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씨는 미국 유학시절 주한미군철수 시위 등에 참가한 혐의로 「국가보안법」(아래 국보법) 제7조 제1항 ‘반국가단체 활동의 찬양·고무·선전·동조·선동’과 제3항 ‘이적단체구성·가입’ 위반혐의로 유죄판결을 선고받았다. P씨는 유엔인권위원회(아래 위원회)에 청원했다. 지난 1998년 말 위원회는 한국의 사법기구가 “P씨의 행동 중 어떤 부분이 국가안보에 해를 입혔는지 입증하지 못했으므로 그에 대한 처벌이 부당하고 유엔인권규약에 위배된다”고 선언하고 “한국정부는 P씨에 대한 부당한 인권침해에 대해 적절한 보상을 하고 장차 비슷한 유형의 침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보장하라”고 요구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국보법 폐지권고’를 한 것은 위원회의 입장에 순응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위원회와 국가인권위원회가 ‘국보법 폐지’를 권고하는 근거는 ‘정부전복을 주장’(예를 들어 북한의 대남적화노선, 통일전선론과 일부 일치하는 주장)한다 하더라도 그 주장이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행동의 선동’이 아니라 ‘추상적인 주장’에 머무른다면 ‘표현의 자유’ 영역에 해당하므로 처벌의 대상으로 삼아서는 아니된다는 데 있다. 이 입장에 서면 예를 들어 광화문 앞에서 인공기를 휘두르는 행위, ‘김일성 어록’의 출판 판매 소지행위를 처벌할 수 없다. 북한 공산주의자들과 3년 간 동안 치열한 전쟁을 몸소 경험한 냉전세대들은 위와 같은 행위들을 눈뜨고 볼 수 없다는 ‘격한 감정’을 표출하고 있다.

물론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은 아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 지난 50여년 간 ‘북한의 주장과 다소간 일치하는 주장’을 했다는 이유로 수천 수 만 명이 고초를 당하고 그 가족들의 사회적·정치적 진출이 봉쇄된 것, 국보법이 정권안보의 도구, 부정부패의 척결을 가로막는 방패막이로 기능해 한국사회에 막대한 손실을 줬던 사실도 부정할 수 없다.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은 ‘국보법 폐지=안보공백론’을 무마하려고 ‘국보법폐지와 형법보완론’을 주장하고 있다. 여기서 열린 우리당의 형법보완론이 어떤 모습으로 구체화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기존 형법상의 ‘예비음모’가 되려면 단순한 주장만으로는 아니되고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행동의 준비를 계획하고 실행해야 한다. 따라서 ‘형법보완론’은 형법상의 ‘예비음모’ 이전의 단계를 처벌하는 구성요건을 신설하려는 발상이다. ‘형법보완론’의 구체적 모습은 다음과 같은 스펙트럼을 가진다.

가장 자유주의적인 입장은 ‘주장내용’이 ‘국가안보(혹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객관적으로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을 초래한 때에는 ‘내란 예비음모’ 이전 단계(이 단계를 ‘선전·선동’으로 지칭할 수 있다)로 처벌하는 조항을 신설하는 것이다. 그런데 현행 형법은 이미 형법의 내란죄 조항에 ‘내란소요 목적의 선전·선동’을 처벌하는 조항을 두고 있다. 1953년 형법 제정시 1948년의 국보법 조항을 형법에 흡수한 것이다. 이에 반해 종래의 국보법과 한국 대법원의 입장은 ‘주장내용’이 ‘반국가단체(북한)에 결과적으로 이롭게 되기만 하면(이롭게 되는가 여부 조차도 냉전적 구도 하에서 판정되었다) 국보법위반’이라는 냉전적 사고방식이었다. 중간적인 입장으로 ‘주장내용’이 “국가안보(혹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가능하거나 구체적인 위험’을 초래하면 처벌한다”는 견해(1990년대 초반의 헌법재판소 결정과 대법원 판결의 소수의견)가 있을 수 있다.

미국의 국보법격인 Smith Act 위반사건에서 지난 1957년에 미국연방대법원은 “피고인들이 정부전복의 원칙만을 옹호했을 뿐 그를 위한 구체적인 행위를 옹호하고 가르친 것은 아니며, Smith Act는 폭력에 의한 정부전복을 위한 ‘구체적인 행위’를 옹호하고 가르친 자만을 처벌하는 법률이므로 위 피고인들은 무죄”라고 판시했다. 한국사회가 ‘광화문 앞에서 인공기를 휘두르는 행위까지’ 관용하는 사회로 나아갈 수 있을지 궁금하다.

/ 원주 정법대학 법대 심희기 교수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