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방은 어디까지 가는갗.

 

전세계 시장 개방을 추구하는 도하개발의제(Doha Developement Agenda,아래 DDA)가 지난 8월 1일 새벽(한국시간) ‘WTO DDA 협상 기본골격’ 타결에 도달했다. 그러나 이번 합의는 1백47개 WTO 회원국 중 단 40개국만이 참가하는 태생적 한계를 지닌다. 또한 미국이 자신들의 힘을 이용해 인도와 브라질을 매수하고 성사시킨 협약이라는 비난도 있다. 무엇보다 이번 합의는 ‘원칙 중의 원칙’만을 합의한 것으로 세부원칙 협상에서의 난항이 예상되고 있다.


협상의 논리와 이에 대한 반발


합의 내용에서 주목해야 할 사안은 상품의 시장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고관세 상품에 더 많은 관세 감축을 단행하는 ‘구간방식’의 채택이다. 구간방식이 채택될 경우 농산물, 산업기계 등 고관세 품목이 1백42개나 되는 우리에게 이로울 것이 없다. 그러나 정부와 몇몇 언론은 타국의 관세 인하로 수출주도형인 우리나라 경제 전반에는 긍정적이라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정부의 논리에 대해 관련 시민단체들은 ‘근거없는 낙관’이라는 거부반응을 보이고 있다. ‘WTO반대국민행동’ 전소희 국제연대팀장은 “구조조정을 하거나 비정규직이 늘어나는 등의 폐해만 급증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이창근 국제부장도 “초국화된 국내 자본으로만 이익이 돌아갈 것”이라며 회의적인 견해를 보였다. 기업들은 해외 자본의 유입으로 수익 극대화를 통한 시장 경쟁력 확보에 치중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노동자의 소외와 거대 자본들만의 이익 배분이 야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NAFTA 체결 이후 미국의 많은 공장들이 멕시코로 이전했지만 대부분의 기업이 수익성에만 치중했다. 그 결과 멕시코 산업은 비정규직과 장시간 저임금 노동자가 양상된 우리나라의 1970년대식 수출공단의 형태를 답습했다.

 

한편, 우리 농가는 수입산 농산물에 고율의 관세를 매겨 국내산을 보호하는 것을 막는 ‘관세 상한제’ 등의 도입으로 또한번의 거센 개방 압력에 맞닥뜨리게 됐다. 이에 대해 정부는 농업분야에 있어 ‘개도국 지위’를 유지하며 농가 피해를 최소화하겠다는 입장이다. 개도국으로 지정되면 일부품목에 대해 낮은 관세감축률을 적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도국 지위 유지는 근본적인 문제해결책이 될 수 없고, 우리나라를 개도국으로 보는 국가가 거의 없어 현실적으로 어려운 게 사실이다.


공공 서비스도 개방 요구


통신, 환경, 보건·의료와 복지, 교육 분야 등을 포괄하는 서비스부문의 개방은 더 큰 논란거리를 안고 있다. 각 서비스는 서비스제공 형태에 따라 모드(mode) 1,2,3,4로 나뉘는데, 우리나라는 서비스 공급자가 수요국에 직접 주재하며 상업적인 서비스 제공 활동을 할 수 있는 모드3 수준의 개방에 동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팀장은 “숨쉬는 공기를 빼면 전부 다 개방하라는 거다. 심지어 물을 포함한 공공서비스 영역도 개방하라고 한다”며 문제의 심각성을 환기했다. 그러나 정부는 ‘외국자본의 유캄를 명목으로 종전의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의료기관은 비영리기관이다. 때문에 수익이 생겨도 의료분야에 재투자해야 하고, 건강보험제도도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보건·의료 분야가 개방되면, 외국 병원이 우리나라에 상업적으로 주재할 수 있도록 영리법인을 허용하고 그에 따른 제반 조건들을 보장해줘야 한다. 이와 관련해 ‘민중의료연합’ 박주영 사무처장은 “상업적 수익을 위해 병원의 돈벌이 행태가 시작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즉, DDA가 국민복지제도를 시장에 내놓아 상업화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교육분야 역시 외국교육기관의 설립을 위해 국내 교육법을 개정해야 할 상황이다. 그나마 보건·의료나 교육분야의 경우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이를 저지하기 위한 대응이 활발하지만, 다른 공공서비스는 문제 발생이 예상됨에도 대응 조직체가 준비되지 않아 아무런 활동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시장이 중심이 된 사회


현재 우리나라는 36개국으로부터 1백55개 상품에 개방을 촉구하는 양허안을 받았다. 한·일 경제자유무역협정, 한·싱가폴 경제자유무역협정도 진행중이다. 이를 두고 “상대적으로 높은 우리의 관세를 인하하라는 강대국의 압력이다”, “우리 경제가 초국적 자본에 종속될 것이다” 등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WTO 완전저지를 주장하는 시민단체들도 “현실 가능성을 생각하면 갑갑하다”고 말하듯이, 시장의 개방은 불가피한 것으로 보인다.

 

관세를 비롯한 통상규제를 철폐해야 투자가 촉진돼 교역국에 서로 이익이 된다는 논리. 그러나 개방이 곧 이익이라는 결론을 도출하는 것은 곤란하다. 실질 임금 인상을 담보할 수 없고, 공공서비스 부문의 개방으로 사회적 비용이 늘어나는 상황은 민중의 소외를 가중시킬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또한, 이익과 손해라는 이분법적 논리가 사회의 전부는 아니다. 현재 DDA는 “모든 것을 상품으로 본다”는 비난에 부딪히고 있다. 이는 전세계 민중이 기본적으로 누려야 할 권리의 영역을 상품화하는 데서 나온 반발이다. 개방이 중요한 시장의 사회에 살아도 우리의 세상은 상품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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