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28년 도서관 소속기관으로 창설된 우리대학교 박물관은 대학박물관 중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이후 박물관은 1964년, 당시 사학과에 재직 중이었던 손보기 교수를 주축으로 한 공주 석장리 발굴이 10년 동안 노력의 결실를 이루면서 선사문화 발굴 및 연구중심 박물관으로 운영됐다. 지금 선사실에 보관돼 있는 구석기 유물의 대부분은 손교수가 가져온 것으로, 손교수는 1964년부터 약 20년간 박물관장을 역임했을 만큼 지금의 박물관이 있기까지 큰 공헌을 했다. 1988년 백주년기념관으로 자리를 옮긴 박물관은 현재 3층에 걸쳐 총 9개의 전시실을 가지고 있다. 1층에는 기획, 미술전시실, 2층에는 선사, 역사, 전각전시실, 3층에는 민속, 동·식물, 지질 전시실과 고려·조선도기실이 위치한다.

“한반도에는 구석기가 없었다는 학설이 지배적이던 때, 우리대학교 박물관을 필두로 구석기 발굴이 시작됐고 많은 유물을 발굴하는 성과를 거뒀다.” 학예부 박충래 연구실장은 대학 박물관에는 국립박물관 등과는 차별화되는 나름의 특성이 요구됨을 강조하며 우리대학교 박물관의 특색은 구석기 발굴에 있다고 설명했다. 이로 인해 고고학자들 사이에서 ‘연세학파’가 생길만큼 고고학 분야에서 우리대학교 학자들의 영향력은 지대했다.

그러나 한국 구석기 발굴 40주년을 맞는 지금 그 명성은 많이 쇠퇴한 상태다. 박실장은 “학교와 학생들의 관심부족”을 그 원인으로 꼽는다. 현재 박물관은 학교의 예산 지원 부족으로 7년 동안 한점의 유물도 사들이지 못할 만큼 유물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또한 구석기 연구에 선구적 역할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고고미술사학과나 인류학과 등의 부재로 인해 전문적 교육이 용이치 않아 지금은 다른 대학의 연구를 따라가는 데 급급한 실정이다. 전시실은 물론 시청각실 역시 학생들을 위해 항상 개방돼 있지만 “박물관이 있는 것은 알고 있지만 찾아가 본 적은 없다”는 조윤주양(인문계열·1)의 말처럼 찾는 학생들이 적어 유용하게 쓰이지 못하고 있다. 박실장은 “박물관이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학생들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박물관은 학생들의 관심을 고양시키기 위한 여러가지 노력을 펼치고 있다. 정기적으로 특별 기획전을 개최하고 교양강좌를 여는 등 활발한 학술 활동을 한다. 8일(월)부터 오는 12월 4일까지 열리는 좬연당쌍굴─사람, 동굴에 살다』도 박물관에서 준비하는 특별전시회다. 박물관은 이 전시회에서 지난 4월 21일부터 7월 31일까지 강원도 영월군의 쌍굴유적 발굴에서 거둬들인 성과를 선보인다. 지난 1964년 공주 석장리 유적을 발견하며 국내 최초로 구석기학 연구의 문을 열었던 박물관은 이번 발굴조사에서도 큰 결실을 얻었다. 이번 발굴에서는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시대를 망라한 유적과 유물이 발굴돼, 남한강 상류에 터를 잡고 살았던 선사시대 사람들의 문화와 특징, 자연환경 등을 연구함에 있어 귀중한 자료가 될 것으로 여겨진다. 박물관 최삼용 연구원은 “특히 두개의 굴 중 2굴에서 발견된 청동기 시대의 동굴무덤은 남한 최초로 발견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최연구원은 “신석기 시대의 생활터에서도 불땐자리를 중심으로 다양한 유물이 출토돼 앞으로의 연구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발굴의 의미를 설명했다. 이어 오는 27일에는 동굴에서 출토된 유물들의 의의를 살펴보는 학술세미나 ‘한국선사시대의 동굴유적과 문화’가 열릴 예정이다.

‘구슬이 서말이어도 꿰어야 보배’라는 속담처럼 아무리 박물관이 가치있는 유물들을 전시해 놓아도 활용하지 않으면 그것은 옛 물건들의 수집처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오늘은 박물관으로 발길을 돌려 옛 사람의 정취를 느껴보는 것이 어떨까.

        /고은지 기자 kej517@yonsei.ac.kr

       /양소은 기자 nacl1013@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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