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라늄 농축에 이어 지난 1982년 원자력 연구소가 시행한 플루토늄 추출이 밝혀지면서 외교적 곤궁에 처한 한국 정부는 이른바 ‘핵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4원칙’을 천명했다. 평화적 핵이용은 확대하되 우려를 살만한 엉뚱한 짓은 절대로 하지 않겠다는 기존 방침을 재확인했다.

본래 ‘평화를 위한 원자력’이란 개념은 아이러니컬하게도 핵무기를 최초로 개발해 대량살상에 이용했던 미국이 들고 나온 것이다. 1950년대 미―소 양극 체제 하에서 미국과 소련은 핵무기의 확산을 억제하기 위해, 핵무기 기술 그 자체는 미·소가 독점적으로 관리하되 ‘평화를 위한 원자력‘이란 슬로건으로 원자력을 본격 상용화할 것을 천명한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영국과 프랑스, 중국이 순차적으로 핵무기를 보유하게 됐고, 다시 이들은 다른 국가로의 핵무기 확산을 방지하는 NPT(핵확산방지조약) 체제를 탄생시킨다. 결국 NPT 체제도 성공적이지 못했다.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만 인정했는데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 등이 비밀리에 핵무기 개발을 성사시켰기 때문이다. 원자력의 연료인 우라늄을 농축하거나 사용 후 핵연료에 들어있는 플루토늄을 추출하면 핵무기의 원료가 되기 때문에 평화적 이용과 핵무기 개발 사이의 경계는 학문적 호기심만으로도 무너질 만큼 모호하다.

핵주권론 같은 어리석은 망상을 완벽히 제거하고 원자력을 평화적 이용의 틀 안에 가둬둔다고 해서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이 장려될 이유도 없다. 상업 원전 등장 초기, 수십년 내에 원자력으로 모든 전력을 공급하리란 장밋빛 전망과는 달리 원전은 1990년대 들면서 성장세가 크게 둔화됐다. 특히 북미와 서유럽 지역에선 1990년 이후 원전 추가 건설이 거의 중단된 상태다. 1998년 기준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29개국 중 원전을 추가 건설할 계획이 있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 두 나라에 불과하다. 덴마크, 오스트리아 등 13개국은 원전을 가동하지 않고 있으며 발전에서 원전의 비중이 높은 독일(30%), 벨기에(58%), 스웨덴(47%) 등은 가동중인 원전을 폐쇄하는 정책을 추진중이다.

미국, 프랑스 등 나머지 9개국도 원전 추가 건설 계획은 없는 상태인데 지난 해 초 영국이 원전 확대를 중단하겠다는 발표를 했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회원국들에서 원자력 발전이 홀대받는 것은 핵사고의 위험, 핵무기 확산, 핵폐기물 문제를 제외하더라도 원전 건설 절차와 투자비 조달 환경, 원전 폐로와 핵폐기물 관리 비용 등 발전비용이 높기 때문이다. 그리고 원자력발전은 처치 곤란한 핵폐기물을 발생하는 등 환경친화적이지 않다.

만약 ‘원자력발전은 온실가스나 공해물질을 배출하지 않는 청정에너지이며 기술혁신으로 안전성이 거의 완벽한 수준에 도달했다면’ 왜 환경선진국이라 불리는 국가들이 원자력을 중단하겠는가? 교토의정서에서 온실가스 저감 수단 중 원전을 사실상 배제하기로 한 점도 원전이 온실가스는 줄일 수 있지만 처분 곤란한 핵폐기물을 발생시키는 환경친화적이지 못한 에너지원이라는 점 때문이었다. 석유전쟁과 기후변화를 유발하는 화석연료, 위험한 에너지인 원자력에 의존했던 20세기는 지나갔다. 지속가능하고 평화로운 미래를 위해선 자연과의 조화를 생각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다행히 풍력, 태양광, 바이오매스 등 온실가스 배출이 적고 고갈되지 않는 재생가능에너지는 빠르게 성장하면서 기술 신뢰성, 경제성이 한층 개선됐다. 이미 유럽의 원자력 선진국들이 원자력 대신 재생가능에너지를 선택하고 있다. 한국 정부가 진정 동북아와 세계의 평화를 추구한다면 이제는 평화적 이용에 각별한 노력이 필요한 원자력 대신 그 자체 속성이 평화로운 재생가능에너지를 선택해야 할 것이다.

/에너지 대안센터 이상훈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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