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은 어둠을 피해 달아나지 않는다』와 『개혁의 덫』

개혁을 꿈꾸는가.
노무현 정권이 들어선 지 2년째로 접어드는 지금, 우리는 몇 차례의 개혁을 경험했고 그 성과와 실패를 지켜보고 있다. 특히 과거사 청산, 국가보안법 폐지, 언론개혁법, 사립학교법개정 등 현 정권이 내세우는 4대 개혁입법은 많은 국민들이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으며, 각 사안마다 찬성과 반대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개혁은 기존 질서나 체제에 상당한 변화를 요구하기 때문에 이에는 강하고 처절한 저항이 따르는 경우가 많다. 지금의 개혁은 진보일까 강박관념일까.

변하지 않으면 퇴보한다

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 이효성 교수는 자신의 저서 좬별은 어둠을 피해 달아나지 않는다』(아래좬별은…』)를 통해 개혁에 관한 그의 생각을 풀어 놓았다. 이교수는 개혁이 단행될 때 수반되는 반응이나 개혁시 유념해야 할 태도에 대해 당부하는 방식으로 서술한다. 그가 바라보는 개혁은 ‘소실대득(小失大得)’의 지혜다.

이교수가 말하는 개혁은 합법적 절차를 밟아 정치상 또는 사회상의 묵은 체제를 고쳐 새로운 체제로 바꾸는 것을 의미한다. 합법적이고 점진적이라는 면에서 개혁은 비합법적이고 급진적으로 이뤄지는 혁명과 구분된다. 이교수는 개혁은 위로부터 행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새로운 집권세력이 자신들의 기반을 다지기 위해서 또는 사회적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문민정부에서 5.16을 군사쿠데타로, 4.19혁명과 6월 항쟁을 민주화 운동으로 천명한 것이나, 국민의 정부가 북한에 대한 적대적 태도를 버리고 햇볕정책을 시도한 것이 모두 이와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개혁은 기존질서를 흐트리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에 기득권 세력의 저항을 동반하게 된다. 이들은 자신의 잘못을 숨기고 개혁으로부터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갖은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개혁을 무력화시키려 한다. 이교수는 저항세력이 개혁의 본질이 아니라 절차나 방법과 같은 비본질적인 문제를 끄집어내는 전략을 통해 개혁을 백지화한다고 지적한다. 현 정권이 개혁을 시도할 때마다 불거지는 보수세력의 법적, 절차적 트집잡기를 봐도 이교수의 견해에 일면 동감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개혁은 주로 정치적·상징적 차원의 개혁이 많았다. 아무리 좋은 취지의 개혁이라 할지라도 국민들에게 실질적인 혜택이 돌아가지 않을 때 그 개혁은 공허한 외침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이교수가 좬별은…』을 통해 강조한 개혁의 궁극적 지향점은 다름아닌 경제개혁이다. 경제적 개혁이야말로 진정으로 정의로운 사회를 실현하는 길이라는 것이다. 정치적 개혁이 상징적인 것이라면 경제적 개혁은 실질적인 것이다. 사람들은 상징을 필요로 하지만 상징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

'별은…'은 개혁을 바라보는 우리의 자세를 말한다. 개혁으로 작은 것을 잃을지는 모르지만 그렇다고 해서 개혁을 미룬다면 우리사회의 환부는 결국 혁명이란 이름으로 분출되고 만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아프더라도 작은 상처부터 점진적으로 치료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개혁이라는 덫에 걸린 우리 경제

케임브리지대 경제학과 장하준 교수는 보다 미시적으로 경제적 관점에서 개혁을 바라봤다. 장교수는 그의 저서 좬개혁의 덫』을 통해 우리사회가 개혁이라는 덫에 사로잡혀 경제위기를 자초했음을 지적한다. 그는 우리사회가 개혁이라는 도덕적 오만으로 인해 과거의 것은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한편, 영미식 신자유주의적 제도와 정책을 무분별하게 도입함으로써 경제위기를 가져왔다고 봤다.

많은 사람들은 개혁이라는 미명 아래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체제를 구체제의 산물로 매도한다. 특히 우리나라의 실정을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선진국의 모델을 답습한 개혁 정책들을 추진한 결과는 경제 성장의 저하, 실업, 소득의 불균형 분배 등으로 이어졌다. 장교수는 개혁을 주장하는 많은 사람들이 흡사 하나의 정답이 있다고 자신하고, 그것만을 밀고 나아가려 한다며 지금의 개혁을 분석했다.

장교수는 개혁의 맹점으로 지난 1997년 경제위기 당시 IMF가 요구한 제도 개혁을 일례로 든다. IMF는 우리나라 경제 제도를 영미식으로 개혁하지 않으면 경제 위기를 타파할 수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IMF가 제안하는 신자유주의를 그대로 받아 들이지 않고 우리사회 상황에 맞게 변형된 개혁정책을 적용함으로써 경제위기를 극복했다. 이 경험은 우리 경제제도가 기형적이라 하더라도, 지난 40여 년간 세계가 놀랄 정도의 성장을 이룩한 공헌은 기억해야 함을 의미한다.

장교수가 지적하는 또 하나의 덫은 재벌개혁과 금융개혁이다. 졸속적이고 감정적인 재벌기업의 해체와 지나친 외국계 자본의 유입은 우리나라의 경제적 대외 방어력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다. 초국적 기업에 의한 합병은 기업의 내실을 공고히 하는 데 기여했을 지는 모르나 그들 자본의 실상은 본국의 정책을 초월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한 개혁세력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주주 자본주의는 대부분의 주주들이 단기적 이익을 추구하는 우리나라의 실정과 맞지 않는다는 점을 간과했다고 장교수는 지적한다. 좬개혁의 덫』은 현재 성급하게 이뤄지는 경제 개혁에 비판을 가함으로써 개혁의 방향을 재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고 한걸음 더 진보하기 위해서 개혁은 필연적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반드시 과거에 대한 재평가가 뒤따라야 한다. 진보라는 미명 아래 이뤄지는 성급한 개혁은 사회적 혼란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좬별은…』은 작은 것을 바꿔 큰 혼란을 막는 방법을, 좬개혁의 덫』은 온고지신의 지혜를 통한 개혁을 말한다. 개혁을 바라보는 시선은 다르지만 비정상적인 것을 정상적인 것으로 만들려는 그들의 의지는 서로 맞닿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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