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국어연구원 남기심 원장을 만나다


「새말의 탄생」. 6차교육과정의 국어 교과서에 실렸고 2002학년도 수능시험의 언어영역 지문으로 출제됐던 이 글을 기억하는가. 「새말의 탄생」의 필자 남기심 교수(퇴임·국어학)는 국어문법의 체계를 세우고 애국적 계몽주의 국어학을 확립한 외솔 최현배 선생과 한결 김윤경 선생, 그 대를 이어 국어학을 언어과학의 수준으로 끌어올린 눈뫼 허웅 선생의 정신을 계승하는, ‘연세’가 배출한 또 한 명의 국어학자다. 그는 국어국문학과 56학번으로 지난 1977년부터 2001년까지 25년 가까이 우리대학교에서 국어학을 가르쳤다. 퇴임 후 현재는 국립국어연구원 원장으로서 학생들만이 아닌 전국민들을 대상으로 자신의 배움을 실현시키고 있다.

 

언어학, 신비한 질서의 탐구

 

남원장은 모든 공무원 시험의 필독서로 알려진 『표준국어문법론』(1985), 『언어학개론』(1979), 『현대국어통사론』(2001) 등을 저술한 정통 국어학자로 국어문법연구에 크게 기여했다. 그는 부사격 조사를 중심으로 한 국어 조사의 용법 연구와 문법 층위의 설정, 새말의 생성과 사멸 연구, 그리고 법조문의 한글화 등 많은 업적을 남긴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대학교 2학년 때 구조주의 언어학을 접하면서 그것의 언어관, 학문방법, 세계관 등에 완전히 매료됐다”며 그는 본격적으로 언어학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를 밝혔다. 남원장은 “내가 대학 다닐 때의 국어학은 ‘과학적 사실’보다는 ‘열정’이 앞섰고, ‘학문 자체에 대한 연구’보다는 민족정신의 회복을 위한 ‘목적이 있는 연구’였다”고 설명했다. 일제로부터 해방된 지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에 민족 혼을 일깨우는 도구로써 국어가 연구된 것이었다. 그런 시대에 그는 구조주의 언어학자인 눈뫼 허웅 선생을 만나 국어학 연구에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접근방식을 공부했고, 그 속에서 학문적 희열감을 맛보았다.


“눈(雪)을 구성하는 알갱이가 모두 틀림없는 육각형 모양이듯이, 언어에도 아름답고 신비한 질서가 고스란히 자리잡고 있다.” 남원장은 국어학 연구를 ‘신비한 질서를 찾는 작업’이라고 소개한다. 그는 이어서 “그 신비한 질서가 세상을 지탱하게 하는 힘이 된다”며 인간세계에 있어서 언어의 중요성과 언어학 연구의 즐거움을 표시했다. 현상 속에 숨어 있는 내재적 질서를 찾는 언어학에서 그는 오지를 탐험하는 모험가의 짜릿함을 알게 된 것이다.


외솔 최현배, 한결 김윤경 선생

 

“외솔 선생과 한결 선생 모두 정말 엄격하신 분이었다.” 남원장은 학창생활을 회상하며 큰 스승에 대한 자신의 기억을 풀어냈다. 국문과의 한 학년이 10여명 정도 되던 시절, 그는 학과 친구들 7명과 함께 한결 선생의 수업을 들었다. “절대로 휴강을 하지 않는 분이라, 어느 날 마음 먹고 친구들과 합심해 수업을 빼먹었다”는 남원장은 워낙 엄격한 스승이기에 당시 모두들 잔뜩 겁을 먹었다고 말한다. 그때 김윤경 선생을 본 한 학생이 있었는데, “아무도 없는 교실 교탁 위에 끝까지 앉아 계시더니, 수업 시간이 다 지나고 나서야 출석부에 줄을 그었다”는 것이다. 다음 시간, 크게 꾸중을 들을 것이란 우려와는 달리 한결 선생은 그 일에 대해 일말의 언급도 하지 않았다. “워낙 정직하신 분이라 우리가 아무 일 없이 수업을 빠질 수 있으리라고는 절대 생각하지 못하셨다”는 것이 남원장의 설명. 한결 선생은 자신의 제자들도 자신과 꼭 같을 것이라 굳게 믿었던 것이다.


