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온라인 채용회사인 잡코리아가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취업교육을 위해 대학생이 지출하는 비용이 연평균 1백64만원에 이른다. 이중 30.8%가 토익, 토플, 텝스를 배우는 데 쓰는 돈으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고, 영어회화(25.4%), 각종 시험 대비(11.9%)가 그 뒤를 이었다. 이는 ‘취업에 있어 영어점수가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대학생들의 인식을 잘 보여준다. 취업 외에도 유학, 교환학생, 이직 등 영어점수는 우리사회에서 사람의 ‘능력’을 평가하는 절대적인 척도로 쓰이고 있다.


영어점수에 투자하는 사람들


“토익, 토플 수업 수강생 중 80%가 대학생”이라는 모 어학원 전영배 과장의 말은, 영어점수에 많은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는 현 대학생들의 불안한 심리를 잘 나타내준다. ‘영어점수 올리기’가 대학생의 주요 목표 중 하나로 자리잡은 가운데 많은 대학생들의 영어점수를 올리기 위한 노력이 한창이다. 스터디그룹을 조직하는 학생들도 있고, 휴학을 하고 영어공부만 하는 학생들도 있다. 허숙원양(독문·휴학)도 그 중 한명이다. “8시에 일어나서 학원에서, 스터디그룹에서 하루종일 토플공부를 한다”는 허양은 교환학생을 준비하기 위해 휴학 후 토플 공부만 하고 있다. “다른 것은 하지 못하고 하루 생활의 80~90%를 영어점수 올리는 데 투자했다”는 김소연양(경영·휴학)도 마찬가지다. “토익을 위해 스터디그룹만 5개를 해봤다”는 이아무개씨(지난 2003년 경영학과 졸업)도 현재 이직을 위해 또 다른 스터디그룹을 조직 중이다.


영어점수, 무엇을 말해주는가?


이씨는 “공기업에 입사하려고 하는데 공기업은 1차 서류전형에서 토익, 나이 이름만 쓰면 된다. 즉 토익만 보겠다는 거다”라고 말한다. 공기업은 영어점수만으로 1차 서류전형을 치르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공기업의 서류전형 커트라인은 토익 9백30~9백40점대라는 높은 수치를 기록했고, 공기업들은 ‘취업하려면 영어점수만 좋으면 된다’는 인식을 부추긴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한국방송광고공사의 한 직원은 “영어점수가 실력을 대변해준다고 신뢰하는 게 아니라, 수많은 지원자들을 걸러내는 일반적 기준을 제시하기 위한 인사부의 고육지책”이라고 밝혔다.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다’는 공기업들은 현재 영어점수 외에 인재를 선발할 다른 기준을 찾기 위해 고심하고 있는 중이다.

 

삼성그룹이 토익성적과 업무능력간의 상관관계를 조사한 결과, 토익 1등급을 받은 사원 중 20%만이 원활한 비즈니스가 가능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는 영어점수의 실효성에 의문을 품게끔 한다. 이에 따라, 일반기업들은 영어점수의 비중을 낮추고 있는 추세다. 채용상담업체 인크루트의 한 관계자도 “일반기업들은 영어점수를 사원 채용의 당락을 가르는 변수로 사용하지 않는 기업들도 많다”고 말한다. 실제로 GM대우는 7백점만 넘으면 영어점수를 평가기준에 두지 않는다는 것이 업계 정설이다. 삼성그룹도 인문계는 토익 7백30점, 이공계는 6백20점만 넘으면 더 이상 영어점수를 반영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대다수의 취업 준비생들은 영어점수의 비중이 낮아진다는 데 선뜻 동의하지 않는 분위기다. 다음 학기 졸업을 앞둔 김재욱군(경영·휴학)도 “회사마다 각기 다 다른 채용 기준을 갖고 있다. 영어점수를 보지 않는 소수의 기업이 있다해서 영어점수를 신경쓰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한다. 이처럼 학생들이 영어점수에 매달리는 이유에 대해 전과장은 “모든 것을 점수로 평가하는 우리사회의 특성상 영어점수가 사회 전반에 많이 쓰이고 있기 때문”이라며, “능력평가척도로 영어점수가 사용된다”고 말했다. 대학생들이 가장 예민하게 생각하는 ‘취업’ 문제에 있어서도 영어점수가 절대적 영향력을 갖고 있기에 학생들이 이에만 집중하고 있다. 사회에서 영어점수를 다른 어떤 가치보다 지나치게 중요시하고, 학생들은 그 분위기에 편승해간다.


놓쳐버리는 문제들


‘세계화 시대에 맞는 인재를 키운다’는 명목아래 막강한 힘으로 작용하고 있는 영어점수. 영어점수가 능력의 ‘기준’으로 사용되고 있는 동안 학생들은 자신이 원하는 분야를 찾는 일이나 창의적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길을 계발하는 일보다 우선 영어점수를 높이는 데 몰두하고 있다.

 

사회에 나가고 진로를 결정하는데 있어 영어점수가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기업들은 무엇때문에 영어점수를 사람을 평가하는 절대적인 척도로 사용하고, 왜 대학생들은 그러한 기업들의 표준설정에 휘둘리고 있는가? 이런 혼돈 속에 정작 대학생들에게 필요한 지식의 함양이나 인생의 목표 설계와 같은 귀중한 가치들이 망각돼가고 있는 건 아닌지 의문이다. ‘영어점수 때문에 소홀히 하는 것들이 나의 결점으로 되돌아올 수도 있다’는 충고는 현 시대상황을 날카롭게 꼬집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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