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을 상대한다’, ‘언변에 능하다’, ‘출·퇴근 시간이 일정치 않다’, ‘되기 어렵지만 되고 나면 편안하다’, ‘직업전환이 어렵다’ 등의 이야기를 들으면 어떤 직업이 가장 먼저 생각나는가?
국민대 법학과 김동훈 교수의 저서 『대학이 망해야 나라가 산다』에서는 위에서 언급한 것들을 ‘교수와 거지의 공통젼으로 꼽고 있다. 비록 우스개소리긴 하지만 많은 사람들의 눈에 비쳐진 교수의 모습이다. 이처럼 한국 사회에는 권위·명예·여유 등 교수라는 직업에 대한 수많은 이미지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매일 교수님들의 강의를 듣기는 하지만, 그 분들이 강의나 연구 외에 어떤 일을 하시는지는 잘 모른다”는 윤시원군(기계공학·2)의 말처럼 교수의 일상은 잘 드러나 있지 않다. 그렇다면 교수의 실제 업무는 무엇이고, 한국 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어떠한가?
교수에게 주어진 일들을 김은경 교수(공과대·광기능성고분자)의 하루를 통해 살펴보자.

아침 8시 경, 공과대 A245호에 도착한 김교수는 오늘의 스케줄을 살펴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여유가 있는 아침에는 여러 논문을 읽고, 자신의 논문도 작성한다. 수업이 있는 날이면 강의준비도 겸하는데, 오늘은 2·3교시 수업이 있는 날이다. 강의가 있는 날이든 없는 날이든, 강의 준비를 위해 소요하는 시간은 하루 2~3시간 정도. 오늘은 ○부터 △까지를 가르칠 예정이다. 김교수는 학생들과의 원활한 강의소통을 위해, 이 부분에 대한 질문으로 학생들의 참여도를 높여야겠다고 생각한다. 강의 후에는 화학공학과의 다른 교수님들과 점심을 함께 하기로 했다. 화학공학과 내의 유일한 여자 교수다 보니 이런 만남이 교수들과의 친분을 쌓는 계기가 된다. 오후에는 보통 연구실에서 실험을 하거나 학생과의 면담시간을 갖는다. 오늘은 연구실을 찾아 부족한 실험대·시약 등을 보충하기 위해 연구비 신청 목록을 작성했다. 오늘 예정돼 있는 실험은 ○○. 학생들과 실험을 하면서 함께 의견을 나누다 보니 시간이 금세 흘러가 버렸다. 낮 5시부터는 공과대 여학생들과 만나기로 했다. 이는 여학생처에서 오래전부터 기획한 행사로, 공과대 여학생들과 진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다. 일정이 끝나고 나니 어느덧 시계는 저녁 7시를 가리키고 있다. 김교수는 이전에 연구원으로 재직했던 □□연구소를 방문한다. 새로운 연구결과가 보고 싶기도 했지만, 이번 우리대학교 ‘과제기획’에 필요한 정보를 얻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교수들은 ‘과제기획’에서 여러 연구 분야를 예측·개발한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김교수가 집으로 돌아온 시간은 밤 11시 경. 고단한 몸을 잠시 누이고 싶지만 며칠 후 있을 회의 및 세미나 준비에 오늘도 책상 앞에서 새벽을 하얗게 밝혀야 할 듯하다.

이와 같이 많은 교수들은 강의 외의 다양한 일거리를 소화하며 바쁜 하루를 보낸다. 이외에도 교수들에게는 학사행정, 학회활동, 대학원생 지도 및 논문심사, 대학입학시험 출제·채점 등의 각종 업무가 주어진다. 또한 교수는 국가기관·정부 관련위원회 활동, 사외이사, 벤처설립 등의 외부겸직을 담당하고, 교내에서는 자신이 속해있는 기관 이외 다른 기관의 보직을 겸하기도 한다. 이처럼 교수의 업무량은 결코 적지 않으며, 업무 분야가 학교 행정에서부터 사회까지 넓게 걸쳐 있기에 그 내용도 복잡한 편이다.
