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수요일 낮 12시 무렵, 어김없이 학생회관(아래 학관) 쪽에서 울려퍼지는 음악 소리. 몇몇 연세인들은 백양로를 지나다가 발걸음을 멈추고 밴드가 연주하는 리듬에 맞춰 몸을 움직이거나 노래를 따라 부르곤 한다. 또 몇몇은 그냥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음악이 흐르는 학관 앞을 그냥 지나쳐 간다. 연세인들의 참여와 지나침, 그 속에서 엠프를 통해 배출되는 소리의 파장은 자치단체들의 꿈을 싣고 수요일, 백양로를 휘감는다. 
이는 지난 2001년부터 자치단체들의 활동 공간을 마련해주기 위해 총학생회(아래 총학)가 열기 시작한 ‘수요문화제’의 평소 풍경이다. 수요문화제는 ‘문화의 일상적 마주침’이란 점에서 총학이 개최하는 문화행사 중 비교적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시험기간이나 축제 기간을 제외한 수요일마다 항상 접할 수 있는 정기적인 행사지만 자치단체들에게 있어서 수요문화제는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백양로를 지나는 연세인들과 직접 대면하면서 자신들이 연습을 통해 갈고 닦은 기량을 마음껏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공연 동아리들을 위해 마련된 학내 무대가 몇몇으로 한정돼 있기에 수요문화제는 그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기회로 작용했다. “가끔씩이지만 수요문화제를 볼 때마다 우리대학교에 다양한 재능을 가진 학생들이 많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는 정현수군(사회계열·1)의 말처럼 수요문화제는 행사를 지켜보는 학생들에게도 대체로 괜찮은 반응을 이끌어냈다. 하지만 지난 3년 동안의 수요문화제와 올해 수요문화제가 전혀 차별성이 없었다는 점은 총학이 그동안 변화를 꾀하지 못했음을 시사해준다. 이에 부총학생회장 최명규군(정외·4)은 “공연 실황을 녹음해 프로젝트 앨범을 만들어보자는 참신한 의견이 있었지만 실행에 옮기지 못해 아쉽다”고 언급했다.

축제에서 보여지는 정체된 총학 

수요문화제가 평소에 접할 수 있는 행사라면, 대동제·연고제·해오름제 등은 특정 기간 동안 학생들이 즐길 수 있는 ‘축제’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지난 3월 17일 41대 총학이 출범한 뒤 가장 먼저 치러진 문화행사인 해오름제는 학생들의 무관심 속에 진행됐다. 총학이 출범한다는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는 행사였음에도 불구하고 홍보와 준비부족으로 인해 많은 학생들을 해오름제 현장으로 불러내지 못했다. 총학은 해오름제를 계획할 당시 ‘등록금 동결 패러디 포스터 전시회’를 비롯, 다채로운 행사를 선보이려고 했지만 결국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이러한 현상은 대동제와 연고제 기간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급기야 지난 9월에 열린 연고제 때는 ‘국가보안법 철폐 강연회’와 ‘사립학교 토론회’ 같은 주요 행사가 당일에 취소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총학은 해명만 했을 뿐, 이에 관한 가시적인 대책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이처럼 총학 주최의 행사들이 무관심 속에 치러지거나 취소돼버리는 가장 큰 원인에 대해 최군은 “문화행사가 있을 때마다 준비 기간을 길게 설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문화’에 대해 전문적인 고민을 할 만한 사람이 총학 내부에 없었던 것도 문제”라는 말을 덧붙였다. 실제로 41대 총학은 문화국장이 공석인 상태로 축제와 문화행사를 진행했기 때문에 여러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총학은 문화행사를 개최하며 미흡한 점을 적잖게 드러내기도 했지만, 이와 달리 백양로에 작은 반향을 일으킨 행사를 기획하기도 했다. 대동제 당시 열린 5·18 영화제와 사진전이 그것이다. 이는 학생들의 의식 속에서 점점 사라지는 과거의 비극을 다시금 되새기게 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었다. 이와 더불어 연고제 개막 콘서트 ‘승부’ 역시 ‘국가보안법 철폐’라는 시대적 과제를 효과적인 방식으로 전달하며 학생들의 호응을 이끌어냈다. 개막 콘서트를 지켜봤던 우준형군(경영·3)은 “총학이 자보를 통해 국가보안법 철폐를 말할 때보다 훨씬 설득력이 있었다”며 이 행사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처럼 총학은 일련의 행사들을 통해 자신들의 정치적 주장이 문화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도록 만들어 학생들의 참여를 유도하기도 했다.

41대의 한계, 42대의 몫

지난 3월 41대 총학은 ‘우리, 하늘을 달리다’라는 구호를 외치며 힘차게 출발했다. 하지만 그들은 수요문화제와 축제 기간 동안의 몇몇 행사를 제외하면 특별히 각인될 만한 문화행사를 개최하지 못했다는 한계를 드러냈다. “사회적인 의미와 즐길 수 있는 분위기가 결합된 행사가 부족했던 게 사실”이라는 최군의 말처럼 총학도 자신들이 지닌 문제를 인식하고 있었다. 이제, 41대 총학의 활동은 끝났다. 머지 않아 새롭게 선택될 42대 총학은 이러한 고민을 안고 어떤 색으로 백양로의 문화를 이채롭게 그려낼 수 있을까.
 /최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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