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교정에 뿌려질 신선한 통찰력을 기대한다"

▲한 학기 열두번씩 돌아오는 신문제작은 신문사 기자에겐 거의 학교생활의 전부나 마찬가지다. 1박 2일 동안 치러지는 제작일정을 모두 소화해내면 심한 피곤이 몰려온다. 제작이 끝나면 그 주 제작에 대해 반성할 점도 다음 제작을 위해 고민할 점도 많지만 계획대로 실천에 옮기는 일은 쉽지 않다. 얼큰한 술 한잔이나 여자친구와의 만남으로 즐기는 휴식의 유혹을 견뎌내기 힘들기 때문이다. 더 좋은 신문을 만드려는 의지와 삶을 즐기며 얻게 되는 행복이 몸 속에서 충돌할 땐 정말 곤란해진다.

▲어쩌면 사회현실에 대한 대학생의 무관심 문제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대학생이 소시민적 가치를 지향하게 되는 것은 개인의 선호선택이라는 차원에서 보면 당연한 결과다. 대학생이 사회문제에 동참토록 하려면 그렇게 하는 것이 더 나은 삶을 가져다 준다는 확신이 주어져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 반대다. 대학생들은 자신의 미시적 삶─학점 따기나 진로준비, 연애나 친교활동 등─에만 충실해도 충분한 쾌락을 얻을 수 있고 삶의 성공도 기대할 수 있다. 아직은 자본주의가 가져다주는 패배와 절망보다는, 그것이 주는 쾌락과 미래를 기대할 수 있는 젊음을 가진 그들이다. 사회참여로 인한 수고로움과 귀찮음,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것이 더 나은 미래를 가져다줄지에 대한 불확실성을 무릅쓰며 그들이 나서주길 바라는 것은 순진한 기대다.

▲역사적으로 민중의 무관심은 지배권력의 부패로 이어진 경우가 많기에 대학생의 소시민화를 보는 눈들이 썩 달갑지만은 않다. 그러나 생각하면 우리사회의 소시민화를 꼭 부정적으로만 볼 일은 아니다. 소시민의식은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달한 선진시민사회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이런 사회의 소시민은 사회변혁에 적극 참여하진 않지만, 합리적 판단력을 갖추고 있으며 자신과 관련된 문제들에 대해서는 효과적 참여와 의사표현을 수행해낸다. 정보의 투명화와 지배이데올로기의 해체 움직임은 이제 우리사회에도 선진적 소시민의 전형을 기대할 수 있게 하고 있다. 그 결과 새만금이나 국민연금문제 등에서 보듯 소시민을 주체로 한 사회문제해결이 차츰 현실화되고 있다.

▲사회의 소시민들에 비해 대학의 소시민들이 무지하거나 비합리적일 것이라 재단하는 것은 무리다. 그럼에도 대학의 소시민들은 무감각에 무감해진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깊은 침묵에 빠져 있는 게 사실이다. 대학생이 합리적 소시민이라는 전제가 틀리지 않다면 그들은 자신에게 부합하는 사회문제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이다. 그렇게 보면 대학생의 참여부족은 대학생이 관심을 가지고 참여할 만한 문제의식이 대학사회에 부재한 탓이란 얘기가 된다. 대학생의 참여문제를 지적하기에 앞서 주시해야 할 점이다.

▲사회변혁에 대한 광범위한 참여는 대학생이 공감할 만한 문제의식을 찾아내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사회의 문제를 대학생의 문제로 전환시켜 공감을 얻으면 소시민형 대학생의 사회참여가 불가능만은 아닐 것이다. 이는 현실을 재해석하는 냉철한 통찰력과 지식을 요한다. 기존의 문제의식을 답습하는 자기만족적 활동과 감성적 지지호소만으론 대학의 소시민에게 냉소를 살 뿐이다. 변혁을 꿈꾸는 자, 진실로 대학생의 참여와 동참을 얻고 싶다면 요구하기에 앞서 더 나은 대안과 이론을 준비하는 게 순서가 아닌지.

/ 정태호 시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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