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다양한 선택의 기회 앞에 놓여 있다"

▲아침저녁으로 날씨가 춥다. 캠퍼스를 알록달록 곱게 물들였던 백양로의 단풍도 낙엽이 되어 떨어지는 늦가을의 끝, 캠퍼스를 알록달록 새롭게 물들이며 ‘시작’을 준비하는 이들이 있다. 매년 이맘때쯤이면 다가오는 총학생회 선거. 무려 네 팀의 선본이 출마한 42대 총학생회 선거는 가지각색으로 옷을 맞춰 입은 선본단의 활발한 모습부터가 예년과는 다르다.

▲각 단과대 학생회장 선거도 지난해의 풍경과는 사뭇 다르다. 대부분 단과대에서 단독선본만이 출마해 눈에 띌 만한 유세전 없이 비교적 조용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던 작년 선거와는 달리, 올해는 문과대에서 세 선본, 신과대와 법과대에서 두 선본이 출마해 경선을 벌이게 됐다. 각 선본들은 학내 곳곳에 모여서 지지를 호소하거나, 노래와 율동을 보여주며 선거 분위기를 한껏 부풀리고 있다.

▲시끌벅적한 선거 분위기 속에서 지난 해 한 지인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선본들 사이에 차별성·다양성이 부재한 지금, 우리에겐 선택권이 없다”며 투표를 하지 않겠다고 말했던 그 사람. 그 이야기를 들으며 어떤 면에서는 학생들이 투표를 하지 않는 것이 ‘학생회에 대한 대중의 무관심’ 때문만이 아니라, 선택하고자 하는 자에게 충분한 선택의 여지를 주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지난 1990년대 말, 학생운동은 ‘민주화’라는 공통의 목적을 소멸되면서 일반학생들과 점차 괴리되고 와해되는 움직임을 보여왔다. 더구나 최근 몇 년 동안은 여러 대학에서 총학생회 선거의 과반수 투표율을 채우지 못해, 재선거를 거듭했음에도 불구하고 총학생회를 세우지 못하는 경우까지 생겨났다. 많은 사람들은 이를 두고 ‘학생회의 위기’, ‘학생들의 관심영역의 변화’, ‘학생운동에의 무관심’ 등을 그 이유로 지적했다. 하지만, 이유 이전에 우리가 누군가를 선택할 다양한 기호들이 존재하기나 했던가.

▲투표율을 채울 수 있느냐, 없느냐가 총학생회 선거에서 가장 중요한 명제가 돼버린 요즘, 이제 관심은 연세인들의 선택으로 모아지고 있다. ‘선택권이 없다’며 투표를 거부했던 이를 떠올리며, 이번 42대 총학생회 선거는 학내에 산재해 있는 ‘학생회에 대한 무관심’을 조금이나마 돌려 놓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수년 동안 계속된 학생들의 무관심 덕분인지 학생회가 자기발전적인 변화를 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이번에는 다채로운 선본들이 포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탈정치적 활동을 선언한 비운동권 선본, 새로운 학생회 움직임을 주도해 나온 선본, 대학의 자율성과 교육권을 최우선으로 삼겠다는 선본, 그동안의 학생회 활동을 토대로 재도약을 꿈꾸는 선본 등 그 어느 때보다 다양한 선택의 기회 앞에 놓인 우리는 선택을 할 것인가, 선택조차 하지 않을 것인가.

▲“계획을 꾸미고 그 일을 맡길 사람을 정확하게 선택할 수 있었던 왕들만이 역사에 이름을 남길 수 있었다. 바로 이것이 선택의 힘이다.”고 말했던 스페인의 철학가이자 문학가인 발타자르 그라시안. 오는 2005년의 학생사회를 힘차게 이끌어나갈 주자들의 선택권은 바로 우리에게 있다. 선거를 시작하는 내일, 연세인들이 과연 ‘선택의 힘’을 보여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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