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약서는 신뢰의 시작점으로 거듭나야 한다"

▲이번 주에 본교 교수학생협의회(아래 교학협)가 열린다. 이번 교학협에서는 지난 5월 1일 총학생회(아래 총학)와 학교가 맺은 협약서를 이행하기 위해 세부사항을 중점적으로 논의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협약서 이행은 학생들에게 성과 없는 ‘연례행사’의 의미로만 머무르는 것 같다.

▲성과가 없다? 혹자는 협약서가 도출됐으면 이행되는 것이 당연하지 않느냐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행이 제대로 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지난 2003년과 올해 협약서의 ‘지난 1996년 이후 합의문 중 미이행 사항을 교학협에서 점검하고 시행한다’는 마지막 조항. 그리고 올해 초 독문과 사건 발생시 지난 1996년 협약서를 근거로 진상규명위원회가 임용정보 공개를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지난 1996년 이래 협약서 도출 이후 정작 중요한 ‘이행’ 여부에 대해 아는 학생은 거의 없다. 당연하다. 그 동안 협약서 이행상황에 대한 아무런 공고가 없었기 때문이다. 2학기 중반 쯤이면 총학이 협약서 이행의 당위성을 홍보하고, 이례적으로 중간점검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학기말에 협약서가 얼마나 이행됐는지, 미이행 사안은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설명과 해명은 없다. 물론 협약서 이행 공지가 총학만의 역할은 아니다. 협약서 맨 밑에는 언제나 학생복지처장과 총학생회장의 이름이 적혀있는 만큼 학교측에도 공고의 책임이 있다. 그러나 여지껏 학교 이름으로 그 역할을 하지 않았고, 그것은 이행에 대한 적극적 의지가 없었다는 것을 반증한다.

▲한편, 협약서 조항의 모호함도 미이행의 요인으로 작용한다. 우선 올해 협약서의 일부를 보자. “향후 경상비 등록금 의존율의 점진적 축소, 기존의 일괄 상대평가 대신 수업별 특성에 맞는 평가제의 도입, 교육부의 장애학생 평가 결과를 토대로 미비점의 조속한 보완, 자치공간 리모델링 추진…” 언뜻 보기에 협약서는 완벽해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이 없고 이행시기가 명시되지 않았다. 많은 학생들이 명확하지 않은 협약서를 비판하는 이유는 지금까지 이행시기가 담보되지 않은 협약은 제대로 시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몇 년을 두고 ‘추진 중’이라는 미명 아래 악용할 수 있다는 얘기다. 사실 학교는 등록금 반환만큼 명시적인 것은 바로 이행했지만, 그 외 조항은 곁가지로 치부해 버리는 경향이 있지 않았나.

▲학생들의 대표인 총학과 학교간의 협약이 학생들에게 실제적인 복지혜택으로 나타나지 않는 ‘연례행사’로 머무른다면 학생들이 학교에 두는 거리감은 좁혀지지 않는다. 학생복지처장이 협약서에 서명할 때는 분명 지킬 자신이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협약서가 단순히 본관점거를 풀기 위한 미봉책은 아니지 않나. 앞으로 있을 교학협에서 총학은 협약서에 대한 합리적인 구체안을 제시해야 한다. 또한 협약서 이행의 사실상의 열쇠를 쥐고 있는 학교측은 약속을 지킨다는 마음으로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하고, 미이행 사안에 대해서는 그저 덮어버리려 하지 말고 아닌 진심어린 사과를 해야 한다.

▲협약서 이행에 관한 잡음은 학생과 학교간의 불신을 키울 뿐이다. 대학은 그 어떤 사회보다도 구성원 간에 신뢰가 바탕이 돼야 한다. 매년 반복된 협약서 도출과 그 미이행은 연세사회에 신뢰를 쌓지 못하게 한 큰 요인이다. 경상비 등록금 의존율이 얼마나 낮아질지, 대형강의가 언제쯤 폐지될지, 4년 후 총장 선출 시 학생들이 투표할 수 있게 될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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