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가요제의 역사

“해야 떠라, 해야 떠라, 말갛게 해야 솟아라.” 연세인들의 푸른 물결과 함께 흐르는 노래 「해야」. 우리대학교 그룹사운드 ‘소나기’의 전신이었던 ‘마그마’가 지난 1980년 4회 대학가요제에서 은상을 수상했던 곡이다. 수많은 젊은이들의 꿈이자 대학문화의 상징으로 대표되기도 한 대학가요제는 어떤 역사를 간직하고 있을까.

대학가요제의 시작은 지난 1977년. 반공을 강조하는 정권의 과도한 검열과 ‘대마초 파동’으로 많은 포크 가수들이 자리를 떠나고, 이에 따라 대중가요 역시 갈 곳을 잃은 상황이었다. 이 때 태어난 대학가요제가 공권력에 의해 정치적으로 기획됐다고 보는 의견이 있다. 그러나 가수 김창완씨는 “그 당시 음악적 목마름을 채우고자 수많은 대학교에서 가요제를 열였었다”며, “대학가요제를 너무 정치적으로 보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이처럼 새로운 음악을 찾는 젊은이들의 욕구과 대중음악의 빈 자리를 채우려 한 「MBC」의 의도가 잘 맞아 대학가요제의 시발점이 됐다는 해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1회 대학가요제에는 오늘날과 달리 창작곡 대신 기성곡을 편곡해 부른 참가자도 있었다. 반면, 대상 수상곡인 서울대학교 ‘샌드페블스’의 「나 어떡해」는 록음악을 도입해 참가팀 간의 격차가 컸음을 알 수 있다. 대성공을 거둔 1회 이후, 대학가요제는 한동안 캠퍼스의 낭만을 상징하는 행사로 자리매김했다. 참가팀의 실력도 월등히 나아졌고, 음악적으로, 문화적으로 그 위상이 높아졌다. 하지만 지난 1980년대의 암울한 정치상황은 ‘캠퍼스가 전하는 젊음과 낭만’까지 사라지게 했다. “정치적 혼란의 와중에 대학가요제에 울려퍼진 때아닌 사랑노래는 시대와 대학문화를 담지 못했다”고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과 주철환 교수는 대학가에 흐르던 민중가요와 대학가요제의 돈 되는 음악 간의 괴리를 지적했다.

지난 1990년대에 들어 많은 수상자들이 대중 가요계에 등장하면서 대학가요제는 가수가 되기 위한 등용문으로 인식되기도 했다. 이 때문에 대학생이라는 이름을 달고 기획사들에 의해 ‘만들어진’ 참가자들을 막기 위한 조치도 취해졌다고 한다. 초창기의 모습과 달리 ‘대학문화’보다는 뛰어난 음악이나 스타성이 중요해지며 변질된 대학가요제가 변화의 기로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지난 1994년 18회 부터 이전에는 체육관을 무대로 했던 행사를 대학교 운동장으로 옮기는 등 ‘대학가요제’로서의 의미를 되찾으려는 노력이 시작됐다. 당시 프로듀서였던 주교수는 “처음 대학가요제를 접한 세대가 중년이 된 시기에 맞춰 ‘대학가요제의 추억’을 전하는 데 힘쓰는 등 변화를 꾀했다”고 얘기했다. 하지만 대학가요제의 본디 취지가 희미해지고, 대학생들의 관심도 줄어든 상황에서 그 노력에도 한계가 있었음은 분명하다.

가장 최근인 지난 2003년 열렸던 27회 대학가요제는 초기의 신선함을 잃어버린 채, 더이상 대학 문화를 위한 자리가 아니라는 비판을 받으며 그 막을 내렸다. 과연 2004년 대학가요제는 어떤 역사를 써내려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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