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백 년 전 조선의 배는 누런 천을 이어 만든 황포돛대를 달고 항해를 하고 있었다. 예전에는 마포나루에서 한강을 타고 내려가 서해를 거쳐 중국 등 세계로 나아가는 길이 있었다. 그러나 휴전 이후 그 길이 막혔다. 왜냐하면 평양과 신의주를 거쳐 중국대륙과 세계로 통하는 기차가 막혔으니 우리는 과거의 대륙국가에서 해양·항공국가가 됐다.

연세대학교가 세워지던 즈음에는 미국에 오갈 때도 부산이나 인천에서 배를 타고 떠났다. 세브란스의전의 교장이던 에비슨이 미국으로 건너가 세브란스가 살고 있는 클리블랜드로 갈 때 탔던 것도 기선이었다. 에비슨은 클리블랜드의 한 교회에서 한국을 이야기하고, 연세(광혜원/제중원) 이야기를 하면서 현대식 병원을 짓는 데 기부가 필요하다는 설교를 한다. 그 설교 후 교회의 뒤뜰에서 에비슨을 기다리던 세브란스는 가보지 않은 서울의 병원에 큰 돈을 기부할 것을 약속하고, 그를 이행해 서울역 앞 복숭아골에 그의 이름을 남긴 병원을 세우게 된다. 그 세브란스의 아들은 클리블랜드시에 음악당을 지어 기부한다. 그 이름도 세브란스홀이다. 이제 미국 4대 오케스트라의 하나인 클리블랜드 교향악단의 고향집이 됐다.

오는 2005년은 세브란스병원이 지어진 지 한 세기인 1백년이 되는 해이고, 연세의 기원인 제중원을 세운 지 1백20년이 된다. 두 번째 회갑이니 동양에서는 무척이나 큰 의미가 있다. 그동안 연세는 한국사회에서 무척이나 튼튼한 뿌리를 내렸고 세계를 향해 나아갈 준비를 갖췄다.

서울역 앞에 세브란스병원이 생겼을 때 우리나라의 모든 병원들은 세브란스를 벤치마킹했고, 1960년대 초 신촌에 세브란스가 둥지를 옮기면서 지은 병원도 한국최고의 병원이었다. 이제 오는 2005년에 문을 여는 세브란스의 새 병원도 우리나라 모든 병원이 바라보는 병원일 뿐 아니라 세계로 향해 나가갈 중심병원이 될 것이다.

새 병원에는 5백석 규모의 세브란스홀이 생긴다. 클리블랜드 고향악단의 둥지와 같은 이름이다. 오는 2005년 5월 연세창립기념일에 클리블랜드 교향악단이 이곳에서 연주를 하고, 곧이어 8월에는 연세가 세계의 의료인과 의료법학의 석학들을 초대해 세계의료법학회를 개최한다. 연희와 세브란스의 화학적 융합이 두 번째 회갑에 이뤄질 것이다. 세계 1백20개 의과대학과 법과대학의 깃발이 펄럭일 것이다.

세브란스의 새 병원은 세계로 항해하는 모함에 황포돛대를 단 모습이다. 의학의 세계 최고를 달성하고자 하는 모습이 형상화됐다고 해도 좋겠다. 그 항해에는 인문사회과학을 의학 속에 융합시키려는 노력도 담고 있다. 이것은 세브란스의 의학정신이 기본적으로 인간을 위한 인술이라는 철학을 표현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의학교육학과 설립, 의료법윤리학과 설립 그리고 문학과 의학 강좌의 최초 운영 등 인문학의 향기를 은은히 풍기는 의사, 의과학자들이 세계를 향해 황포돛대를 올리는 모습이다. 우리 연세인은 세브란스의 새 병원 건립과 함께 21세기 세계를 리드하는 코스모폴리탄이 될 것이다.

/의과대학 예방의학교실 손명세  교수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