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004년 3월부터 서대문 무악동 평화의집에서 빈곤층을 대상으로 심리상담 자원봉사를 해왔다. 그러다 금년 초 학생 자원봉사대를 조직해 활동을 ‘좀더 확대시키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했다. 이런 나의 염원이 하늘에 전달됐는지 금년 2학기부터 우리대학교에서 처음으로 사회봉사활동이 정식 학과목으로 개설됐다. 한 학기에 총 30시간을 사회봉사하면 2학점을 얻게 된다. 나는 신이 나 앞뒤 가리지 않고 덜커덕 50명 정원을 신청했다. 그리고 지난 여름동안 은근히 고민했다. 과연 50명이란 대부대의 학생이 신청해 올 것인가? 또 과연 온다고 하더라도 이들 50명을 어디로 파견할 것인가?

그러다 그럭저럭 여름방학이 끝나고 나에게 출석부가 날아왔다. 그런데 놀랍게도 무려 48명이나 수강신청을 했다. 나의 첫번째 고민은 삽시간에 해결됐다. 그러나 50명의 대부대를 과연 어디로 파견할 것인가? 고민고민하다 무악동 평화의집에 SOS를 쳤다. 그랬더니 카톨릭에서 운영하는 빛나라 공부방을 소개해줬다. 빛나라 공부방은 다른 여러 곳에 파발마를 띄웠다. 연세대생들이 똑똑하고 붙임성이 있다고 소문이 나서 그런지 수많은 곳으로부터 지원이 쇄도했다. 나의 두 번째 고민도 눈 녹듯 사라졌다. 오히려 자원봉사기관을 내 쪽에서 선별하는 즐거운 고민이 뒤따랐다.

이번 학기에 나의 제자들은 여덟 개의 공부방, 무악동 평화의집, 그리고 바른 사회를 위한 시민회의 등 모두 열 군데에서 봉사한다. 공부방은 저소득층 초중고생의 공부를 돌봐 주는 곳이다. 저소득층 부모는 모두 아침 일찍 일하러 나가고 밤늦게 들어오기 때문에 자녀를 돌볼 짬이 없다. 그러다보니 자연 청소년들은 밖으로 나돌게 되고 나쁜 곳에 기웃하고 마수에 걸려든다. 공부방에서는 단순히 학과목만을 가르쳐주지 않는다. 그들에게 따뜻한 사랑을 베풀고 올바른 삶을 가르친다.

무악동 평화의집에서는 좀 색다른 활동을 벌인다. 소위 반찬 공동체를 운영하는 것이다. 이곳 빈곤가정에서는 간장 하나를 놓고 식사를 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따라서 이곳에서 ‘Food Bank’같은 것을 운영한다. 근처 음식점으로부터 반찬을 기증받고 또 주민들이 공동으로 반찬을 만들어 서로 나누어 먹는 것이다. 한편 바른 사회를 위한 시민회의에서는 장애우 돕기 운동, 자원봉사자를 필요로 하는 복지시설 지도 만들기, 국회의원 활동모니터링 등의 활동을 전개한다.

자원봉사학생들은 같은 기관에 파견돼도 봉사시간이 서로 달라 만날 기회가 드물다. 그래서 나는 이들이 서로 정보를 교환하도록 나의 홈피에 자원봉사자를 위한 게시판과 채팅방을 개설했다. 이곳을 통해 봉사자들이 자기가 맡은 일, 거기서 얻은 지식과 경험 등을 서로 나눈다.

제자들이 남기는 글을 보고 나는 자주 가슴이 저려온다. 동시에 제자들에게 강한 자부심을 느낀다. 어찌 보면 이들을 나의 제자라고 말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나로부터 단지 2시간여의 봉사강의를 들었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에게 나의 석·박사제자 이상으로 애정이 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의 따뜻한 마음, 사회에 대한 열정, 그리고 학교에 대한 사랑이 나의 가슴을 울리고 있기 때문이다.

/심리학과 이훈구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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