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츠려든 나의 청춘에도 힘차게 원더풀을 외쳐주자"

▲이따금 유년시절을 보낸 옛 학교를 둘러볼 때면, 내 키보다 훨씬 작아진 낯선 풍경에 어리둥절해지곤 한다. “우리 교실이 이렇게 작았었나?” “이 책상이 이렇게 낮았었나?” 세월의 더께가 쌓여 내 자신이 자란 것은 생각지 못하고, 그저 갑작스레 모든 풍경이 축소된 것이라 믿는 것이다. 사람의 기억은 이처럼 한 방향으로만 흐를 때가 있다.

▲“그땐 참 좋았었지…” 우리는 과거를 회상하며 지나간 시간에 아련한 그리움을 덧칠하곤 한다. 살아온 날의 수많은 장면들 중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만을 ‘일시정지’해, 그 시절엔 모든 것들이 지금보다 훨씬 더 좋았더라고 기억하는 것이다. 하고 싶은 일과 해야만 하는 일, 사랑하고 갈등했던 많은 사람들. 그 안에서 고민하고 방황했던 순간도 있었을텐데, 그때의 아픔들은 아픔이 아닌 듯이 ‘피식’ 웃고 넘어가는 옛 추억들로 자리하게 된다.

▲때때로 우리에겐 지금 이 순간이 가장 버겁게 느껴지기도 한다. “지난 학기 누구는 성적이 몇 점대”라는 친구의 말에 괜시리 우울해지고, 합격을 축하한다며 고시 합격자들의 이름을 나열한 플랜카드를 올려다보며 한숨처럼 “좋겠다”는 한 마디를 내뱉는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이곳저곳 여행도 다니고 싶었는데,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세상은 너무나 바쁘게 돌아가고 있다. 이제는 영어 공부에만, 취업 준비에만 몰두하기에도 빠듯한 시간이란다. 학점이 좋지 않아서, 토플 점수가 높지 않아서, 학교 다닌 것 외에는 별다른 경력이 많지 않아서 현재의 나는 행복하지 않다.

▲‘세상과 불협화음 없이 지나온 청춘이 있다면 그것은 이미 청춘이 아니었을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삶에 있어 아무것도 결정된 것이 없기 때문에 그만큼 더 갈등하고, 흔들리게 된다는 뜻일 것이다. 청춘은 언제나 불안하지만 그래서 더욱 아름답다는 문구에는 진부함을 느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으로 오기까지 오직 나 혼자만이 건너야 했던 사막이 있었음을, 그 사막을 건너온 사람이 바로 나라는 사실을 기억해 낸다면 나를 힘겹게 하는 모든 것들 사이에 ‘여유’라는 이름의 오아시스를 그려 넣을 수 있지 않을까.

▲오래 전 내가 앉아 공부하던 책상을 손으로 쓸어보다 낯익은 낙서 하나를 발견했다. 누구누구는 바보라며 그 시절 유난히도 나를 괴롭혔던 한 아이의 이름을 새겨 넣은 것이다. 이제 보니 유치하단 생각에 웃음밖에 안 나오지만, 어린시절 그때는 분명히 심각했던 일이었을 것이다. 삶이란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어느 영화의 한 대사처럼 웃음도 눈물도 하나의 무늬가 되어 먼 훗날 돌이켰을 때, 추억이란 그림으로 아름답게 완성되는 것. 다만 부끄러운 것은 너울거리는 방황 속에 흔들렸던 순간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나의 오늘을 열심히 살아내지 못하는 것이다.

▲‘원더풀’을 외쳐야 할 청춘은 ‘아빠의 청춘’만이 아니다. 복잡한 세상사에 주눅 들어 움츠려든 나의 청춘에도 힘찬 목소리로 ‘원더풀’을 외쳐주자. 오늘 나의 젊은 날이 아름다운 무늬가 되어 세상에서 오직 나만이 완성할 수 있는 ‘걸작’을 만들어낼 것임을 믿어 의심치 말자.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이 가득 차 있다. 그리고 나의 오늘도 눈부시게 펼쳐져 있다.

/ 김보연 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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