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기획>2004년, 대학인의 삶의 모습은 어떤 것인가?

연고전이 끝났다. 눈을 감아도 심장을 쿵쿵 울리던 「원시림」의 비트가 밤낮이고 계속되는 즈음이다. 연고전은 유달리 온몸이 ‘날뛰는’ 청춘들을 잠못들게 하는 마약같다. 으레 되풀이되는 일이긴 해도, ‘자 이제 축제가 끝났으니 우리 어떻게 놀았는지 우리의 놀이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한 번 볼까?’라는 은근한 제안이 필요한 건 역시 여흥이 가시지 않은 지금이 제격이다. 우리가 한밤의 시내거리를 마음대로 점령할 수 있는 자격이 아직도 있다고 한다면(정말 있는가는 의문이지만), 놀고 난 ‘이후’에 대해 성찰할 수 있는, 생산적 긴장이란 것이 가장 싱싱하게 남아있기 때문이 아닌가.

 

우선, 우리가 ‘놀았던 바’를 상기해보자. 우리는 지난 한 주 동안 어떻게 놀았나? 그리고 기억을 더듬어 지난 5월까지 거슬러 올라가 보자. 학교를 가득 메웠던 천막과 인파와 소리들 안에 무엇이 있었는가? 그 안에는 물론 연예인만 있지도 않았고 나레이터 언니/누나만 있지도 않았고 외국인 노동자를 생각하는 장터만 있지도 않았고 술집을 도는 기차놀이만 있지도 않았다. 이 모든 것이 다 그 안에 있었다.

 

이러한 ‘대중문화’와 ‘대학문화’라고 분류할만한 것들이 모여있는 종합선물이 지금의 대학문화라고 간단히 줄여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보다 주의깊게 봐야 할 것은, 대학생들이 대중문화와 대학문화 사이에서 자신들을 확인하는 미묘한 지점이다. 대학생들은 확실히, 대학 바깥의, 자본에 의해 생산되고 대량으로 소비되는 대중문화들에 열광한다. 대학이라는 공간 안에 자생적으로 대중매체의 ‘매개’없이 생산되는 대학고유의 문화라는 것은 물론, 그 흔적이 미미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대중문화가 대학문화를 흡수해버린다고 간단히 말할 수 있을까? 대학생들은 대학축제에 모인 연예인들로 인해 즐겁지만, 그 안에서 소통되는 보다 ‘심각한’ 이슈들에 막연히 배타적이지는 않다. 오히려 대학 바깥의 사람들이 대학축제 이건 아니지 않느냐를 말하기 이전에 학교 자유게시판이 제일 먼저 입을 연다. ‘이건 아니지 않았나요.?’ (물론 반대 리플도 많다)

 

대학문화가 대중문화에 흡수됐다, 내지는 경계가 모호해졌다, 라는 진단에 빠져있는 것이 바로 이 지점이다. 대학문화는 대중문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으면서도, 이들과 차별화되고 싶은 욕망만은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대학생들은 ‘대학문화가 없다, 대학 고유의 저항성을 찾아라’는 훈수에는 시큰둥해도, ‘너희들은 생방송 인기가요에 열광하는 너희들의 과외학생과 다를 바 없어’란 말엔 결코 동의할 수 없을 것이다. 솔직한 그 감정 안에 숨어있는 것은, 책임은 실종됐어도 존재확인만은 여전한 ‘대학생’의 자기확인이다. 때문에 성급히 대중문화와 대학문화의 경계를 허물고 대중문화의 영역 안에 속속 ‘개입’하는 데서 탈공간화된 대학문화의 역할을 점쳐서는 안된다. 대중문화는 대학 안으로 스며 들어오지만, 대학문화는 아직 차별화의 언저리에서 자리잡기를 하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에너지의 핵심에는 ‘우리는 (그래도) 다르다’라고 말하고 싶어하는 대학생이란 집단이 있다.  

 

이 차별화되고 싶은 욕망이 사실, 그저 대학 바깥과 대학 안의 자신을 구분해 우월감을 확인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고 얘기할 수도 있겠다. 듣기에 따라서는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이 다르고자 하는 욕망이 ‘다르게 생각하고자 하는 욕망’으로 승화되도록 하는 것은 더 이상 ‘대학문화는 죽었다’ ‘요즘 애들은 생각이 없다’라는 식의 훈계가 아니라, 대학문화가  새로운 방식으로 구성돼갈 수 있는 인식의 토대다. 말하자면, 대중문화를 받아들이고 향유하면서도 동시에 그것들과 끊임없이 차별을 두고자 하는 대학생들의 자기확인에 일단은 긍정적인 힘을 실어주자는 것이다. 한참을 신나게 놀고 나서도, 왜 놀았는지 어떻게 놀았는지 성찰해보라는 요구를 받는 집단이 대학생 말고 또 있는가? 그러니, 대학생들이여, 신나게 놀았으면 신나게 놀이판을 걷어도 봐라. 그러면서 궁리하고 새로운 판을 짜보기도 하면서, 그 다음의 진중한 생각들도 끌어내보자. 대학문화는 아직 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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