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촌 거리 영화 읽기

‘신촌(新村)’이라는 이름에 내포된 수많은 의미들. 어떤 이들은 ‘젊음이 흐르는 거리’라고 하고, 어떤 이들은 ‘유흥으로 가득찬 거리’라고도 말한다. 신촌이 배경인 영화 두 편. 지난 1970년대 대학생들의 모습을 진솔하게 그린 『바보들의 행진』과 조금은 발칙한 결혼관을 보여준 『결혼은, 미친 짓이다』(아래 『결혼은…』) 속에는 신촌의 어떤 얼굴이 비춰져 있을까.

송창식의 노래 「왜불러」가 깔리며 장발을 한 대학생들이 경찰을 피해 열심히 도망간다. 옆학교 여학생들과의 미팅을 위해 한껏 멋도 냈건만 장발단속에 걸리는 바람에 미팅에도 늦어버렸다. 이는 지난 1975년에 개봉한 『바보들의 행진』의 한 장면으로 우스꽝스러운 추격이 벌어지는 바로 이 거리가 신촌이다. 20여년 전의 영화에서 오늘날 신촌의 모습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스쳐지나가는 상점 간판에 보이는 ‘신촌’이라는 단어가 그 곳이 신촌임을 확인시켜 줄 뿐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 이름만큼이나 시시각각 모습이 변하는 신촌, 그 속에서 갈 곳을 잃고 방황하는 청년들의 모습. 주인공 병태는 ‘우리들의 시대’를 꿈꾸지만 어떠한 확신도 갖고 있지 않다. 또다른 주인공 영철은 술만 마시면 “동해바다에 있는 고래를 잡겠다”며 큰소리치지만 그는 아무것도 자신의 힘으로 해본 적이 없다.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 정체된 자신들을 발견한 그들은 변화를 꿈꾼다. 결국 병태는 군대에 가고, 영철은 동해바다에 뛰어든다. 이 작품의 주인공들이 질주했던 신촌의 거리에는 그 당시 젊은이들의 고민이 묻어난다.

개방적인 결혼관을 다루며 새로운 사랑 방식을 얘기한 영화 『결혼은…』. 이 영화의 남자 주인공 준영은 대학의 시간강사다. 준영이 갓 결혼한 친구를 만나는 장소는 신촌의 술집 ‘판자집’이다. 결혼에 대한 확신도, 자신도 없는 그에게 친구가 술집에서 털어놓는 고민들은 결혼의 무의미함만 느끼게 할 뿐이다. 술잔을 기울이며 속내를 드러내는 곳. 젊은 시절의 희망이 이젠 담배연기가 돼 판자집에 자욱하다.

신촌을 다시찾은 이들이 필요로 하는 장소는 화려한 조명과 시끄러운 음악이 가득한 술집이 아닌, 오래된 낙서가 새겨진 거칠은 탁자, 그리고 막걸리가 어울리는 곳이다. 이는 현재 신촌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다. 하지만 추억 속의 신촌은 그런 장소다. 젊음을 기억하게 하는 곳.

판자집을 자주 찾는 월간 『페이퍼(PAPER)』의 편집장 황경신 동문(지난 1988년 영문과 마침)은 “내가 학교를 다니던 시절의 모습은 신촌에서 사라졌다”며 “그 시절을 기억케 하는 공간”이기에 판자집을 찾는다고 말했다. 판자집을 운영하고 있는 최연화씨(45)는 “이제 신촌은 과거를 간직하지 못한 채, 회상해야만 하는 곳이 됐다”며 “대학생들의 치열함과 열정을 잃어가는 신촌의 모습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두 영화 속의 신촌은 ‘신촌’이라는 공간이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가를 말해준다. 젊은이들의 삶의 바탕으로, 마음의 안식처로 위치하던 순간이 이제는 먼 추억이 돼버렸다. 그리고 오늘 신촌을 걷는 우리들은 이 거리에 어떤 추억을 담고 있는 것일까.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