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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전-1> '다름'을 뛰어넘은 조화로움, 퓨전현대사회의 퓨전을 읽다
  • 임인선 기자
  • 승인 2004.08.30 00:00
  • 호수 14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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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이질적인 것들의 뒤섞임, 퓨전(fusion). 이러한 ‘퓨전’은 라틴어에서 ‘섞다’라는 의미를 가진 ‘fuse’가 영어식으로 명사화돼 탄생했다. 인간의 이성에 대한 믿음을 토대로 과학주의가 강조되던 모던시대를 지나, 견고한 이성이 구축해 놓은 옛 질서를 해체시키고 뒤섞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퓨전시대. 우리는 클래식과 팝을 넘나드는 ‘바비 맥퍼린(Bobby McFerrin)’의 곡을 듣고 인문학과 추리가 만난 『다빈치 코드』와 같은 소설을 읽는다. 굳이 이러한 예술 영역을 차치하고서라도, 퓨전은 우리의 음식과 옷, 심지어 우리의 사고 영역까지 닿아 있다.

퓨전의 시작

퓨전은 서로 다른 배경에서 출발한 문화가 하나로 융합돼 새롭게 탄생하는 것이다. 새로운 문화를 경험하고자 하는 욕구는 자신과 타인이 영위하는 삶의 양식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을 때 발생한다. 이는 퓨전이 인류가 문화의 차이를 자각하게 된 이후 늘 있어왔다는 증거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퓨전에 대해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된 것은 언제부터일까.

기호학자 움베르트 에코는 ‘21세기는 다양한 문화가 뒤섞인 잡종적 혼합이 될 것이다’고 예언한 바 있다. 지난 1960년대 후반 마일즈 데이비스(Miles Davis)가 재즈에 락 요소를 끌어들이면서, 퓨전의 기반을 개척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이론과 홍승찬 교수는 “재즈는 자유정신에서 태어난 장르로 늘 새로운 소재가 필요해 과감한 시도에 유연하다”며 “흑인들의 교회음악이나 뮤지컬 속의 멜로디를 가져다가 다시 해체시키는 것이 퓨전재즈 작업”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퓨전은 재즈와 록을 결합시킨 것과 같은 단순한 장르적 혼합, 즉 크로스오버를 포괄하고 있다. 이는 자신의 뿌리를 지키면서 여러 장르를 넘나드는 크로스오버가 퓨전과는 차이가 있음을 보여준다. 홍교수는 “재즈가 국악을 차용한 것은 크로스오버지만 국악으로 볼 수도 없고 재즈로도 볼 수 없는 정도가 되면 퓨전”이라고 말한다.

한 문화가 생기고 정착해가다가 새로움에 대한 갈망으로 ‘섞어보면 어떨까’하는 상상력이, 마치 빨강이 하양을 만나 분홍을 만들어내듯 완전히 새로운 개체를 만들어내는 과정. 그 고착과 변화의 흐름 속에 크로스오버와 퓨전이 있다.

현대사회에서의 퓨전, 그 특수성

헬레니즘과 인도문화의 융합으로 간다라 미술이 탄생했고, 바하가 프랑스와 독일, 과거와 현재를 퓨전시킴으로써 바로크 음악의 시대가 열렸다. 이렇듯 과거에도 퓨전을 통해 새로운 양식이 태어났다. 그렇다면 늘 있어왔던 퓨전과 현대사회에서 논의되는 ‘퓨전’은 같은 것일까. 서울대 미학과 양효실 강사는 “삶과 사람, 공간의 뒤섞임은 인류 역사 이래 항상 있어 왔다”며, “그러나 퓨전을 ‘뒤섞는 현상’을 나타내는 일반적 용어로 볼 것인지, ‘현대사회에서의 퓨전’으로 한정시켜 특수한 용어로 볼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현대사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퓨전은 어느 한 가치에 절대성을 부여하기를 거부하는 ‘포스트모던 다원주의’를 전제로 하고 있다. 현대사회에서의 퓨전은 다원주의 아래 융합과 공존을 모토로 한다. 퓨전이 주목을 받으면서, 타인에 대한 ‘관용’이 중요한 가치로 대두됐다. 이에 따라 모던시대에는 중심에서 소외돼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던 것들이 포스트모던시대에는 가치적 정당성을 지니게 됐다. 홍익대 예술학과 김진엽 교수는 “퓨전의 바탕이 되는 타문화에 대한 관용은 민주사회를 구축하는 데 일조하고, 형식에의 집착을 버리고 자유로운 창작을 가능케 한다”며 퓨전의 긍정적 가치를 말한다.

물론 서로 다른 요소를 섞는다고 해서 모두 ‘퓨전’이라 명명할 수는 없다. 단순한 물리적 혼합만이 아니라, 각 개체 안에 축적된 역사와 문화의 혼합이 일어날 때 그 만남은 빛을 발한다. 예컨대 한 나라의 음식은 그 나라의 문화와 정신, 역사가 담긴 것이다. 따라서 단순히 이것 저것 재료를 섞는다거나 조리법을 응용하는 표면적인 융합만으로는 ‘퓨전음식’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없다. 양강사는 “지루함을 참지 못하는 현대인은 전혀 어울리지 않았던 것들이 섞이는 경험을 새롭게 여기고 즐거워한다”며, “그러나 말초적인 즐거움을 맛보기 위해 추구하는 문화는 역사적 가치가 사라진 빈 껍데기일 뿐”이라고 퓨전의 한계를 지적했다.

테크놀로지의 발전 속에서 전통과 현대, 저급과 고급, 동양과 서양의 경계가 희미해지고 있다. 사람들은 미술 내면에 자연스럽게 배어 있는 영화적 요소를 느끼고, 공간예술 속에서 시간을 발견한다. 그러나 이같은 현상이 퓨전의 궁극적인 지향점인 공존과 어울림의 가치를 담지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한번 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김교수는 “외피적으로 통용되는 퓨전현상으로만 보면 기꺼이 ‘다름’을 수용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며, “중심에서 소외된 개체들을 끌어다 섞는 과정에서 그 대상들에 대한 이해와 배려도 함께 이뤄지는가에 대해서는 고민해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처럼 눈에 보이는 퓨전현상보다는 우리 인식 안에서의 퓨전이 더 중요하다. 철학자 가다머는 ‘내가 가지고 있는 인식의 지평과 대상이 가진 자체적인 인식의 지평이 서로 퓨전될 때 비로소 진정한 이해와 판단이 시작된다’고 했다. 정신 안에 존재하는 인식론적 경계를 풀고, 자신과 대상의 경계를 자유로이 넘나드는 정신적인 퓨전이야말로 지금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퓨전’이 아닐까.

임인선 기자  happy-virus@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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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른 개체들의 섞임과 공존이 이뤄낸 새로운 현상, 퓨전.
/일러스트레이션 이성은 기자 seloving@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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