분이 드는 것이 이상했으나, 묶인 채 불 위에서 빙빙 돌아가는 것이 돼지가 아니라 그 자신인 양 남진은 언짢았다.
어제 하루 종일 아무 일도 못하고 드러누워만 있었다. 머리카락 끝에서 발톱 끝까지 아프지 않은 곳이 없기도 했지만 더 쓰린 것은 마음이었다. 왜 자신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인지, 이대로 순이가 시집 가도록 내버려 두어도 괜찮은 건지 남진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뭐 보노? 한 장 얻어다 주까? 얼라들 먹고 댕기는 거 보이까 옛날 생각 나제?”
동일이 남진의 어깨를 슬쩍 감싸며 몸을 기대왔다. 아직은 성치 않은 상태라 그런지 남진의 몸이 휘청하고 꺾어졌다. 동일이 얼른 남진을 부축하며 눈을 휘둥그레 떴다.
“니 와 그라노? 어데 아프나? “
“아이다. 몸살이 좀 나는갑다.”
남진의 몰골은 형편없었다. 얼굴은 팅팅 부었고, 혈색이라곤 하나도 없이 파리했다. 게다가 심상치 않게 휘청거리는 꼴이 아파도 어디 많이 아픈가 싶어 동일은 안타까워졌다.
“야 갉…. 와 이래 됐노? 어? 니 많이 아프나? 약은 묵었나? 어제 하루 안 봤다고 니 그라나? 남진아. 진짜 개안나?”
자신의 안색을 살피며 물어대는 동일이 정신이 더 사나워진 남진은 저도 모르게 언성을 높였다.
“개안타 안 하나! 좀 비키라. 니 땜에 더 힘들다.”
이리저리 돌려대며 살피는 동일의 손길에 욱신거리는 몸이 더 저려왔다. 안 그래도 힘이 넘치는 동일이 때문에 항상 곤혹스러웠던 남진은 지금 그 때문에 돌아가실 지경이었다. 갑자기 팔뚝을 잡아채고는 잰걸음으로 집으로 향하는 동일에게 질질 끌려가면서 남진은 소리를 내질렀다.
“야 이 새끼야. 니 머하노? 이거 놔라. 아픈 사람한테 뭐하는 짓이로? 어?”
“씨발 새끼 조용히 안 하나? 니도 확 멱을 따주까?”
돌아보며 대꾸하는 동일의 눈이 심상치 않았다. 남진이라면 늘 몇 수 접고 들어가는 평소의 동일이 아니었다. 동네에서 알아주는 게으름뱅이에 간혹 망나니짓을 하는 바람에 그리 좋은 평을 받지 못하는 동일이었으나, 그래도 남진만큼은 끔찍하게 위하던 동일이었다. 그런 그가 갑자기 살기등등한 얼굴을 하고 거칠게 말을 내뱉고 있었다. 다짜고짜 남진을 끌고 들어온 동일은 그를 방에다 거의 집어 던지듯 밀어 넣고는 안에서 문을 잠가버렸다.
“뭐 하는 긴데? 니 지금 지 정신이가? 어?”
“니가 보기에는 내가 지 정신으로 보이나? 내 지금 딱 돌았다. 그라니까 언능 불어라. 언 년이고?”
난데없이 도끼눈을 하고 사람을 끌고 오더니 어느 년인지 불라는 동일의 기세에, 영문을 모르는 남진은 눈만 끔벅였다. 동일은 남진의 그런 모습을 보고는 한층 더 씩씩거리며 채근을 해댔다.
“이 씨발 새끼야. 어느 년하고 붙어먹어서 니 꼬라지가 그렇노 말이다. 목덜미에다는 따까리가 지가지고……. 그년이 그래 잘 빨아 주더나? 어?”
멱살을 잡고 흔들어대는데 얼마나 살기가 치밀었는지 동일의 얼굴은 붉다 못해 까맣게 타 들어갈 지경이었다. 그러나 멱살을 잡힌 남진 역시 얼굴이 죽어가긴 마찬가지였다.
“흔들지 마라. 새끼야! 미친나? 도대체 무슨 말인지 한 개도 몰것다. 누가 누구하고 붙어먹었다고 그라노?”
“이 씨발 새끼가 끝까지 오리발이네. 야, 이 새끼야 니 꼬라지가 그라모 붙어먹은 거 아니면 강간 당……”
동일은 그제야 뭔가를 느낀 듯 남진의 옷을 벗겨 내기 시작했다. 남진은 마구 저항했지만 본래 완력으로는 당해 낼 수 없는 데다 몸 상태가 엉망인 지금은 더 그를 이길 수 없었다. 드러난 남진의 상의를 살피던 동일은 허탈한 마음에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남진은 얼른 옷을 주워 걸쳤지만, 갑작스럽게 피부에 밀려든 한기가 가시지 않았다. 그는 방구석에 놓여져 있는 홑이불을 뒤집어쓰고 쪼그리고 앉았다.
