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츠 카프카의 '성'

 

“미안하네, 카프카! 하지만 그 약속은 지킬 수 없네.” 카프카의 유언을 들은 친구 막스 브로트의 말이다. 그는 자신의 유고를 태우라는 카프카의 유언을 지키지 않음으로써 유고의 소멸을 막았다. 실존주의 작가 프란츠 카프카. 그의 작품에 일관된 해석을 내리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독자들은 그의 작품 속에서 인간 운명의 부조리성과 존재의 불안을 경험한다. 그의 소설에는 현대사회의 아노미 속에서 인간이 느끼게 되는 불안감과 자아의 부재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카프카의 미완성 장편소설 좬성(城)』의 주인공 K.는 성의 토지측량사로 일하기 위해 성 아랫마을에 도착한다. 그러나 관청에서는 그의 임명과 의무에 대해 확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다. K.는 성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노력하지만 이 일이 불가능하자, 자신의 모든 힘을 성의 관리자 클람과의 담판에 쏟는다. 그러나 클람 역시 성의 가장 깊숙한 내부를 지키는 문지기에 지나지 않았다. K.는 마을에서 만나는 남녀와의 대담, 성의 비서와의 개인적인 접촉, 자기 자신의 체험을 통한 추론 그리고 클람으로부터 온 두 통의 편지 등에서 성에 들어갈 수 있도록 정보를 수집한다. K.는 정보를 제공해 줄 수 있는 사람들과 이야기하지만 어느 누구와 만나도 항상 같은 대화가 오갔다. 이 대담은 동일한 도식에 의한 반복적 성격을 띤다. 여기에서 얻어지는 성에 대한 논의는 고정관념이나 전설 혹은 소문에 지나지 않으며, 경험과 편견의 혼합물일 뿐이다. 그의 판단이나 지각 역시 편견으로 흐려져 정보를 검증하려는 노력은 어려움에 부딪히고 만다. 결국 K.가 얻은 정보는 성은 ‘하나의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각자는 성이라는 하나의 대상에 대해 말하지만 성별, 지적, 사회적 수준에 따라 서로 다른 성을 이야기한다. 이들이 전하는 내용 사이에는 아무런 공통점도 존재하지 않고, 성에 대해 파고들면 들수록 도리어 성은 K.에게서 더욱 멀어진다.

 

좬성』은 상징과 비유로 가득 차 있다. 홍길표 교수(문과대·독문학)는 “이 소설에 정답이 있다면 카프카는 이미 카프카가 아닐 것이다”라고 말한다. 이 작품을 고정된 잣대로 평가하려는 것은 그만큼 불가능하고 의미도 없다. 주인공 K.가 들어가고자 열망했던 성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그 중 하나는 종교적 해석으로 성을 신의 은총에 대한 공간적 상징으로 보는 것이다. K.가 성에 가까이 가고자 할수록 점차 멀어지는 상황은 가깝고도 먼 인간과 신의 모순적 관계를 표현한다.

 

또다른 해석은 성을 권력 구조에 대한 공간적 상징으로 파악하는 방식이다. 이 경우 개인이 성이나 관리와 맺고 있는 의존관계 및 그에 의한 착취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최문규 교수(문과대·독문학)는 “성은 보이지 않는 관료체제, 권력 등을 나타낼 수 있는 기표”라고 설명한다. 이는 성이 한 개인이 아닌 힘과 모순적 논리를 통해 우리를 지배하는 거대한 체계임을 의미한다. 최교수는 “작품 속의 성이라는 기표는 영화 좬매트릭스』에서의 ‘매트릭스’라는 기표를 연상시킨다”고 말한다. 카프카는 주인공을 의도적으로 토지를 측량하는 직업의 소유자로 설정함으로써 실재를 현상적으로 찾으려는 현대인의 모습을 그리려 했다. 그러나 관료체제의 실체를 파악하려는 그의 의도는 좌절할 수밖에 없다.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투쟁하지만 스스로도 편견에 빠져 버린 K.처럼 우리는 현대사회 안에서 자신의 실재를 찾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지만 좌절하고 만다. 그러나 K.가 행하는 일련의 과정은 좌절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자신의 의미를 찾는 과정이 지속돼야 함을 암시한다. 카프카는 친구 오스카 폴락에게 “…한 권의 책, 그것은 우리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하네.”라고 편지를 보냈다. 이 미완의 단편(斷片)을 통해 우리의 얼어붙은 내면을 깨보는 것은 어떨는지.


        

        /고은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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