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문1-김성호 정치외교학과 교수

 


학내의 다양한 목소리를 담아내는 소통매체로서, 진보적인 관점을 설파하는 이념매체로서 지난 1980년대 대학언론이 누리고 있었던 대중적 인기와 정당성, 그리고 학내의 영향력은 지금의 관점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과거사가 돼버렸다.

 

대학언론 퇴락의 원인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한국사회의 전반적인 탈정치화다. 지난 1990년대 이후 민주주의의 공고화와 그에 따른 운동권의 퇴조, 그리고 한국사회의 전반적인 탈정치화는 대학언론의 영향력 퇴조와 정체성 혼란을 가져왔다. 이로 인해 대학언론은 의제설정에 어려움을 겪게 되고 이전과 같은 논조의 일관성도 유지할 수 없게 됐다. 두 번째는 정보화 혁명에 따른 의사소통매체의 민주화로 인해 대학언론은 소통매체로서의 의미를 상실하게 됐다. 인터넷의 확산으로 정보공유와 의견교환의 장소가 사이버 공간으로 옮겨짐에 따라, 대학언론이 그간 독점적으로 향유해왔던 학내 의사소통 결절점으로서의 기능이 퇴조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 대학언론은 크게 두 가지 자구노력을 펼쳤다. 하나는 진보적인 이념적 지향성을 견지하려는 과거회기적인 노력이고, 또 하나는 대학생들의 탈정치화 경향을 적극적으로 반영한 ‘문화’코드의 전면부상이다. 그러나 이것은 진보와 감각의 어설픈 결합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진보적 편향성은 교조적인 모습을 띠게 됐고, ‘문화’라는 미명하에 쉽고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지면을 점령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대학언론의 위기는 대학의 위기에서 비롯됐다. 대학은 이성의 마지막 보루다. 더 나아가 대학의 가장 중요한 사회적 역할은 자칫 정치나 경제의 이전투구 논리, 내지는 우발적인 대중심리에 의해 위협받을 수 있는 이성적인 토론의 장을 제도적으로 보호하는 데 있다. ‘학문의 자유’라는 대학의 이념은 결국 세속적인 사회와의 자기 거리두기인 셈이다. 이런 원론적 관점에서 봤을 때 한국 대학의 위기상항은 자못 심각하다. 대학의 위기상황은 순수학문은 버린 채 당장 써먹을 수 있는 실용적인 기술에만 급급한 데서 비롯됐다. 대학이 할 수 있는 가장 생산적인 사회공헌은 대학의 상아탑적인 본령에 더욱 더 충실해지는 데 있다. 치열하고도 진지한 이성적 성찰과 학문공동체로서의 자기정체성을 회복해야 한다. 산학협동도 사회참여도 그 다음의 일이다.

 

대학언론 역시 내부로 눈을 돌리고 자기성찰적인 학내문화가 학생들 사이에서 확산되는 데 일조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조적 진보와 말초적 감각의 결합에서 깨어나 현실에 대한 유연하고도 이성적인 대화의 장으로 스스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이것이 대학언론이 지금의 시대에 공헌할 수 있는 의제설정과 의사소통기능의 새로운 내용이다.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