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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전-2> 화려한 섞임 속의 어두운 그늘퓨전의 이면을 만나다
  • 윤성훈 기자
  • 승인 2004.08.30 00:00
  • 호수 14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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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초, 많은 아이들이 밤을 밝히며 탐독했던 만화책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드래곤볼』. 이 만화책에서 오공의 손자 ‘오천’과 배지터의 아들 ‘트랭크스’는 자신들보다 훨씬 강한 적과 맞서기 위해 ‘퓨전’을 시도, 이전의 힘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오천크스’를 탄생시킨다. 오천크스를 기억하는 소년들이 훌쩍 커버린 지금, 퓨전이란 코드가 다시금 밀물처럼 다가와 우리사회 전반을 뒤덮고 있다. 오천크스의 힘만큼이나 우리사회에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지니게 된 퓨전, 하지만 그것이 항상 긍정적인 것만은 아닌 듯하다.

새로움인가, 정체인가

‘퓨전은 문화의 ‘새로움’과 ‘정체’에 대한 이중 간증이다.’ 문화평론가 노염화씨는 그의 글 「퓨전문화-뒤섞음 속에서 피어나는 가능성 혹은 지루함」을 통해서 퓨전을 이와 같이 정리한다. 서로 다른 종과의 잡종 교배를 통해, 양자의 특성을 훌쩍 능가하는 새로운 것을 탄생시킨다는 것이 ‘퓨전의 새로움’에 대한 설명. 하지만 퓨전이 궁극적인 새로움은 될 수 없다는 것이그의 지적이다. 재즈음악에 장구와 쇠를 치는 퓨전공연 또한 새로운 것이긴 하지만, 원래 존재했던 두가지 요소를 그대로 가져와 사용한 것이다. 이는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말을 퓨전이 매우 적극적으로 실현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결국 퓨전은 ‘새로움’인 것 같으면서, 동시에 ‘정체(停滯)’다. “완전히 새로운 것은 있을 수 없다 하더라도, 넘쳐나는 퓨전화 경향은 창조의 작업을 매우 쉽게 생각하게 한다.” 미디어아트연구소 양기찬 연구원의 이같은 지적은 퓨전이 위험부담을 기피하는 안이함을 야기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기존의 패러다임을 뛰어넘어 새로운 것을 창조하려는 수고를, 퓨전은 격려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에 서로 뒤섞여 새로움을 창조하려는 퓨전은 역설적이게도 나태함으로 회기하고 만다. “퓨전이 창조적 조화를 얻지 못하면 뒤죽박죽, 혼돈이 된다.” 인천카톨릭대 종교미술학부 조광호 교수는 이처럼 단순히 섞는 것만으로는 성공한 퓨전이 될 수 없음을 얘기한다. 국악에 대한 깊은 조예 없이, 서양 악기의 연주에 단순히 우리네 전통악기를 두드린 공연이 성공적일 수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 퓨전이 만연하고 있는 만큼, 충분한 고려 없이 섞어 만들어 버린 퓨전도 적지 않은 듯하다. 이에 양 연구원은 “현재 많이 공연되고 있는 실험적인 퓨전연극, 퓨전음악 등이 상업적으로 이용되며, 그 완성도 또한 떨어지는 것이 많다”며 질이 낮은 퓨전작품이 많음에 우려를 표시한다.

정체성의 문제

퓨전은 서로의 경계를 넘나들며, 기존의 폐쇄적인 문화의 해체 작업에 큰 성과를 이뤄냈다. 대중문화와 고급문화 사이의 경계가 희미해졌고, 지구 이쪽편의 사람들이 그 반대편의 문화에 대해서도 그 이질성을 이해하게 됐다. 문화의 배타성 문제를 크게 해결한 점에서 퓨전의 활약을 가히 칭찬할 만하다. 하지만 이는 또다른 문제점을 야기시켰다.

“정체성은 지키면서 퓨전을 수용해야 한다.” 조교수는 퓨전을 통해 만들어진 새로운 것의 우세로 인해, 기존의 것이 완전히 퇴화할 수 있음을 환기시킨다. 퓨전화된 국악만을 많을 사람들이 찾는다면, 정통 국악은 서서히 사라지고 말 것이며, 퓨전화된 전통음식이 고유의 것보다 더 많은 사랑을 받는다면 기존의 것 또한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만다는 것이다. 한 예로 퓨전 스타일인 개량한복이 나오면서, 많은 사람들이 전통한복보다 개량한복을 더 선호하고 있다. 전통한복이 지닌 불편함을 없애고 현대에 맞는 것으로 재창조했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많지만, 고유의 것에 대한 관심이 오히려 희석될 수 있다는 점을 좋은 현상으로만 치부해버릴 수는 없다.

“고유의 정체성을 지키는 순수함이 시대를 이끌어 갈 수 있는 창조적 생명문화의 화두가 될 수 있다”는 조교수의 말처럼, 퓨전화 현상으로 인해 사라지는 많은 것들에 촉각을 곤두세워야 할 필요성은 분명 있는 듯하다.

순수함에 대한, 사람들의 새로운 욕망

“정통 락과 정통 클래식, 그리고 정통 멜로영화가 그립다”는 문과대 밴드부 씨바(SIVA)의 회장 이상훈군(국문·2)의 고백은 새로움을 추구하려 했던 퓨전이 오히려 식상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비빔밥도 먹고 볶음밥도 즐겨먹지만, 대부분은 밥과 반찬을 따로 차려 먹어야 하는 우리네 식생활과도 그 이치가 비슷하다. 새로움을 향한 욕망에 의해 탄생한 퓨전이 거꾸로 지루한 것일 수 있음은 분명 우리들에게 퓨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한다.

퓨전은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동력인 동시에 문화를 정체시키는 역할 또한 하고 있다는 분석, 섞인다고 무조건 퓨전일 수 없다는 견해, 새로움을 좇다가 고유의 것이 사라질 수 있다는 위험성. 현대사회의 가장 굵은 문화적 코드인 퓨전이지만 아직 많은 불안요소를 짊어지고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더이상 새로운 것을 기대하기 힘든 대중문화에 탁월한 생명력을 부여한 퓨전. 치열하게 한 분야에서 새로움을 찾기보단, 경계 너머있는 다른 요소와 합쳐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은 손쉬운 해결책인 것만 같다.

하지만 역시 깊은 연구 없이 만들어진 퓨전은 사람들로부터 쉽게 외면당하기 마련이다. 새로움을 창조하는 데 있어 퓨전이 아닌 다른 대안은 과연 없을까. 위험부담을 감수하더라도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려는 창의적 모험정신이 어느때보다도 그리워진다.

윤성훈 기자  saintangel@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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