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을 보는 눈'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안압지’에 대해 한번쯤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안압지는 사람들에게 흔히 ‘상류층이 즐기던 질펀한 술자리의 온상’으로 기억된다. 어느 위치에서 보더라도 주위 환경과 어우러지는 그 풍광이 오묘하며, 물의 흐름이 입수부터 출수까지 자연의 이치를 그대로 따르는 안압지. 하지만 이러한 정경은 어느덧 사람들의 편견 속에 묻혀 버렸다.

지난 21일 낮 5시부터 1시간30분 동안 광복관 B105호에서 학부대학 특강이 열렸다. ‘문화유산을 보는 눈’을 주제로 명지대 미술사학과 유홍준 교수가 강연했다. 최근 문화재청장으로도 임명된 유교수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의 저자로 유명하다. 광복관 강의실은 유교수의 강연을 듣기 위해 찾아온 학생들로 가득 찼다.

“지금도 땅을 파면 수백, 수천 점의 유물이 쏟아져 나올 겁니다.” 이렇게 강연의 서두를 띄운 유교수. 우리나라에는 유물이 없어서 우리의 옛 것을 찾아내지 못한다고 생각하던 학생들은 이 말에 수긍하기 어려운 눈빛이었다. 하지만 유교수는 “지금은 발굴하지 않는 것이 더 좋다”는 말로 학생들을 더욱 당황하게 했다. 이에 유교수는 “지금 우리가 발굴하지 않으면 후대 사람들이 더 발전된 기술로 유물들을 발굴해 보존시킬 것이다”라며 그 이유를 밝혔다. 유교수는 ‘발굴도 파괴’라며 유물은 발굴 즉시 보존 작업을 해야 하지만 보존기술이 부족해 오히려 발굴물을 손상시키는 현 우리나라 발굴 작업의 열악함을 꼬집었다.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고 유교수는 지적한다. 황룡사 9층 목탑이 사라진 황룡사 터처럼 우리 민족은 이민족의 잦은 침입으로 인해 많은 문화재가 손실됐다. 현대에 와서 이에 대한 복구 작업이 조금씩 이뤄지고 있으나 매우 조악한 수준이다. 유교수는 “복구를 하려면 그것을 만들던 시대로 되돌아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문화재에 대한 최소한의 조예도 없이 현대의 기술만을 동원해 이를 복구하려 한다. 부식된 문화재를 시멘트로 메우는 등의 방법은 투자하는 비용, 시간, 노력면에서 가시적인 효과를 얻을 수 있을지 모르나, 결국엔 문화재를 파괴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유교수는 그 대표적인 예로 석굴암을 꼽았다. 석굴암에 누수현상이 생기자 사람들은 에어컨을 설치해 습기를 제거하려 했다. 이로 인해 석굴암 내부는 갈라지기 시작했다. 근시안적인 미봉책으로 인해 소중한 문화재가 오히려 소멸 위기를 맞은 것이다. 유교수는 “황룡사 9층 목탑은 지금의 기술로는 절대 지을 수 없다”며 오히려 과거보다 퇴보한 지금의 문화재 보존 능력을 비판했다.

“문화는 능력 있는 자의 생산이 아니라 안목 있는 자의 소비다.” 유교수는 문화유산을 보는 ‘눈’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김홍도라는 특정인물이 위대했던 것이 아니고 김홍도를 알아보고 키운 정조와 그 시대가 위대했듯이 말이다. 이는 전통과도 일맥상통한다. 유교수는 전통을 “끊임없이 이어져 오는 것 못지않게 끊임없이 변화하며 현재의 삶 속에서 살아 숨쉬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하지만 지금은 전통을 찾기 힘든 현실이다.

강연 중반에 들어서 유교수는 주제와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풀어갔다. 그는 국민들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상실한 우리의 현실을 꼬집으며, 우리민족이 가진 열등의식의 원인을 지도자 자질의 결여로 보았다. 이어 “우리나라가 아시아 중심국으로 부상하는 지금을 기회삼아 문류(文流) 중심국이 돼야 한다”고 동북아시아에서 우리나라 역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문화유산을 보는 눈’에 대한 유교수의 강연은 안이한 자세로 문화유산을 ‘관망’하는 지금의 학생들에게 주는 의미가 컸다. 작게는 우리의 옛 것을 바라보는 시각을, 크게는 문화리더로서 세계를 보는 눈을 길러준 강연이었다. 이 강연을 통해 얻은 문화유산을 향한 자긍심과 보존에 대한 고민은 짧게 끝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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