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나뭇잎 하나가

                          ㅡ나희덕

그간 괴로움을 덮어보려고

너무 많은 나뭇잎을 가져다 썼습니다

나무의 헐벗음은 그래서입니다

새소리가 드물어진 것도 그래서입니다

허나 시멘트 바닥의 이 비천함을

어찌 마른 나뭇잎으로 다 가릴 수 있겠습니까

새소리 몇 줌으로

저 소음의 거리를 잠재울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내 입술은 자꾸만 달싹여

나뭇잎들을, 새소리들을 데려오려 합니다

 

또 나뭇잎 하나가 내 발등에 떨어집니다

목소리 잃은 새가 저만치 날아갑니다

 

가을이다. 릴케의 ‘참으로 경건한 가을’도 있고 최승자의 ‘매독 같은 가을’도 있지만, 이런 가을도 있다. 바야흐로 침잠의 계절이기 때문이다. 미래는 보이지 않고 현재의 생은 젖은 모래더미처럼 무겁다. 저 여름에 우리는 너무나 가볍게 살았던 것일까? 때마다 흥분하고 흥분할 때마다 대의와 명분과 아름다움을 남용했으며 그러는 한복판에서 오직 나만의 희열을 즐겼던 것일까? 그래도 시멘트 바닥이 비천한 건 비천한 것이고 저 소음이 영원히 화음인양 착각될 수는 없는 법이다. “누군가 맵찬 손으로 / 귀싸대기를 후려쳐주었으면 싶은 // 잘 마른 싸릿대를 꺾어 / 어깨를 내리쳐 주었으면 싶은 // 가을날 오후”이다.

 

/국어국문학과 정명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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