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문화네트워크 '티팟'의 뚜껑을 열어본다

난계국악축제, 부산국제영화제, 부산자갈치문화관광축제, 서울세계불꽃축제, 안동탈춤페스티벌, 이천도자기축제, 전주세계소리축제, 진주남강유등축제, 충주세계무술축제….

지난 10월 한달 동안 우리나라에서 열린 다양한 축제들이다. 이 중에는 부산국제영화제처럼 내실있는 준비로 풍성한 결실을 맺은 축제도 있지만, 지역 주민들의 무관심 속에 막을 내린 축제도 있다. 웬만한 도시에는 하나 이상의 지역축제가 있기 마련이지만 주민들에게 큰 호응을 얻는 축제를 꼽으라면 난감해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정부, 지방자치단체, 시민단체 모두 이러한 문제에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에 티팟의 전효관 대표는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는 의욕만 앞서지 주민들을 참여시키는 방법을 모르고 있다”며, “시민단체 역시 정책적 제안을 할 수 있어도 그것을 실행에 옮길 힘은 없다”고 지적한다. 아무도 할 수 없었던 일을 해보겠다는 포부 하나가 ‘티팟(tea-pot)’ 탄생의 원동력이 됐다.

‘시민문화기업’, 티팟

지난 3월 인터넷 홈페이지(http://www.tea-pot.or.kr) 운영을 시작으로 티팟은 처음 세상에 알려졌다. 50여명의 각계 전문가들의 참여가 확정되면서 마침내 지난 7월 티팟은 사업설명회를 갖고 본격적인 행보를 시작했다. 티팟은 얼핏 보기에 시민단체로 인식되기 쉽지만, 사실은 ‘시민문화기업’을 표방하고 있다. “티팟은 시민사회의 언어에 실행력의 바퀴를 달아 줄 기업”이라는 전대표의 말처럼 그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요소는 ‘정책의 실행’이다. 그동안 항상 ‘요구’에만 그치고, 당위적인 주장만을 되풀이했던 시민단체의 활동에 대한 반성이 기업으로서의 티팟을 시작하게 한 셈이다.

프로그램 네트워크 담당 이광준씨는 “구조가 열악하고 자생력이 없는 시민단체가 독자적인 대안을 만들어내는 건 하늘의 별 따기”라는 말로 티팟의 차별성을 설명했다. 그들은 국가에서 진행하는 문화사업에 직접 참여해 연구·조사·프로그램 기획 등의 서비스를 제공한 후, 그에 합당한 대가를 받아 이윤을 추구하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이러한 계획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티팟은 ‘기업의 이윤은 사회적 행복을 위해 추구해야 한다’는 원칙을 세워 이윤을 사회에 공헌하는 방향으로 사용함과 동시에 윤리적 기업을 표방하고 있다.

티팟은 연구, 프로그램, 실행 네트워크까지 크게 세 단위로 구성돼 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티팟이 이루고자 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티팟이 추진하는 문화사업에 대한 시민들의 적극적이고 자발적인 참여다. 문화기획 담당 황덕신씨는 “축제의 전반적인 계획시, 정부에서는 주민들의 의사를 반영할 만한 여지를 남겨두지 않는다”며, “주민들이 직접 만들어가는 축제가 티팟의 목표 중 하나”라고 말했다. 황씨는 “지난 6월에 열린 ‘한도시 이야기’ 프로젝트가 그러한 축제의 좋은 모델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도시 이야기’는 뮤직비디오, 퍼포먼스, 거리공연 등 다양한 방식을 이용해 지난 6월 9일 서울의 하루를 담아내는 행사였다. 이 행사는 전문가 외에도 캠코더와 폰카를 갖고 있는 시민들이면 누구나 서울을 촬영해 작품의 주체로 참여할 수 있는 ‘열린’ 형식으로 진행됐다. 시민들이 담아낸 서울의 장면으로 만든 모자이크 작품에는 티팟이 시민들의 참여가 바탕이 된 축제를 기획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고스란히 내포돼 있었다.

이러한 목표의 달성을 위해 티팟은 ▲문화도시 컨설팅 ▲농촌―도시 연결 사업 모델 ▲문화예술교육 사이트 운영 등의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이 중에서 농촌―도시 연결 사업 모델은 현재 구상 중에 있으며, 나머지 두 사업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문화도시 컨설팅 사업의 핵심인 ‘순천 문화도시 만들기’는 심포지엄을 통해 순천이 문화도시로 발전할 수 있는지 여부를 살펴보는 작업이 진행 중이다. 티팟은 보통 정부에서 이러한 사업을 시작할 때 실시하는 형식적인 공청회를 지양하고, ‘주민들과 함께 하는 페인팅 행사’와 같은 색다른 형식으로 문화도시 건설에 대한 방향을 설명하고 있다. 이에 대해 황씨는 “문화도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부터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도시의 문화를 가꾸고, 스스로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의 문화수준을 진단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싶었다”고 언급했다.

무엇보다 티팟이 추진하고 있는 사업 중 가장 구체화된 영역은 문화예술교육 부문이다. 정부에서 추진 중인 ‘문화예술교육 활성화사업’의 일환으로 운영되는 문화예술교육 사이트 ‘아르떼(http:// www.arte.ne.kr)’에는 티팟의 일원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 ‘아르떼’는 문화예술교육에 관한 현장의 경험과 사례를 축적해 교사와 학생 모두에게 유용한 정보 제공을 목표로 한다. 지금도 ‘아르떼’에서는 영화교육, 이상적인 학원 ‘문화 공방 작업실’ 등 문화예술교육에 관한 수많은 논의들이 오가고 있다.

섭씨 1백도를 향해!

“우리가 하는 일은 옷을 만드는 일에 비유할 수 있다. 하지만 스웨터를 만드는지 셔츠를 만드는지까지는 알지만 구체적인 디자인은 아직 모르는 상태다.” 그들은 활동이 이제 막 시작됐기 때문에 지금 추진하는 사업도 티팟을 만들어나가는 과정 중 하나라고 말한다. 정부와 시민단체가 할 수 없었던 문화 영역의 사업들을 자신들이 이뤄내겠다는 당찬 포부를 가진 그들. 작은 도서관을 리모델링하는 일부터 지역축제 기획까지 그들이 해야 할 일은 무궁무진하기에 오늘도 ‘티팟’은 섭씨 1백도를 향해 끓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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