“누고? 니 그 사람 사랑했더나? 나 없는 새 니 사랑하는 사람 생겼더나? 그래서 같이 잤더나? 어? 와 말이 없노? 내 말이 말 같이 안 들리나?”
처음엔 작게 시작한 말이 갈수록 커져 종래엔 집이 떠나 갈 정도로 쩌렁쩌렁 울렸다.
“씨발놈아 니가 와? 니가 와 지랄이고? 남이사 누구하고 입을 맞추든 배를 맞추든 껴안고 뒹굴든 니하고 뭔 상관 인데? 어?”
남진의 말에 동일은 눈이 뒤집어지는 것 같았다. 성질이 치밀어 올라 갖은 패악을 부리던 동일은 마침내 눈에서 눈물을 쏟아냈다. 얼마나 처량하게 울어대는지 보고 있는 남진이 더 기가 찰 지경이었다.
“임마……. 니가 와 우노? 당한 거는 낸데…….”
남진은 저도 모르게 나온 말에 아차 싶어 입을 다물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동일이 울음을 뚝 그치고 다시 다그치기 시작했다.
“뭐로? 당했다고? 니 지금 당했다 캤나? 니가 다리 벌려 준거 아니라꼬?”
“이기 미쳤나? 내가 와 내 다리를 벌려 주노? 내가 여자가?”
남진은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되쏘았다. 어제 하루 종일 자리보전을 하며 생각해 봤지만, 남진은 잘못한 것이 없었다. 순이를 안쓰럽게 여기는 감정이 죄라면 죄랄까, 대의 쪽에는 눈길 한 번 제대로 줘 본 적도 없었다. 그런데 어째서 일이 이렇게 꼬인 것인지 남진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그라모 강제로 덮치더나? 니가 나이가 몇 살인데 가만히 당하노? 니가 키가 작나 힘이 없나? 와 당했노 말이다.”
“몰라. 나도 모린다. 우짜다 보이 그래 됐더라. 아이고 진짜 미치겠네. 근데 니 놈은 와 또 그라노? 니까지 미친 지랄하면 나는 또 우짜라고?”
자신을 원망하듯 한 남진의 말에 동일은 어이가 없어졌다. 게다가 어쩌다가 라니 말도 안 되었다. 그게 말이 되는 소리냐고, 강제였다면 상대가 누구든 꼭 죽여 버리고 말 거라고 그는 다짐했다.
“누고? 불어라. 빨리. 니 말대로 강제로 덮쳤다면 가만 못둔다. 직이삘끼다.”
정말이지 동일의 눈엔 살기가 감돌았다. 남진은 완강하게 입을 다물었다. 오늘은 순이의 혼례가 있는 날이었다. 자신의 일로 순이가 그토록 기다려온 오늘 일을 방해할 수는 없었다. 대의에 대한 미움 따위 순이를 생각하는 마음에는 감히 비할 데도 못 되었다.
“모린다. 아무 것도 생각 안난다.”
“씨발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나? 니는 니 뒤통 따문 놈이 눈지도 모르고 엉덩이 대준나? 누구 놀리나?”
“어두워서 못 봤다. 진짜다.”
남진은 동일에게서 시선을 돌리며 겨우 말했다. 워낙에 거짓말하고는 거리가 먼 남진이었다. 보통 때라면 그런 그의 기색을 모를 리 없는 동일이었음에도 그 또한 흥분해 있는 탓인지 그런 기색을 살피지 못했다.
“씨발 놈아. 그래 누군지도 모리나? 어? 짐작가는 사람도 없나?”
“진짜 모른다. 누군지 짐작도 안 간다.”
허탈하게 퍼져 있던 동일이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그 씨팔 새끼 누군지는 몰라도 지금 순이 식 올리는데 가 있겠제? 동네 잔친데. 일단 그 새끼 죽이고 보자. 가서 디비면 누구든 안 나오겠나. 내는 지금 야마가 돌아서 보이는 거 없으이까 지 죽고 내 죽으면 그만인기라.” 남진은 화들짝 놀라 얼른 동일을 붙잡았다. 어젯밤 순이와 나누었던 대화가 뇌리를 스쳐갔다.

