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데드피쉬- 네여자 이야기'

항 속의 물고기가 죽었다. 물고기의 힘 없는 몸이 물 위로 떠오른다. 죽음을 통해 비로소 평생을 갇혀 살던 어항 속을 탈출하려 하듯이. 『데드피쉬(Dead fish)―네 여자 이야기』의 원작자 팸 젬스(Pam Gems)는 어항 속 물고기를 보며 연극의 제목을 생각했을까. 여성을 둘러싼 억압과 불평등을 향해 물음표를 던진 주인공의 죽음. 그래서 연극의 이름이 ‘데드피쉬’일지도 모르겠다.

영국의 작은 아파트에는 네여자가 살고 있다. 여성운동을 하는 피쉬(배종옥씨), 이혼 후 아이들을 뺏길 지경에 처한 두자(추귀정씨), 악착같이 돈을 벌어 유학을 떠나고자 하는 스타스(정세라씨), 잦은 낙태로 거식증에 시달리지만 밝은 성격을 가진 바이올릿(소희정씨).

주인공 피쉬는 아파트 밖에서 강인한 여성운동가로 비쳐지지만, 연인을 잃고 돌아온 좁은 아파트 안에서 힘없이 무너져버리는 나약한 인물이다. 누구보다 당당한 모습으로 “여성들이여!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라고 외치던 그녀의 목소리가 슬프게 기억되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반면, 피쉬의 절친한 친구 두자는 이혼 후 돈 한푼 없이 쩔쩔매는 자신을 보며 절망한다. 하지만 아이들을 되찾는 과정 속에서 자립 의지를 확고히 한다. 또한 가난 때문에 몸을 파는 스타스는 자신의 삶에 비참함을 느끼기도 하지만 결국 유학의 꿈을 이룬다.

여성운동가로 성장해가는 피쉬를 받아들이지 못한 피쉬의 연인은 그녀에게 이별을 고한다. 그와의 이별을 통해 어머니로서, 여성운동가로서의 완벽해짐이 불가능함을 깨달은 피쉬는 일상의 의욕을 상실, 결국 죽음을 택한다. 어머니로 승리한 두자와 커리어 우먼으로 거듭나는 스타스. 이 두 삶을 모두 갖길 원했으나 주저앉고 마는 피쉬. 작가는 이러한 인물을 통해 여성의 불완전한 현주소를 짚는다. “우리는 행복해지길 원하지만 남자들은 그걸 원치 않아”라는 피쉬의 독백은 여성에 대한 남성의 억압을 폭로한다.

주인공들은 또한 여성들간의 우정과 서로의 끈끈한 유대를 보여준다. ‘싸나이들의 의리’에만 익숙했던 관객들에게 이들의 다독거림은 잔잔한 감동을 안긴다. 가정에 헌신하느라 포기했던 사진집을 두자에게 선물하는 스타스, 피쉬의 생일파티를 준비하는 친구들의 진심어린 마음은 여성이기에 이해할 수 있는, 여성이기에 보듬어 줄 수 있는 그들 우정의 증거다.

이 연극은 ‘이것이 여성이 걸어가야 할 길이다’ 식의 정답을 내놓지 않는다. 무대 위의 네 여자를 통해 여성의 현재와 비극성을 그대로 보여줄 뿐이다. 이들이 그려내는 서글픈 자화상을 직시하고 용기어린 목소리를 내야 하는 주체는 결국 ‘여성’이다. 그러나 극 마지막에 흘러나오는 구슬픈 왈츠는 남성을 적대시 하는 것이 답이 아님을 함축한다. 파트너 없이 출 수 없고, 서로간의 배려와 균형이 중요한 왈츠…. 남성과 여성, 이 둘이 더 아름다운 왈츠를 추려면 서로의 박자에 맞출 줄 알아야 한다. 네 여자의 목소리는 오늘도 조화로운 왈츠를 꿈꾼다.

오는 10월 10일 까지.(문의:☎ 334-5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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