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웃에 대한 관심은 여유가 아니라 약속이다"

▲우리대학교 학생들은 학교 앞 횡단보도를 건널 때면 간혹 긴장하곤 한다. 신호를 기다리고 있으면 어느 사이엔가 한 할머니의 ‘손 세례’를 받기 때문이다. 학생들뿐만 아니라 그 횡단보도를 지나 신촌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은 종종 이같은 경험을 하게 된다. 검은 비닐봉지 하나를 손에 쥔 할머니는 지나가는 사람들을 때리거나, 거리 한복판에 앉아 사람들의 발목을 붙잡기도 한다. 그럴 때면 학생들이 이를 교묘하게 피하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어느 덧 할머니는 학생들 입에 오르내리면서 유명인사가 됐다. “너 학교 앞에 있는 할머니 알지?” “응. 나 오늘 또 맞았어.”

▲내가 할머니에게 처음 ‘맞았을’ 당시 꽤나 놀란 마음은 곧 언짢음으로 변했다. 할머니의 손이 제법 매웠기 때문일까. 인상을 찌푸린 채 그 자리를 피해 버렸다. 그 때는 할머니가 사람들을 때리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알고 싶지 않았다. 나는 다가오는 마감시간에 쫓기며 취재를 가야 했고, 어느 덧 시험기간이 다가왔으며, 과제는 쌓여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막연하게 구걸을 하고 있지 않을까라고 짐작해봤지만 그 물음은 머릿속에서 이내 사라졌다. 할머니에 대해 좀더 알게 된 건 최근의 일이다. 횡단보도 앞에서 친구를 기다리다 무료한 눈이 할머니에게 머물렀다. 마르고 검은 두 손에 들린, 요즘은 잘 씹지도 않는 빨강, 초록 포장의 이름 모를 두세 개의 껌. 그날 나는 그 검은 비닐봉지 안에 몇 개의 껌이 들어 있었음을 알게 됐고, 할머니의 ‘손 세례’는 누군가의 도움을 애타게 찾는 ‘손짓’임을 알게 됐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저소득층의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하기 위한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제가 존재한다. 근로능력의 유무와 연령에 관계없이 소득 인정액이 최저생계비 이하이면서 가족의 부양을 받지 못하는 저소득층에 기초생활을 보장해주는 제도다. 하지만 수급자 선정기준이 까다롭고, 현재 지급되는 보조금으로는 현실적으로 생활이 어려운 상황이다. 이처럼 유럽의 몇몇 국가들과 비교하면 우리 사회의 사회보장제도는 아직 걸음마 단계일 정도로 매우 빈약하다. 그러나 선거철을 제외하곤 이러한 이야기들이 사회적 관심의 대상이 된 적은 거의 없다. 필요성에 대한 공감도, 고민도 눈 앞의 경제적 이익에 밀려 뒷전일 뿐이다. 대학생에게도 이러한 상황은 남의 나라 이야기처럼 들린다. 극심한 취업난과 무한 경쟁 속에서 우리는 앞으로 달려 나가는 일 외에는 관심을 둘 여유조차 없다. 하지만 사람의 사람에 대한 관심과 예의가 여유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사람은 누구나 제 삶의 1초도 혼자일 수 없다. 혼자라고 느끼는 그 순간에도 우리는 누군가가 만들었을 옷을 입고, 누군가가 지어 놓은 밥을 먹으며, 누군가의 기억 속에 살아있다. 혼자가 아닌, 사람과 사람이 어우러지는 우리네 삶은 결국 하나의 근원적인 묵언을 공유하고 있다. 사람의 사람에 대한 관심은 여유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약속’임을. 이는 더이상 여유가 없다는 핑계 아래 내 이웃에 대한 관심을 소홀히 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약속을 어긴 내가 할머니의 손길에 아픔을 느끼며 마음의 빚을 지게 된 대가를 치렀던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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