"순이야…….”
“와? 니도 새신랑 험구하고 싶어서 왔나?”
새색시 같지 않게 순이는 표독스러운 눈매를 하고 있었다.
“어?”
어이가 없어 되물으니, 호수처럼 커다란 눈망울이 금방 젖어들었다.
“남진아……. 나도 다 안다. 그 사람 대처에서 팔난봉으로 소문난 거 다 알고, 넘새스럽구로 남자하고도 자는 거까지 다 들었다.”
발정 난 수캐마냥 자신에게 덤벼들던 대의의 얼굴 위로 순이의 젖어든 눈동자가 겹쳐져, 남진은 입술을 깨물었다. 울고 있는 순이 앞에 자신의 일을 말할 순 없어, 남진은 한숨 같은 어조로 중얼거렸다.
“그래도……. 니 개안나?”
“나 개안타. 아니 그 사람이 팔난봉이 아니라 문딩이라도 나는 상관 없다.”
결혼식을 딱 하루 앞두고 말하는 투가 꼭 십 수년은 살아온 아낙의 체념 섞인 투라 남진은 열불이 났다.
“와? 니가 어데가 모자라서? 니는 그래도 고등학교까지 안 나왔나?”
“남진아……. 나는 이 깡촌이 싫다. 하늘 한번 보고 한숨 한번 쉬고. 땅 한번 보고 원망 한마디 하고. 내는 이래 살기 싫다. 아이다. 내는 이래 살아도 내 새끼들은 이래 못살게 할끼다. 이런 깡촌에 처자 델고 갈라 하는 사람, 알아 볼 쪼다. 하지만 나도 이런 데 살기 싫어서 그 사람 이용하는 거니까 상관없다, 그냥 고맙게 생각하고 살란다. 그러니까 남진아. 내 좀 도와 도. 내일 식 끝날 때까지만 조용히……. 그저 우리 갈 때 까지만 조용하게 넘어갈 수 있게 해도. 부탁이다. 어…….”
이 빌어먹을 계집애가 처음부터 끝까지 다 아는구나 싶었다. 그래도 남진은 순이의 눈물 앞에서 결코 아니 된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간절하게 말하는 순이의 목소리 뒤로 벌써 십년은 족히 되었을 법한 일이 떠올랐다. 내는 여가 마 죽을 만치로 싫다, 하였던 계집아이의 강경하고 완고한 목소리가. 모진 계집아이는 세월이 흘러가도 조금도 변치 않았다. 그리고 그 계집아이를 품은 남진의 어리석은 마음 또한 달라지지 않았다.

진은 입술을 깨물며 동일의 등을 와락 껴안았다. 순이와의 약속이었다. 식을 마치고 순이가 대의와 여행을 갈 때까지는 시간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하며, 남진은 입을 열었다.
“동일아 가지 마라. 니도 내하고 자고 싶제? 그라몬 내하고 자자. 어차피 뒷통 따먹힌 거 한번이나 두 번이나……. 어문 놈 한테도 따먹힌는데 니한테는 와 못주겠노. 가지 말고 나하고 그냥 자자.”
동일은 황당했다. 대체 무엇 때문에 갑자기 태도를 바꿔 이러는지 알 수가 없었지만, 귓가를 간질이는 남진의 음성에 생각할 겨를 따윈 없었다. 그는 돌아서서 남진의 입술에 혀를 가져가댔다.
성급하고 거친 손놀림으로 옷을 다시 벗기고 쓰러뜨린 후 몸 구석구석 탐해오는 동일의 입술에 남진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째각거리며 넘어가는 시계 바늘 소리 너머로 잔치에 참석한 사람들의 왁자지껄한 웃음소리가 어렴풋하게 들려오고 있었다.

<끝>

/조아람(신방,4)

연세춘추  chunchu@yonsei.ac.kr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연세춘추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