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감으로 즐기는 새로운 무대

칠흑같은 어둠이 가득한 무대 위에 파란 야광빛의 도깨비불이 허공을 가른다. 도깨비 나라에 가게된 인디밴드와 도깨비의 리듬 대결. 강렬한 타악기의 리듬이 관객의 귀를 통해 온몸에 전율을 일으킨다. 귀로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오감으로 즐기는 연주. 지난 8월 1일부터 스타식스 정동 아트홀에서 공연되는 『도깨비 스톰』같은 퓨전공연이 최근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있다.

우리나라에 퓨전공연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1990년대 사회 전반에 불어온 퓨전 바람을 타면서부터다. 초기에는 ‘김덕수 사물놀이패’의 공연이 보여주는 국악과 클래식의 만남처럼 서구적인 것과 한국적인 것을 융합한 형태의 공연이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근래의 퓨전공연은 단순히 동서양의 융화를 넘어서 이질적인 장르가 결합되는 탈장르화 현상을 띠고 있다. 공연기획사 ‘제미로’ 송한샘 팀장은 “퓨전공연은 일반 순수 장르의 한계성과 기존의 관행을 극복하기 위한 고민에서 나왔다고 볼 수 있으며 점점 다양화, 세분화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오페라에는 나비 넥타이와 드레스, 국악 공연에는 한복이 어울린다는 등의 고정관념과 매너리즘을 극복하려는 시도라는 것이다.

 “퓨전공연은 공연작품을 풍부하게 하기 위한 예술가의 욕구와 상상력이 발휘된 것이다.” 지난 학기 공연예술비평 강의를 한 오수진 강사는 퓨전 공연이 발생하게 된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뮤지컬에 힙합 공연이 등장하는 퓨전 뮤지컬 『춤추는 i』같은 장르 간 융합 공연, 오페레타(operetta) 원곡으로 뮤지컬을 만든 『천국과 지옥』같이 기존의 장르를 다른 장르로 재구성한 공연, 퓨전 신파극 『보고싶습니다』처럼 현대인들의 감성에 맞춰 옛 것을 재창작한 공연도 이러한 범주에 넣을 수 있다. 퓨전공연은 표현영역의 확장 과정에서 등장한 것으로 하나의 장르로 명확하게 설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공연의 각 장르가 서로간의 장점을 흡수하고 교류하는 것은 공연예술 전반의 의미있는 진보라 할 수 있다.

이들 공연에 대해 오강사는 “한 장르의 표현의 한계를 다른 장르로 보완할 수 있다는 이점을 가지고 있다”라고 말한다. 지난 2월 홍대앞 포스트 극장에 오른 『공간의 기록』 공연이 그 예다. 이 공연은 무대에 영상을 투영시킴으로써 무용에 구체적인 메시지를 부여하고, 미술에는 역동성을 더했다. 또한 퓨전 오페라 『피가로』처럼 대사를 한글로 바꿈으로써 오페라같은 순수 클래식 장르 공연의 무거움을 낮춰 일반 대중에게 한층 더 다가가기도 한다. 이러한 새로운 형태의 공연은 사회가 다변화되면서 다양화된 개인의 문화적 취향을 충족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한편 미디어아트연구소 양기찬 연구원은 “지금까지의 퓨전공연은 다른 장르 간의 융합이 자연스럽지 않았다. 그래서 상업적인 기획이라는 등 융합 의도에 대해 의문을 품는 관객이 많았다”고 말한다. 이처럼 퓨전공연은 경계간의 벽을 허무는 도전정신을 바탕으로 새로운 문화 컨텐츠를 창조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퓨전이란 새로운 공연의 형식이기보다는 공연예술이 가졌던 본질에 더 가까이 가려는 인간의 본능적 욕구다.” 서울 예술대학교 연극과 임형택 교수의 말처럼 한계의 벽을 뚫고 새로운 것으로 비상하려는 창조정신의 표현은 오늘도 우리안에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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