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아침, 백양로에는 많은 현수막이 걸려있다. 학내 여러 단체가 현수막을 거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 총학생회(아래 총학) 명의의 현수막이 적지 않다. 그 현수막들 보고 있자면, 문득 불편한 느낌이 든다.


예컨대, ‘국가보안법 폐지’라는 구호가 적힌 총학의 현수막을 보자. 나는 개인적으로 국가보안법이 폐지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과연 이러한 구호와 연세인들 개개인의 입장은 얼마나 일치하는가? 분명히 국가보안법 폐지에 반대하는 학생들도 상당수 존재할텐데, 이러한 학생들의 의사는 총학에 반영되지 않아도 되는 것인가?


총학이라는 조직의 구성원이 ‘2만 연세인’이라고 할 때, 총학은 그 구성원들의 합의된 바에 따라 운영돼야 한다. 그러나 현재 총학의 의사 결정은 총학회장단과 단과대 학생회장들로 이뤄진 중앙운영위원회(아래 중운위)에서 이뤄질 뿐이어서, 중운위의 의사 결정이 일반 학생들의 생각과 상반되는 경우가 빈번하다. 학생회 선거 시기에 단과대 후보나 총학 후보의 선거운동원들이 같은 옷을 입고 다녔던 것을 상기해보라. 이처럼 중운위원들이 대개 비슷한 정치적 입장을 갖고 있어 사실상 견제와 비판의 기능을 수행하기 힘들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1980년대 후반에 생긴 학생회 시스템을 현재까지 유지하고 있다는 데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현재의 학생회 시스템이 출현한 1980년대 후반에는 대학생들의 정치적 입장이 ‘군사독재 타도’라는 시대적 과제 앞에 비교적 균일했다. 그리고 학생들의 정치투쟁은 군사정권의 탄압 앞에 신속하게 이뤄져야 했다. 따라서 현재와 같이 총학, 단대학생회, 과반학생회라는 피라미드 조직이 필요했고, 당시에는 이런 구조가 크게 비민주적인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상당한 수준의 민주화가 이뤄진 현 시점에서, 대학생들의 정치적 의식은 보수부터 진보까지 매우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이제 학생회의 구조는 학생들의 정치적 다원성을 전제로 해, 실질적 민주성과 자율성을 강화하는 구조로 개편돼야 한다. 그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앞으로 총학은 학생들의 공통 관심사인 교육문제와 학내문제를 중심으로 운영돼야 한다. 이때까지 총학은 관성적으로 개나리투쟁으로만 학내 교육문제 해결 활동을 벌여왔다. 이제 총학은 1년 내내 연세인들의 1차적 관심사인 학내 교육문제 중심으로 활동해야 한다.


둘째, 연세인들의 다양한 의견을 존중해, 토론과 합의를 통해서 정치적 활동에 임해야 한다. 앞서 말했듯 연세인의 다원성을 인정해, 총학의 정치적 의사표현 이전에 그 구성원들의 의견을 묻고 함께 토론하는 과정을 가져야 한다.


셋째, 이제 총학은 자신이 모든 ‘연세인’을 대신할 수 있다는 태도를 버리고, 연세인의 자발적 활동을 최대한 지원해야 한다. 현재 대학생들은 주어진 활동보다는 자발적 활동, 즉 탄핵반대집회나 밴드 등 다양한 문화 활동을 좋아한다. 이제 축제 기획이나 정치적 사업을 총학이 다 맡아서 하기보다는, 다양한 연세인들의 자발적 활동을 지원해주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열심히 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세련되게 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다. 근본적인 학생회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한 시기다.

/오현석 (법학·4) 새로고침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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