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지식인 양성을 위한 사회과학대학원

지난 7월 7일 상대 본관에서는 올해 5월 퇴임한 오세철 교수(퇴임·조직행동)를 비롯해 홍훈 교수(상경대·경제학), 경영학과 황선길 강사, 서울대 정치학과 김수행 교수, 중앙대 영어영문학과 강내희 교수 등 국내 좌파 지식인 20여명이 모여 ‘사회과학대학원 설립 공청회’를 열었다. 사회과학대학원(가칭)은 오는 2005년 9월 설립을 계획하며 신자유주의에 맞서는 대안이론의 생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미국적 학문의 극복과 학제간 연구를 위해 

쌀 시장·교육시장의 개방, 비정규직 노동자의 증가, 공기업의 민영화 등 현재 신자유주의의 물결은 매우 거세다. 이런 현실에서 소외계급의 인권을 생각하는 사회주의 담론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체제 아래 현실사회가 요구하는 학문들이 득세하는 지금, 사회주의가 제도권 대학·대학원에서 연구되기란 매우 어려운 실정이다.

사회과학대학원이 국내의 기존 대학원들의 문제점을 답습하지 않기 위해서 이들의 문제점을 파악하는 작업은 필수적. 홍훈 교수(상경대·경제학)는 현재 국내 대학원이 지니는 큰 문제점 중 하나로 ‘학문의 파편화 현상’을 말한다. 학문의 분할을 통한 파편화된 지식과 능력은 학문간의 소통, 연합을 불가능하게 한다. 이를 막기 위해 학제간 연구가 필요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중앙대 영어영문학과 강내희 교수는 학문들의 통합이 이뤄지지 못하는 이유를 “자본주의 사회 내의 기득권자들이 왜곡된 사회체제의 실상을 은폐하기 위함”이라고 지적한다.

대부분의 교수가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현실에서 미국의 학문 패러다임이 한국 대학원 교육에 그대로 수용되는 학문의 종속 현상은 심각한 수준이 이르렀다. 홍교수는 “미국중심의 학문 패러다임의 재생산이 한국의 대학이 맞고 있는 최대 극복 과제”라고 지적한다. 강교수는 또한 “한국의 대학원은 미국 학문의 경연장”이라 지적하며, “학술적 연구의 이론과 방법론, 심지어 목적까지도 미국 중심인 경우가 허다하다”고 강하게 비판한다.

사회과학대학원은 미국 중심의 학문적 종속화 현상을 극복하며 학제간 연구를 통해 사회주의적 담론을 체계적으로 가르치는 교육기관으로써 시도되는 것이다. 오교수를 비롯한 준비모임은 그 대안으로 분과학문을 넘어서 여러 학문이 모두 한 데 통하는 교과과정의 수립에 가장 큰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진보진영의 문제와 좌파운동의 당면과제

현재 국내 진보진영의 움직임은 민족주의 세력과 투쟁의 완화를 통해 타협을 추구하는 진영이 주도하고 있다. 오교수는 이와는 구분되는 ‘좌파의 좌파’라고 자신을 칭한다. “의회활동과 노사정 타협정책은 신자유주의에 포섭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좌파의 좌파’는 현재 소수이며, 그 역량 또한 한 데 집중돼 있지 못하다. 그래서 오교수는 “타협을 하지 않고 신자유주의에 저항하며 순수 사회주의 학문을 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사회과학대학원 설립이 그 직접적인 대안은 될 수 없지만 마르크스 본래의 사회주의를 연구하는 연구자를 양성한다는 점은 이 당면과제의 해결을 시사하는 바가 분명 있다.

대안적 역할의 모색

사회과학대학원의 교수진은 제도권 대학에 들어가지 못한 많은 좌파지식인들을 중심으로 제도권 대학의 현직 교수들을 겸임하게 해서 꾸려진다. 석사과정은 두 개의 반으로 구분되는데, 첫 번째 반은 사회주의에 대한 공부를 하지 못한 노동자나 사회운동가를 위한 교과과정으로, 나머지 한 반은 순수하게 사회주의 관련 학문을 공부하고 싶어하는 학생들로 구성된다.

사회과학대학원 설립의 모델이 되고 있는 미국의 뉴스쿨 대학(New School University)과 독일의 브레멘 대학(Universitat Bremen) 등도 처음의 설립취지는 현재 국내에서 논의되고 있는 사회과학대학원과 그 성격이 유사했으나 모두 신자유주의에 포섭됐다. 그 이유를 사회과학대학원 설립 준비위원회 준비모임 간사인 경영학과 황선길 강사는 “이들 대학이 재정적인 독립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때문에 사회과학대학원의 자금 문제는 현재 매우 심도있게 논의되고 있다. 황강사는 “사회과학대학원은 협동조합의 형태로 대학원의 모든 구성원들이 일정한 자금을 ‘십시일반’하고, 동시에 사회적인 모금운동도 펼쳐 자금을 마련할 것”이라 말한다. 실질적인 의미에서 모두가 주인인 학교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의 대안을 찾는 사회주의의 연구에 심혈을 기울이고, 각 분야의 교수들이 모여 통합된 학문체계를 공부할 수 있는 교과과정의 수립을 구하는 사회과학대학원. 언제나 이 시대의 ‘대안’으로 그 역할을 다 하기 위해서는 처음의 이상을 잃지 않는 굳은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