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디리히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현대의 많은 사람들은 행복해지기 위해 공부하고 직장을 구한다. 이들에게 행복한 삶은 인생의 목표며 이상이다. 이런 우리들을 보며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말종인간’이라고.

프리드리히 니체의 대표작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머릿말을 제외하고 총 4부로 나뉘어진다. 머릿말에서는 차라투스트라가 산에서 내려와 사람들 사이로 가는 이유와 과정을 밝힌다. 1~4부에는 특정 주제에 관한 차라투스트라의 가르침이 담겨 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신의 죽음에서부터 출발한다. 차라투스트라는 산에서 내려와 사람들에게 신의 죽음을 알리러 떠난다. 당시의 기독교적 신은 절대적 진리의 모델이자 모든 가치의 근원이다. 그러나 인간의 의미와 가치의 원천으로서 인간의 삶에 목표를 부여하는 신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차라투스트라는 당시로선 충격적이었던 ‘신은 죽었다’는 상징적 외침을 통해 이제는 인간이 스스로 자신의 삶을 개척해야 함을 설파한다. 여기서 차라투스트라의 ‘몰락’은 시작된다.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문예아카데미 정신분석상담가인 이창재씨는 이에 대해 “깊은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 자신이 깨우친 바를 군중에게 알리고자 할 때는 함께 타락할 수밖에 없다”며 몰락의 필연성을 강조했다. 인간의 의식 이면에 숨겨진 인생의 비밀스러움을 깨달은 차라투스트라의 가르침이 사람들의 동의를 얻기 위해서는,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설명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산을 내려옴과 함께 차라투스트라는 타락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차라투스트라는 인간 정신의 세 가지 변화에 대해 말한다. 이씨는 이 부분을 차라투스트라 가르침의 핵심으로 꼽는다. 차라투스트라는 어떻게 ‘정신이 낙타가 되고, 낙타는 사자가 되면, 사자는 마침내 아이가 되는지’에 대해 설명한다. 낙타, 사자, 아이는 각각 특정 인간을 상징한다. ‘낙타’는 성실한 동물이며 짐을 싣는 데 으뜸이다. 여기서 짐은 사회적 의무, 책임을 의미한다. 낙타는 어떤 짐도 묵묵히 싣는 성실함을 지니고 있지만 짐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는 못한다. ‘사자’는 실험적 자유 혹은 개척정신의 상징이다. 그는 진리, 도덕에 대한 믿음을 비판하고 이에 도전한다. 그러나 사자는 인생을 즐길 줄 모른다. ‘아이’는 낙타의 성실성과 사자의 개척정신을 모두 포용한다. 더불어 진지함과 호기심을 가지고 선입견 없이 다양한 놀이를 향유한다. 아이의 개방성과 수용성은 인생을 다각도로 음미할 수 있게 해준다. 인간의 정신은 이러한 ‘아이’의 모습을 지향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가르침이다.

그러나 그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차라투스트라를 비웃는다. 여기서 우리는 설파의 장소가 시장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시장은 가치가 규정되는 장소다. 남들이 가치 있다 여기는 것이 자신에게도 가치 있다 여기는 인간들에게 초인을 말하는 차라투스트라는 비웃음의 대상일 뿐이다.

신과 초인 그리고 말종인간은 이 책에서 거듭 나오는 개념이다. 차라투스트라는 ‘신’은 죽었으며 군중들은 ‘말종인간’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무엇을 지향해야 할까. 차라투스트라는 초인을 향해 나아가라고 설파한다. 이씨는 “초인은 하나의 관점이나 틀에 얽매이지 않은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초인은 개방적 포용성과 새로운 것을 탐구하는 진지함, 유희성을 지닌 사람을 의미한다. 이는 ‘정신의 세 가지 변화’에서 말했던 ‘아이’와 일맥상통한다.

‘모든 이를 위한 그러나 그 누구의 것도 아닌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니체의 핵심 철학을 시적인 언어로 담고 있다. 니체는 이 책을 ‘춤을 추며 읽으라’고 권한다. 책으로부터 자극을 받아 사상을 더듬어가는 것이 아니라 사상을 스스로 세워 가라는 가르침이다. 독자들이여, ‘책 사이로 걷고 뛰고 오르고 춤추며 문 밖에서 생각하는 자(『즐거운 학문』 중)’가 돼 방랑자 차라투스트라와 함께 깨달음을 찾아 떠나는 것은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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