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영화 『메멘토』를 보며, 10분밖에 기억을 지속시키지 못하는 주인공이 기억을 남기기 위해 자신의 몸에 문신까지 하면서 기록을 남기는 것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던 적이 있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은 주어진 마지노선 ‘10분’을 넘어서기 위해 그런 행동을 하며 기억의 끈을 좇는다. 이처럼 뭔가를 ‘기록’한다는 행위는 어떤 삶이나 사건에 있어 그것들을 유의미하게 변모시켜 지속성을 가질 수 있게끔 만든다.


▲요즘 사회 각 분야에서 ‘발전’이라 명명된 기제들에 의해 세상은 빠르게 움직이고 있고, 이에 따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의 일상 역시 파편이 돼 흩어져버렸다. 이렇게 촌각을 다투는 세상 안에서 의미 있는 일상을 발견하고 그 속에 참여하기란 쉽지 않다. 문제시 될만한 일상은 사람들이 미처 생각할 여유도 없이 지나가고, 잊혀져 버린다. 그러나 이를 정확히 집어내 ‘기록’하는 ‘그 무엇’이 있다. 이것이 바로 ‘기록영화’다.


▲‘기록영화’란 사실을 기록하는 논픽션 영화로, 지나치기 쉬운 일상을 카메라 안에 담거나 이미 담겨져 배포됐던 것들을 모아 하나의 작품으로 탄생시키는 것을 말한다. 주관적인 스토리와 서사 전개에 의존하는 극영화와 달리 기록영화는 철저히 사실을 기반으로 제작되기 때문에 보다 객관적이며, 사회 참여적이다. 그만큼 기록영화는 일상에 대한 기록을 통해 이를 재발견해내는 과정을 거쳐, 보는 이들로 하여금 ‘일상은 재해석 될 여지가 충분히 있는 유의미한 것’임을 여실히 드러낸다. 


▲신선함 때문인지, 혹은 지나치기 쉬운 일상적인 것들을 한번 더 곱씹어 볼 수 있기 때문인지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예전보다 기록영화를 찾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났다. 그 중에서도 지난여름 개봉된 『화씨 9/11』은 전국 관객 30만 명 이상을 기록하며 보기 드문 광경을 연출했다. 마이클 무어 감독이 부시 대통령과 관련된 일련의 영상들을 담아낸 이 작품은 감히 공개적으로 대적하기 힘든 ‘어떤 거대한 것’에 대해 사람들을 대신해 목소리를 발현, 관객들의 자연스러운 울음과 웃음을 이끌어냈다.


▲최근, 반향을 일으킬만한 기록영화가 한 편 더 등장했다. 모건 스펄록 감독의 『슈퍼 사이즈 미(Super Size Me)』. 이 작품은 자본주의의 상징인 거대 패스트푸드 상점 ‘맥도날드’를 정면 비판해 화제가 되고 있다. 이 작품을 위해 감독은 한 달 동안 맥도날드의 음식만 먹는 실험을 감행했고, 그 한 달간의 파격적인 기록은 스크린을 통해 부메랑이 돼 사람들에게 돌아왔다. 관객들은 이 영화가 기록한 그 여정에 함께하며 또 한 번의 지나친 일상을 발견함과 동시에 미처 잊고 있었던 요소들을 상기하게 될 것이다. 


▲“예술은 거울이 아니다. 그것은 망치다.”라고 기록영화 이론의 확립자 존 그리어슨은 얘기했다. 이는 예술, 즉 기록영화가 지향해야 할 목표를 잘 보여주고 있다. 영화에 차용된 기록은 ‘보여주기’에서만 그치지 말고, 그 기록이 형성된 시대 상황에 맞는 소재들을 발견하고 선정해 사회적 함의를 지닐 수 있게 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 함의가 빛을 발하기 위해서는 관객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어떠한 기록이 거울이 아닌 망치로 존재하는 이 시대에 그 망치를 들고 기록 내면에 부여된 의미 자체를 유의미하게 주조하는 일은 온전히 우리에게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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