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소설의 동향을 짚어보다


가야할 때를 알고 떠나는 가을의 끄트머리를 끈질기게 잡고 있었던 11월 3째주. 햇살 좋은 가을의 종점에서 과연 어떤 책이 독자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을까. 교보문고 소설부분 베스트셀러 50위권의 국내 소설은 박완서의 신작 『그 남자네 집』(4위), 공지영 신작 『별들의 들판』(10위), 올해 동인문학상을 수상한 김영하의 『검은 꽃』(45위)을 비롯한 5작품이 전부다. 댄 브라운의 『다빈치코드』(1위)와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5위) 등 외국 소설이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얻고 있고, 카타야마 쿄이치의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6위)를 비롯한 일본 소설은 9작품이나 순위권에 이름을 내밀었다.
바야흐로 한국 소설에 빨간불이 켜졌다. 독자들이 한국 소설을 외면하기 시작한 것. 그 원인 중 하나로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한기호 소장은 “질이 떨어지는 작품임에도 칭찬만을 퍼부었던 한국문단의 주례사비평에 매우 큰 책임이 있다”고 지적한다. 주례사비평으로 인해, 거짓 명성을 얻은 작가들이 즐비하게 됐고, 상대적으로 다른 신예작가들의 성장을 저해했다는 것이다. “일부 작가에 대한 주례사비평으로 인해 상처받은 여성들이 등장하는 불륜 소설이 현대 한국  문학의 많은 비율을 차지하게 됐다”며 한소장은 한국 소설의 문제점을 꼬집었다.
한편 문학평론가 정과리 교수(문과대·국문학)는 “집단만을 알던 한국인이 1990년대에 들어 처음으로 ‘개인’을 맛보게 되고, 소설 또한 개인적인 문제에 초점을 둔 것이 많아졌다”며 한국 문학의 전체적인 흐름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정교수는 “애당초 한국의 성인 남성은 소설 독자층으로 들어가지 않으며 한국의 소설 주독자층은 고학력 주부”라고 밝힌다. 이들이 1990년대 이후 개인의 문제에 눈을 뜨게 되고, 자신들에게 더 직접적으로 와닿는 여성작가의 작품을 선호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1990년대 이후 한국 문단은 박완서, 신경숙, 은희경, 공지영, 전경린 등 여성작가가 선두에서 활약해왔다. 이런 현상에 대해 정교수는 “사회와 역사만을 보던 한국인이 ‘개인’을 알게된 것은 괄목할 만한 일이나, 이것이 개인적인 문제로만 침잠해 소설의 주제와 소재가 다양하지 못하게 됐다”며 현재 한국 문학의 위기를 진단했다.
이런 상황에서 혜성같이 등장한 작가가 바로 김영하. 김영하는 2004년 이산문학상, 황순원 문학상, 동인문학상 등 이른바 국내의 주요한 문학상 3개를 수상했다. ‘한국 문학의 위기 상황에서 스타 작가를 만들어주자는 속셈이 있는 것이 아닌갗하는 의혹의 목소리도 있었지만, 한국 문단에 대해 거침없는 비판을 쏟았던 한소장도 “김영하는 새로운 문학적 상상력의 가능성을 보여줬다”며 그의 소설을 높이 평가했다. 동인문학상 심사위원이기도 한 정교수는 “김영하의 『검은 꽃』은 개인적인 문제를 개인에만 국한시키지 않고, 사회적인 문제로 환원시키고 있다”며 한국 문학의 새로운 가능성을 밝혔다고 얘기한다. ‘개인’의 상처에만 머물던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상상력으로 개인의 상처를 사회와 연결시킬 때, 다양한 주제의 소설이 나오게 되고 한국 문학의 질적 성장 또한 가능하다는 것이다.
한편 침체된 한국 문학을 살리기 위한 정책적인 대안도 나오고 있다.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은(아래 문예진흥원) 문학회생을 위한 2005년 예산 준비로 약 52억원 가량을 로또기금으로부터 가져오는 계획을 정기국회에 내놓았다. 문예진흥원 이창윤 문학전문위원은 “우수문학도서를 구입해 문학소외지역과 공공도서관에 보급할 예정”이라고 밝히며, “이를 통해 작가, 독자, 출판사 모두에게 골고루 지원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문예진흥원은 문예지에 게재한 우수작을 선정해 이를 지원하는 사업, 창작집을 내는 조건으로 우수한 전업작가를 지원하는 사업 등을 계획하고 있다.
“한국 문학은 현재 털갈이 중”이라는 정교수의 말처럼 오늘날 한국 문학의 침체는 위기인 동시에 새로운 전환기다. 이에 다양한 주제를 모색하는 작가들의 새로운 시도와 정부의 정책적인 사업은 매우 고무적이다. 결국 이제 한국  문학 성장의 궁극적인 열쇠를 지고 있는 것은 수천만의 독자. 무한 경쟁사회에서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만든 ‘책 안 읽는 아버지들’과 앞으로 미래를 이끌어갈 ‘책 안 읽는 대학생들’의 숨고르기가 무엇보다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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