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 일용직 노동자

새벽 5시. 첫 버스와 새벽기도를 다녀오는 사람들로 하루가 시작되는 길가에 일거리를 찾는 건설일용직 노동자(아래 일용직) 몇십명이 도로를 마주보고 섰다. 일용직 중에서도 이들은 로터리에서 고용주들을 기다리고 있다고 해서 속칭 ‘로터리’라고 불린다. 긴 추석 연휴가 끝나고 다시 일상으로 접어든 지난 9월 30일에도 경기도 안양 시내에는 40여명의 로터리가 모였다. 이날은 대부분의 건설 현장이 쉬기에 이 정도만 모였지만 평소 이곳에는 2백여명의 로터리가 찾아든다.

예전에는 봉고차를 탄 고용주가 일꾼들을 불러 모아 태워가는 것으로 계약이 맺어졌지만, 요즘에는 로터리 10여명이 각기 팀을 이루고 있다. 팀의 팀장이 고용주와 계약을 맺고 자기 팀원들을 데리고 나서는 것이다. 때문에 팀이 없는 뜨내기 로터리들은 일자리 구하기가 쉽지 않다. 이렇게 하루 계약을 맺는 것을 로터리들은 ‘팔린다’고 말한다. 10년째 로터리 생활을 하고 있는 김유덕씨(51)는 “시장에 내놓은 물건 취급 받는 게 기분 나빠서 그만둔 사람들도 여럿 있다”고 말했다.

새벽 4시 30분부터 2시간 가량을 기다렸지만, 이날은 한명의 고용주도 나타나지 않았다. 아무도 안팔린 것이다. 파장 분위기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잠에서 깨어나 하루를 시작할 때, 이들의 일과는 이미 끝나버린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길가 한켠에 마련된 컨테이너 박스에 모여 술판을 벌였다. 팔리지 않는 로터리끼리 새벽부터 술판을 벌이는 것은 이미 이들의 일상이다. 로터리들은 용역업체와 일정기간 계약을 맺고 일하는 일용직들보다 일당은 3~4만원 더 받지만, 이처럼 불규칙한 일거리와 나태하게 이어지는 생활 때문에 대부분의 일용직들은 로터리를 기피한다.

로터리든 계약직이든, 일거리를 찾아도 일용직들의 하루는 녹녹치 않다. 중간중간 쉬는 시간과 식사시간, 새참시간이 있다고는 하지만 아침 7시부터 저녁 6시까지 이어지는 근로는 고역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안전모, 안전벨트 등의 장치가 있다 해도 언제 위험이 닥칠지 모르는 건설 현장에서 자기 안전을 신경쓰며 일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한편, 일용직 대부분은 40~50대의 젊지 않은 일꾼들이다. 흔히 3D라 불리는 건설현장은 대부분 삶의 고달픔을 아는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찾아드는 곳이기 때문이다.

우리대학교 신학관 건물을 짓고 있는 이우철씨(56)도 운영하던 사업체가 부도나면서 3년째 건설현장에서 일하고 있다. 이씨는 “공부시켜야 할 자식이 남았다”며 “힘닿는 데까지 일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도 이 일이 가정을 꾸려가는 힘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일용직들이 생활에 줄어든 일거리로 곤란을 겪고 있다. 더군다나 일용직의 경우 고정된 일터가 없어 이들의 신용만으로는 일체의 금융 대출을 받을수 없다. 약 6만원의 일당을 받지만, 일을 쉬는 날이 많기에 이 돈으로는 생활을 이끌어나갈 수 없다. 때문에 일용직들은 모자른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가불을 하기 일쑤다. 지친 몸에 생활의 고단함까지 짊어진 일용직들은 저녁마다 마시는 한잔의 소주로 시름을 달랜다. 이씨는 “밤마다 소주 한병씩 안먹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고 전했다.

이처럼 일용직들은 고된 일과나 생활에 지치기도 하지만, 자신들의 노동을 하찮게 생각하는 주변의 시선 때문에 화가 날 때가 많다. “자기 밥벌이 못하는 사람들을 보면 ‘노가다라도 하지’라고 말하는데 그런 말을 들으면 서글플 때가 있다”는 이씨는 “이 일은 무기력한 사람들이 돈 필요할 때마다 들러서 하는 게 아니라, 의지를 갖고 떳떳하게 살아가려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양복 대신 작업복을 입고, 서류 대신 시멘트를 만지지만 자신을 초라하게 생각하기보다 정직한 노동에 만족하고 있었다. “하는 날까지 몸 건강히 열심히!”를 외치는 그들에게서는 사회 밑바닥 인생이라는 초라함보다 자신의 일에 충실한 아름다움이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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