남원장은 대학원에서 외솔 선생의 수업을 혼자 들은 적이 있었다. 그럼에도 외솔 선생은 항상 출석부를 가져와 한 번 펴본 후, 그가 온 것을 확인하고 출석부를 덮었다. “학문에 있어서도 그렇지만 생활에 있어서도 절대 빈틈이 없는 분”으로 남원장은 캠퍼스 내 흉상이 세워진 우리네 큰 스승들을 기억하고 있었다.

 

우리 국민의 국어사용 실태

 

빈틈없이 엄격한 스승들의 ‘얼’을 이어받았기에 남원장은 현재 우리 국민들의 국어 사용 실태에 큰 안타까움을 표시한다. 그는 “일본어의 잔재가 아직 남아 있고, 무분별하게 쓰이는 외래어 또한 많다”며 이와 더불어 “우리말과 글을 제대로 쓸 줄 아는 사람 역시 많지 않다”고 지적한다. 제품 설명서나 소화기 등 안전시설의 사용을 설명해 놓은 안내문 등에는 도저히 읽을 수 없는 문장들이 많다는 것. 텔레비전의 오락 프로그램 진행자나, 언론인이라는 기자들도 우리 말과 글을 잘 알지 못하고 쓰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말과 글을 쓰는 훈련이 제대로 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남원장은 잘못된 국어가 많이 쓰이고 있는 원인을 이같이 분석한다. 15세기 한글 창제 이후에도 한글이 널리 보급되지 못했고, 개화기 이후 오랜 기간 일제의 탄압에 우리 국민들은 우리 말과 글을 쓰지 못했다. 국어연구기관이 탄생한 것 역시 얼마되지 않았기에 체계적인 국어 교육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올바른 국어 사용을 훈련하고, 깊은 생각을 거쳐 말하거나 글 쓰는 습관을 가진다면 정확한 국어 사용에 한 발자국 더 다가갈 수 있다”고 그는 말한다. 

 

우리말 다듬기 사업

 

현재 국립국어연구원은 ‘우리말 다듬기’ 행사가 한창이다. 외래어에 해당하는 우리말을 찾아 그것의 새 이름을 만들어주자는 취지다. “기존에는 몇몇 학자들만이 모여 대체말을 정했기 때문에 말을 만들어도 사람들이 따라오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며 남원장은 예전 방식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현재 진행 중인 ‘우리말 다듬기’는 네티즌의 공모를 받고 네티즌의 투표를 거쳐 새말을 탄생시킨다. 인터넷이란 매체를 사용하기에 새말의 보급 또한 빨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현재 ‘댓글’(리플), ‘참살이’(웰빙), ‘안전문’(스크린 도어), ‘쓰레기 편지’(스팸메일), ‘그림말’(이모티콘), ‘다걸기’(올인), ‘꾸림정보’(콘텐츠) 등이 새 이름을 얻었다. ‘우리말 다듬기’ 외에도 표준어 보급으로 인한 방언의 유실을 막고 그것의 보존을 위한 작업, 남북언어의 차이를 연구하는 작업,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에 대한 연구 등 남원장은 현재 연구원에서 많은 일들을 책임지고 있다.


이제는 인쇄된 국어에 대한 연구를 넘어 살아 있는 말을 대상으로 하는 연구가 활발해져야 한다는 남기심 원장. 국어학 연구의 역사가 아직 오래지 않은 우리나라이기에 정년이 지나 학교를 떠났지만, 여전히 그의 어깨는 가벼울 수가 없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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