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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의 역사와 언더우드가(家)

오늘 언더우드의 한국 활동을 기억하고, 찬하하는 예배에 참석하신 원한광 박사님을 비롯한 언더우드 가문의 여러분께 하나님의 크신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리고 이 뜻 깊은 자리에 함께 참석하신, 언더우드 가문과 연세를 사랑하는 내빈 여러분께도 같은 축복이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더구나 오늘 언더우드 선교상을 수상하신 ‘한국교회의 언더우드’와 같은 선교사님들과 언더우드 기념강좌의 순서를 맡아 주신 여러분께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120년 전에 한국에 도착한 언더우드 선교사는 그의 동역자들과 함께, 기독교 선교와 새로운 교육과 근대문명의 꽃이 한국 땅에 활짝 피어나기를 꿈꾸었습니다. 그 꿈의 실현을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다해 왔으며, 끊임없는 헌신과 희생을 감당하였습니다.

1885년 4월 5일 부활절에 한국의 첫 복음선교사로 내한한 언더우드 선교사는 우선 알렌 의사가 세운 제중원에서 동역하며 근대의료와 근대 의학교육을 통한 활동에 매진하였습니다. 알렌, 헤론, 에비슨 선교사들과 협력하여 마침내 제중원이 세브란스병원과 세브란스의과대학으로 발전하여 우리 ‘연세’의 한 축을 이루는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1886년부터 서울 정동에서 고아원과 기숙학교를 열어 처음으로 근대적인 사회사업의 모형을 만들어 내었으며, 특별히 기억할 일은 1894년의 청일전쟁기, 전쟁의 참화와 당시 도처에 만연되던 전염병에 신음하며 쓰러져 가던 한국인들을 위해 자신의 신변을 염려하지 않고 헌신한 일입니다.

그의 이러한 실천적 봉사는 당시 한국인들에게 선교사와 기독교에 대한 깊은 신뢰를 안겨 주었고 마침내 한국에서의 선교활동에 급속한 진전을 이룩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 분의 이러한 한국사랑의 실천 속에는 궁극적으로 한국의 복음화와 근대화, 특히 의료와 교육과 선교라고 하는 세 가지 목표가 바르게 이루어지기를 염원하는 꿈이 있었습니다.

그 가장 구체적인 열매가 연세대학교입니다. 곧 언더우드의 꿈이 온전히 실현된 기관이 연세대학교이며, 또한 연세대학교는 언더우드 가문의 헌신과 희생의 기반 위에서 발전해 온 것입니다. 이렇듯 언더우드 가문과 연세대학교는 한국의 근현대사를 함께 개척해 왔고, 그 과정에서 한국사회의 발전과 변혁의 주체가 되어 온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언더우드 가문은 한국 근대사의 격동의 시기마다 한국인의 가장 절친한 친구와 형제로서 충실한 지원자의 자리에 있었고, 스스로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간직한 채 고락을 함께 하였습니다. 구한말의 혼란한 상황에서 언더우드 1세와 그 부인의 한국에 대한 애정 어린 활동을 우리 모두는 잘 기억합니다.

또한 일제 침략기에 언더우드 1세는 물론 2세 원한경 박사까지 연세대학교의 설립과 육성을 통해 고통 중에 있는 한국을 위해 겸허한 자세로 봉사한 일은 그 어디에도 비할 수 없는 공헌입니다. 그리고 뒤이은 분단과 전쟁 중에 언더우드 가문은 말할 수 없는 비운을 경험해야 했습니다. 언더우드 2세 부인이 좌익 테러리스트에 의해 목숨을 잃은 것입니다.

이런 불행의 와중에서도 언더우드 가문의 한국에 대한 봉사는 계속되었습니다. 특히 한국전쟁기에는 언더우드 3세인 원일한 박사께서 휴전회담의 수석 통역을 맡는 등 한국의 평화 실현에 혼신의 힘을 다하였습니다. 이에 지난 1월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원일한 박사님의 장례예식에서는 그 분을 애도하는 물결이 우리 연세대학교의 구성원은 물론 평화를 사랑하는 한미 양국의 각계 인사들로 큰 대열을 이루었습니다.

언더우드 가문과 한국, 그리고 우리 연세대학교와의 관계는 역사가 존재하는 한 영원히 계속될 것입니다. 비록 언더우드 가의 주된 거처를 미국으로 옮긴다고 하여도 우리 연세대학교에 서린 언더우드 가문의 정신과 그 소중한 흔적은 언제까지나 그대로 남아 우리를 가르치고 인도할 것입니다.

이미 우리 대학교는 수년 전부터 언더우드 선교사의 선교정신을 널리 기리는 ‘언더우드 선교상’을 제정하여 매년 세계 도처의 선교지에서 언더우드와 같은 사역에 매진하시는 선교사들을 모셔 시상하고 있으며, 또한 언더우드에 대한 학술적 연구와 그 연구의 저변을 확대시키고자 하는 학술강좌를 개최해 오고 있습니다. 작년에는 옛 언더우드 가의 사택을 ‘언더우드가 기념관’으로 꾸며 ‘연세’와 더불어 영원히 이어질 언더우드 정신의 현장으로 삼고자 하였습니다.

오늘은 한국생활을 일부 정리하고 이한하시는 언더우드 4세 원한광 박사님과 그의 가족들, 친척 친지들을 모시고 그동안 지속되어 온 언더우드 가문의 한국 봉사와 연세 사랑의 공적을 찬하하는 예배를 드리는 날입니다. 그러나 원한광 박사님께서는 앞으로도 자주 고향인 한국을 왕래하시며 학교일도 보시고 한미 관계의 중요한 일로도 계속 활동하실 것입니다.

특히 미국에 계시면서도 우리 연세대학교와 관련된 일에 큰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활동을 하실 것으로 기대합니다. 따라서 오늘 여기는 결코 헤어짐을 고하는 석별의 시간도 아니며, 그러한 장소도 아닙니다. 우리의 관계는 계속될 것이며, 우리의 기억과 언더우드 가의 역사는 영원할 것입니다. 한 시인의 말처럼, 님은 가시지만, 우리는 결코 님을 보내지 않을 것입니다.

앞으로도 영원히 언더우드 가문과 ‘연세’의 관계, 그리고 언더우드 가문과 한국의 관계가 돈독한 우의와 사랑으로 하나가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다시 한번 하나님의 가호가 언더우드 가문 위에, ‘연세’ 위에 영원하시기를 기원하며, 찬하의 말씀에 대신합니다.

연세대학교 총장 정창영


<이 글은 지난 10월 26일에 우리대학교 동문회관에서 거행됐던 ‘언더우드가 선교 사역 찬하식’에서 행한 총장 인사말 전문입니다.>

연세춘추  chunchu@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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