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된 사람 없이 모든 연고인이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축제 분위기가 조성될 때, 힘찬 함성이 하나의 '의미'가 돼 신촌골에서 안암골까지 메아리 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13일, 올해도 어김없이 신촌 거리에는 ‘정기 연고 민족 해방제(아래 연고제)’의 개막을 알리는 푸른 깃발이 바람에 휘날린다. 거리 곳곳에 새겨진 ‘파란(波瀾)’이란 글씨가 시야에 들어오고 연세인들은 드디어 기다리던 연고제가 다가왔음을 온 몸으로 느낀다. 정문을 통과해 캠퍼스에 들어서면 백양로 여기저기에 연고제를 알리는 플래카드와 대자보가 걸려있다. ‘국가보안법 철폐’, ‘사립학교법 개정’이라는 말도 보이고, ‘진리의 가슴을 열고 지축을 박차고 비상하라 연세여’란 문구도 눈에 띈다. 오늘부터 연고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응원 오리엔테이션, 합동응원제가 준비돼 있다. 이제 금요일이 되면 평소처럼 학교에 가지 않고, 잠실종합운동장을 향해 신나는 발걸음을 옮길 것이다. 파란 티셔츠와 응원 오리엔테이션 때마다 응원단이 나눠주는 머플러는 필수고 얼굴에 독수리 앰블렘까지 페인팅한다면 금상첨화다. 연고제가 막을 내리는 토요일은 가장 기대되는 날이다. 연고제의 분위기가 최고조로 달아오를 ‘기차놀이’가 우리를 반기기 때문이다. 이제 연세인들에게는 「원시림」을 부르고 ‘아카라카’를 외치며 파란색 물결이 넘실대는 캠퍼스를 만드는 일만 남았다.

연고제, 혹은 연고전

대부분 연세인들에게 ‘연고제’는 운동경기, 응원, 기차놀이만 생각나는 ‘연고전’으로 인식돼 있으며, 그렇게 불려지고 있다. 총학생회(아래 총학)는 연고제를 체육제 중심에서 벗어난 문화·학술 행사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지만 해마다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연고제에 다양한 문화행사가 열린다는 사실을 개막제를 보고 처음 알았다”는 성현석군(공학계열·1)의 말처럼 대다수의 학생들은 응원 오리엔테이션과 운동경기가 연고제 행사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개막제에서 만난 한 학생은 “왜 연고전을 계속 연고제라고 하시죠?”라는 질문을 던지기도 해 ‘연고제’에 대한 홍보가 철저히 부족함을 알 수 있었다.

이처럼 학생들의 편중되는 관심을 분산시키고자 이번 연고제에도 총학은 다채로운 행사를 준비했다. 그 일환의 하나로 지난 13일 저녁 7시 백양로 삼거리에서는 국가보안법 철폐를 위한 개막 콘서트 ‘승부’가 열렸다. 이 행사에서 고려대 총학생회장 유지훈군(국문·4)은 “지금이 국가보안법을 철폐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며, “이번 연고제가 국가보안법 철폐를 앞당기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는 말로 연고제의 장막을 걷었다. 콘서트는 문과대 율동패 ‘발버둥’, 고려대 락밴드 ‘크림슨’ 등 양교 자치단체의 무대와 초대가수 이안, ‘넥스트’의 공연으로 이어졌다. 총학이 정한 이번 연고제의 기조 중 하나인 ‘국가보안법 철폐’에 대해 콘서트 참여자들이 지지 입장을 밝히자 관객들은 박수를 치며 호응을 보냈다. 연고제 이틀째인 지난 14일 저녁 6시에는 ‘영화로 즐기는 연고제’라는 이름으로 대강당에서 『화씨 9/11』이 상영됐다. 1백여명의 학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진지한 분위기 속에서 영화 상영이 이뤄졌다. 콘서트와 영화 상영은 학생들의 참여 속에 순조롭게 진행됐지만, 지난 15일 열리기로 예정됐던 ‘국가보안법 철폐 강연회’와 ‘사립학교법 개정 토론회’는 취소돼 이번에도 총학의 준비 미흡이 적잖게 드러났다. 

