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요즘 매년 각종 고시합격생이 발표될 즈음에는 각 단과대학 별로 자기 대학 출신의 합격생 명단 현수막을 대문짝만하게 내거는 것이 연세대학의 새로운 경향이 된 듯싶다. 그 경향이 소위 고시를 목표로 한다고 이해할 수 있는 법과대학, 사회과학대학 정도라면 그래도 이해하고 넘어갈 만한데 요즘은 심지어 문과대학, 공과대학, 생활과학대학까지 그 범위를 넓혀가고 있고, 최근에는 고시뿐 아니라 좀 어렵다고 하는 시험 합격자는 다 내거는 분위기다. 합격생들을 축하한다는 의미도 있겠으나 이제는 그 정도를 넘어 이 합격생 수로 각 단과대학이 얼마나 훌륭한 인재를 배출하고 있느냐를 자랑하고 경쟁하는 듯한 느낌이다.

연세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의 입장에서 개인적으로 우리 학생들이 나라에서 시행하는 어려운 시험에 합격하는 것은 기쁜 일이고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나는 거의 모든 대학 건물에 붙어 있는 그런 커다란 현수막 앞을 지날 때마다 가슴이 답답해지고 슬픈 느낌이 든다. 이유는 항상 그 앞에서 연구한다고 아침부터 밤까지 상대적으로 어려운 여건에서 5―6년 씩 함께 고생하는 나의 대학원 학생들이 생각나기 때문이다. 미래에 대한 불안과 경제적으로 장밋빛 미래가 약속돼 있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연과학과 인문학 등 순수학문을 공부하겠다고 청춘을 다 바치고 있는 학생들에게 선생으로서 미안하기 때문이다.

대학은 직업교육장이 아니다. 대학은 학문의 전통을 세우고 연마하며 이를 다음 세대로 전수하는 곳이다. 또한 학생은 대학에서 앞으로의 직업을 위한 실질적인 준비에 앞서 인생의 지표가 되는 미래에 대한 비전을 세우고 기본적인 교양과 문제해결 능력을 배양해야 한다. 별 것 아닐 수 있는 이런 현수막이 나를 슬프게 하는 이유는 항상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만을 중요시 하는 우리사회의 분위기와, 그와 별반 다르지 않은 우리 학교의 분위기가 단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런 현수막 등을 통해 암묵적으로 학생들에게 기본 교양교육이나 학문보다는 상대적으로 눈에 보이는 업적, 성과들이 중요하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를 거둔 고시합격생들에 대해서는 학교가 나서 격려해주고 축하해주면서 우리가 언제 연세대학에서 학문을 연마하고 학위를 받는 학생들을 현수막을 걸어 칭찬해준 일이 있는가. 이런 추세로 나아가면 고시합격자가 많이 배출되지 않는 내가 소속돼 있는 이과대학은 이제 머지않은 장래에 얼마나 훌륭한 학생을 배출했는가의 지표로 의학전문대학원 합격생이나 변리사시험 합격생의 현수막을 내걸어야 할 것 같다.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늘 효율과 가시적 성과가 중요시돼온 우리의 대학공간에서 이제는 우리가 과연 어디를 바라보고 가고 있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할 시간이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근본적인 것을 소중히 할 수 있을 만큼 성숙한 연세를 기대하는 것은 너무 큰 욕심일까.

/ 생화학과 송기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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