이처럼 교수들이 많은 업무를 맡고 있다 보니 실질적으로 교수 본연의 임무 중 하나인 연구에 전념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게 되는 문제점 또한 따른다. 데이콤 사외이사 및 한국증권연구원 원장을 맡고 있는 박상용 교수(경영대·재정학)는 “1년에 8번 정도 이사회에 참석하는 사외이사 활동 등이 교수 본연의 임무인 교육 및 연구에 지장을 주지는 않는다”고 말했지만, 벤처를 설립한 한탁돈 교수(공과대·컴퓨터구조)는 “벤처를 설립할 당시 강의와 병행하기 힘들어 연구년 기간을 이용했다”고 말해 한꺼번에 여러가지 역할을 해내기가 쉽지 않음을 드러냈다. 또한 학교 내에서도 과중한 업무 부담은 마찬가지다. 좥교수신문」 강성민 기자는 “교수에게 교육·연구 이외에 학사행정, 대학원생 논문심사 등의 각종 업무를 한꺼번에 부과하는 한국 대학의 구조적 문제 속에서 교수는 그 생존권을 위협받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에 대해 학교측 한 관계자는 “교수의 업무가 대내외적으로 많아 연구에 전념해야 할 교수들의 시간을 빼앗기도 한다”고 말해 과다한 업무량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연구 소홀의 가능성을 시사했다.
게다가 교수 각자의 다양성을 보장해주지 않는 연구업적평가는 교수들이 자유로운 연구를 하는 데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김현철 교수(문과대·중국어법)는 “인문학의 경우 소설·문학평론·저술 등 교수의 다양한 활동을 인정하기보다는 형식을 중요시하는 연구 논문만으로 연구업적을 주로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는 교수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연구를 하기 힘들다”고 털어놨다.
한편 흔히 알려져 있는 것과 달리 최근에는 교수라는 직업도 무조건적인 ‘평생직장’은 보장하지 않는다. 김현철 교수는 이를 두고 “‘교수’라는 직업을 소위 ‘철밥통’으로 보던 시대는 갔다”고 말한다. 우리대학교의 경우 전임강사·조교수의 경우 2년, 부교수의 경우 7년마다 재임용심사를 거쳐야 종전의 직급으로 재직할 수 있는데 다양한 업무를 소화하며 재임용을 위한 조건을 맞춰내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김현철 교수는 “실제로 재임용심사에서 탈락하는 교수들도 매해 있는 것으로 안다”며 재임용을 위한 연구·교육·봉사 업적평가에 대한 교수들의 심리적 부담을 토로했다.
또한, 한국 사회는 교수에게 이러한 ‘멀티맨’의 모습뿐만 아니라 ‘도덕적 인간’의 풍모를 함께 기대하고 있다. 백문임 교수(문과대·영상문학)가 “외국 교수들이 학생들을 가르치는 전문가로 인식되는 반면, 한국 교수들은 지식인으로서의 역할이 더 강조된다”고 말한 것도, 우리 사회가 교수를 단지 ‘가르치는 사람’이 아닌 ‘사회적 책임을 지닌 존재’로 본다는 사실을 잘 나타내준다. 이에 대해 강기자는 “예로부터 전해 내려온 ‘학자’인 동시에 ‘스승’이라는 유교적 관념이 대학교수라는 직업에도 그대로 반영돼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곧 우리가 기대하는 바람직한 교수의 상이 한국의 사회적 특수성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말이다.
이처럼 사회의 도덕적 기대치까지 충족시켜야 하는 한국의 교수들은, 동아일보 홍찬식 논설위원이 ‘횡설수설’이란 꼭지를 통해 ‘한국 사회만큼 교수의 사회적 지위가 높은 나라는 드물다’고 논평한 바 있듯이, 한국 사회에서 무시할 수 없는 권위를 갖게 됐다. 또한 각종 매체의 관련 분야에서 등장하는 ‘지식’ 권위자로서의 교수의 이미지는 대중과 교수의 지식 격차가 크게 좁혀진 오늘날의 정보민주화 사회에서도 교수에게 일반인보다 높은 권위를 부여하는 배경이 된다.
결국 “이상적인 교수란 교육·연구·사회봉사의 세가지를 골고루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라는 박교수의 말처럼 교수들에게는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을 수행해야 할 임무가 주어져 있다. 그들이 가지는 권위와  의무를 지켜내기 위한 노력은 물론, 그 이면에 감춰져 있던 그들만의 고충 또한 스스로 감당해야 할 몫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사회가 인식하는 교수와 실제 교수의 모습 사이에는 ‘교수란 이런 것이다’라는 사회적 고정관념과 요구로 인해 빚어진 차이가 존재한다. 편견 속에 뿌리깊게 자리 잡은 교수에 대한 이미지, 이제 그 이미지 안에 존재하는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필요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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