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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무대 뒤 숨은 열정, 환상을 전하다테크니컬 매니저 조용신 동문(지난 1995년 전기공학과 마침)
  • 권혜진 기자
  • 승인 2004.10.31 00:00
  • 호수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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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드웨이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러브스토리’

누구나 한번쯤 만화영화로 봤을 법한 『미녀와 야수』가 지난 8월부터 뮤지컬로 공연되고 있다. 만화적 상상력을 현실에 옮기기 위한 노력이 남달랐을 터. 환상적인 무대를 위한 기술이 곳곳에서 관객들을 기다린다.

동화를 현실로 만드는 사람, 관객들에게 ‘환상을 전해주는’ 이는 바로 설앤컴퍼니 테크니컬 매니저 조용신 동문(지난 1995년 전기공학과 마침)이다. ‘테크니컬 매니저’란 조금은 낯선 직업에 의아해 하자 그는 “해외작품을 국내에서 공연할 때 오리지널 의상, 세트, 소품, 음향과 조명 등을 한국 공연장에 맞게 적용시키는 일”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해외와 국내 공연장은 구조부터 다르기 때문에 개막 전부터 각별한 노력이 필요하다. 조동문은 “『미녀와 야수』의 세트도 일부가 노화돼 기술적인 문제로 사고가 날 뻔했다”며 아슬아슬했던 경험을 털어놨다. 그러나 “관객들이 환상적인 무대장치가 멋졌다며 찬사를 보낼 땐 보람을 느낀다”고 말하는 그의 목소리는 자신감이 넘쳤다.

뮤지컬과 무대에 푹 빠져 사는 그가 이 분야에 관심을 가진 것은 의외로 공학도였던 대학시절이다. 고교시절부터 공학 전반, 특히 제어 분야에 흥미를 느껴 전기공학과에 진학한 그였지만 정작 대학 시절의 대부분을 차지한 것은 노래패 ‘울림터’였다. 그는 “공연을 준비하면서 노래보다는 스태프나 연출에 더 끌렸다”며 처음 연출과 인연을 맺은 계기를 떠올렸다.

‘울림터’ 활동을 하면서 조동문은 노천극장에서 13번의 공연을 연출하고, ‘뮤직비디오 감상회’, ‘캠퍼스 재즈 페스티벌’을 기획하는 등 점차 경험의 폭을 넓혀갔다. “공연을 준비하면서 무대 자체에 매력을 느꼈고, 또 그 무대에서 열린 공연를 통해 사람들이 감동받는 것이 좋았다”는 말에서 대학시절부터 키워온 무대에 대한 열정이 묻어났다. 그 때 조동문이 ‘누린 것’들은 훗날 그가 사회로 진출했을 때 ‘초짜’가 아님을 증명했고, 엔터테인먼트 방면으로 발을 넓히는 기회도 줬다.

조동문이 본격적으로 진로를 지금의 일로 정한 것은 유학을 떠나면서다. “졸업 후, KMTV 기획실에서 일했지만 사무실보다 현장의 열기를 느끼고 싶었다”는 조동문이 유학 결심을 굳힌 나이는 서른 살. 그는 “적지 않은 나이에 주위의 만류까지 겹쳐 진로를 바꾸는 것이 쉽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그럴때마다 그는 “해야 한다, 지금 안하면 할 수 없다”며 마음을 추스리고, “일단 선진국으로 가서 기술을 배우자. 공연이 많은 곳으로 가서 많이 보자.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서 해보자”고 다짐했다고 한다. 그렇게 6년여에 걸친 유학시절의 막이 올랐다.

원하는 공부를 할 기회를 얻었지만 조동문은 “동기들은 대기업에서 과장·부장 자리에 오르는데, 내가 한국에 돌아가 어느 위치에서 일할 수 있을까”라는 불안감에도 끊임없이 시달렸다고. 게다가 유학을 떠나며 들고 간 돈은 달랑 퇴직금뿐이었기에, 그는 해보지 않은 아르바이트가 없었다. 인터넷 회사, 공연스태프, 교포 자녀 과외, 세탁소 배달, 꽃집까지. 학비에 생활비까지 버느라 아르바이트에 매달렸던 기억을 되새기며 그는 “유학은 자기투자인데 밑천이 너무 없으면 힘들다”며, “경제적 지원을 받아 추후에 성공해서 꼭 갚겠다는 생각으로 최단시간에 원하는 바를 이루라”는 유학에 대한 현실적인 조언을 남겼다.

심적으로, 경제적으로 힘들었을지라도 유학시절은 지금의 그를 만든 밑바탕이 됐다. ‘가난한 유학생’ 조동문은 에이전시과 각종 할인제도로 공연비를 아끼면서 일년에 70여편의 뮤지컬과 연극을 봤다. 그 때 모은 티켓이 라면박스 한 상자를 가득 채운다고. 조동문은 “무대에서 표현되는 것이 워낙 다양한 곳이라 성전환자의 이야기인 『헤드윅』 같은 작품을 보면서 문화적 충격을 받기도 했다”며 현지 공연 이야기를 꺼냈다. 그가 접한 문화적 다양성과 현지에서 느낀 생동감은 뮤지컬 잡지 『더 뮤지컬』에 기획기사를 연재하는 데도 든든한 재산이 됐다. 이어 “아르바이트라고 한 일이었는데 우리나라의 뮤지컬 붐과 맞물리면서 귀국 후 빨리 자리를 잡고 일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더 뮤지컬』에 브로드웨이 뮤지컬 소식을 전하는 ‘뉴욕통신원’ 활동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이미 정해진 길을 걷기보다 새로운 길을 개척해 온 조동문은 후배들에게 “원하는 일이 있다면 끌어주기를 기다리지 말고 능동적으로 나설 것”을 강조했다. 아울러 “자기 전공에만 얽매이지 말고 여러 분야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기울여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한국 땅에 다시 돌아와 테크니컬 매니저로 활동하는 지금, 그는 “일이 즐겁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조동문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창작물에도 참여해 기술감독직을 맡고 창작단계부터 연출부에서 활동할 계획도 갖고 있다. 늘 새로운 길을 꿈꾸는 그는 다음 달에 개막하는 『아이러브유』와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로 또 한번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권혜진 기자  hye-jin@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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