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식탁에 불기 시작한 맛깔스러운 변화의 바람이 그칠 줄을 모른다. 우리는 그러한 변화의 경향을 “퓨전 요리”라고 통칭하고 있다. 사실 퓨전 요리의 발원지는 미국 서부 지역이다. 일찍부터 아시아 이주민들을 통해 동양의 음식문화를 접할수 있었던 이 지역에서는, 미국인에게 심각한 비만과 성인병의 원인을 음식문화에서 찾았다. 그리하여 동양 요리의 재료와 조리법이 지닌 장점을 서양 요리에 응용·융합시키려고 한 것이 퓨전 요리의 출발이 되었다.

이것이 1990년대 이후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그 의미가 확대되어, 기존 음식이 가진 서로 다른 조리법이나 재료를 융합시키는 것을 모두 퓨전 요리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실생활과의 밀접성을 파고든 다양한 시도와 상업적 변형으로, 이제 퓨전 요리는 가장 태표적 퓨전의 영역으로 자리잡았다. 서로 다른 음식재료와 요리기법 등을 혼합하여 만든 퓨전 음식은, 결코 오늘날에만 국한된 일시적 흐름이 아니다.

퓨전 음식은 서로 다른 문화가 만나 융합하고 발전한다는 점에서, 언제나 있었던 자연스러운 문화교류의 결과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이다. 청강문화산업대 푸드스타일리스트과 김윤성 교수는 “고대부터 지금까지 모든 음식 문화의 역사는 퓨전이다. 그런데 특별히 오늘날 퓨전 요리가 각광받게 된 것은 사람들이 새로운 것을 추구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즉 맛을 통해 색다른 문화를 체험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욕구와, 요리를 통해 창조적인 맛을 선보이려는 요리사들의 노력이 상업성과 결합되면서 퓨전 음식점들이 매우 빠르게 퍼져나갔다는 것이다.

여기에 절대이념을 부정하고 자율성과 다양성, 대중성을 중시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이 음식 문화에 미친 영향도 빼놓을 수 없다. 여러 대학이 자리하고 있어 상업적·문화적 역량이 결집된 신촌에는, 새롭고 신기한 것을 선호하는 젊은이들을 겨냥하여 매우 다양한 퓨전 음식점들이 선보이고 있다. 그 예로, 서양 요리에 주로 사용되던 재료를 이용하여 죽으로 요리하는 ‘콘지 하우스’의 김상용씨는 “많은 사람들이 특이하고 맛있다는 반응을 보인다.”고 말한다.

우리 고유의 음식을 만들되, 모양과 판매 방법에 있어 서양식을 도입한 사례도 있다. 떡카페 ‘동병상련’에서는 낱개로 비닐 포장한 작은 떡이나 케이크 모양의 떡 등을 퓨전 음료와 함께 내놓는다. 또 아이스크림을 스파게티 면 모양으로 만드는 ‘카페 돌로미티’는, 한 가지 음식에 대해 다른 음식의 식기와 모양으로 연출하는 퓨전 음식의 예이다.

그러나 퓨전 요리가 단순히 여러 음식들의 뒤섞임에 그칠 경우, 한 순간의 유행만을 좇아 고유 음식의 맛을 파괴하는 악영향을 초래한다는 지적도 있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원재료의 특징과 영양을 저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독창적이고 조화로운 맛을 창조해야 한다.”라며 퓨전 요리가 나아갈 길을 제시하고 있다. 이제는 주류적 음식문화로 자리잡은 퓨전 음식, 상업적 편리를 넘어선 창조자의 안목과 그에 발맞춘 향유자의 더 높은 욕구가 퓨전된다면 그 길은 결코 어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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