“연고제, 조금씩 바꿔나가자” 

한편, 학내 곳곳에서는 그 동안 연고제에 제기된 문제점의 비판과 함께 ‘대안’을 모색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그 중 대표적인 행사는 ‘2004 연고 평화축제, 한 조각의 평화(A Piece of Peace, 아래 평화축제)’였다. 평화축제 기획단에 참가한 조영현군(자연과학부·4)은 “이번 평화축제는 한번에 많은 학생들이 모일 수 있는 연고제 기간에 학생들의 일상 속에서 잊혀져가는 평화를 일깨우기 위해 기획된 행사”라고 소개했다. 평화축제는 9·11 테러 3주년과 연고제가 비슷한 시기에 열리는 점에 착안, 개강 후부터 지속적으로 준비한 행사다. 조군은 “연고‘전(戰)’이란 말과 기차놀이를 하는 모습에서 무의식 속에 감춰진 일상의 폭력을 발견할 수 있다”며, “학생들이 자생적으로 만드는 축제의 흐름이 외면당하고 상업적인 행사가 연고제의 중심이 된다는 사실이 안타깝다”는 말로 예년과 비슷한 연고제 모습에 아쉬움을 나타냈다. 평화축제는 ‘반전평화 도서기획전’, ‘반전만화방’ 등 갖가지 행사를 통해 학생 참여를 이끌어냈다. 특히 지난 16일 열린 퍼포먼스는 그들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가장 잘 보여줬다. 퍼포먼스는 이라크 전쟁의 참상을 알리는 내용으로 구성돼 있었고, 이는 응원에만 관심이 집중된 학생들의 눈길을 잠시 돌려놨다. 이를 지켜본 이주현양(인문계열·1)은 “퍼포먼스를 하는 사람이 피를 흘리는 모습에 놀랐지만 그 의미는 충분히 공감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체육제와 총학 행사 중심으로 진행된 연고제를 조금씩 바꿔나가자는 생각은 지난 2002년 활동한 ‘알타리(Alter-Y)’와 연계해 살펴볼 수 있다. 기존 연고제를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만들어진 자치단체 알타리는 당시 ‘당/연/지/思(당신은 연고제를, 지금 고민합니까?)’라는 행사를 열었고, 올해도 고려대 ‘안티연고전 모임’이 그 흐름을 이어나갔다. 안티연고전 모임은 학벌주의, 상업적인 연고전, 장애인과 여성 배제 등 연고제가 가진 맹점들을 지적해 근본적인 해결책을 모색 중이다. 그들은 이번 연고제 기간 중 지난 14일부터 16일까지 고려대 민주광장에서 ‘발샅장터’를 개최했고, 「발 샅에 때꼽재기」란 제목의 신문을 발행하기도 했다. 이 모임에 참여하고 있는 김유정양(고려대, 언론·2)은 “우리가 연고전을 당장 폐지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소외된 사람 없이 모두가 함께 참여하는 축제판을 만들고 싶다”는 말로 모임의 취지를 설명했다. 안티연고전 모임은 앞으로 자신들의 활동을 담은 사진 전시, 뱃지 배포 등을 통해 학생들에게 모임의 의도를 차차 알려나갈 예정이다. 그러나 ‘안티’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연고전을 좋아하는 학생들로부터 비판의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이에 김양은 “안티연고전도 역시 궁극적으로 신나는 축제를 지향한다”며, “학생들이 오해 없이 우리의 활동을 받아들여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아직, 고민은 끝나지 않았다         

지난 18일 밤 10시 고려대 ‘참살이길’에서 열린 폐막제를 마지막으로 엿새 동안의 축제가 모두 마무리됐다. 그러나 이번에도 역시 총학의 준비 부족과 학생들의 편중된 참여는 여전히 문제로 남았다. 축제가 끝나면서 파란색과 붉은색으로 물들었던 양교 학생들의 마음도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하지만 연고제가 끝났다고 해서 이 기간 동안 우리가 인식했던 문제의식까지 함께 증발되는 것은 아니다. 소외된 사람 없이 모든 연고인이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축제 분위기가 조성될 때, 힘찬 함성이 하나의 ‘의미’가 돼 신촌골에서 안암골까지 메아리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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