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내 전공의 퓨전화를 살펴보다

‘퓨전전공’ 또는 ‘퓨전교육’. 다소 생소하게 느껴지는 말들이지만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전공의 퓨전화’는 대학 내에 서서히 퍼져가고 있다. 퓨전전공은 연합전공, 복합연계전공 등 다양한 이름으로 시행되고 있지만 학문의 통합을 통해 시너지 효과를 얻겠다는 의도를 공유하고 있다. 퓨전전공을 통해 서로 다른 영역의 학문이 결합, 독특한 전공 영역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기술융합은 과학의 미래다

이러한 추세는 그동안 세계적으로 경쟁력있는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끊임없이 기술 간의 융합을 시도해온 이공계 분야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전통산업에 첨단기술을 접목시킨 자동차 텔레메틱스가 두 가지 이상의 인접 학문이 결합된 대표적인 경우라고 할 수 있다. 텔레메틱스는 자동차, 항공기, 선박 등 운송수단과 외부의 정보 센터를 연결해 각종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게 하는 기술이다. 정보기술과 생명공학의 융합학문인 생물정보학은 그동안 쉽게 알아내기 어려웠던 생물학적 정보를 컴퓨터를 이용해 보다 명확하게 밝혀내는 분야다.

한국공학한림원 이기준 원장은 “현대사회는 기술융합의 시대이기 때문에 기존의 학문 체계로 대처할 수 없고 학제간 연구를 위한 새로운 틀이 필요하다”는 말로 ‘퓨전전공’의 필요성을 밝혔다. 몇몇 대학에서는 현재 기술융합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 중이다. 올해 안으로 착공 예정인 한양대 퓨전전기기술응용연구센터와 오는 2006년에 개원하게 될 서울대 차세대 융합기술원 등이 주목받고 있는 연구소다. 또한 건국대는 올해부터 이공계 분야의 학문들을 통합·연구하기 위해 신기술융합학과를 대학원에 개설했다. 건국대 항공우주공학과 윤광준 교수는 이 학과의 설립 목적을 “생명과학기술(BT), 정보기술(IT), 우주항공기술(ST), 나노기술(NT) 등 ‘4T’ 분야를 종합 연구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실용성을 살린 연합전공

지난 2002년부터 영남대에서 실시하고 있는 연합전공제도 역시 학과 간 퓨전 방식을 적용하고 있다. 중어중문학 전공과 경영학 전공이 융합돼 만들어진 차이나―비지니스 전공과 공학 관련 전공과 경영학 전공 간의 연합인 i―비지니스 전공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영남대 상경대학 학장 김진삼 교수는 “연합전공이 대학에 개설돼 있는 기존 연계전공과는 달리 독자적인 하나의 전공으로 인정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두 가지 전공을 이수해 두 개의 학위를 받게 되는 복수전공이나 이중전공과도 다른 의미로 통용되고 있다. “‘실사구시’를 바탕으로 기업에서 일할 수 있는 전문인력 양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김교수의 말처럼 연합전공의 수업은 산학협력체제를 통한 실무교육과 현장교육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연합전공제도를 활용해 차이나―비지니스를 전공하고 있는 영남대 김대연군(경영·4)은 “이러한 제도들은 지방대학 학생들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말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폭넓게 이뤄지는 퓨전교육 이공계 분야나 경영학 분야만큼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최근에는 한의학 분야에서도 퓨전전공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 2003년 원광대는 특성화 우수대학 사례발표회에서 ‘한의약학 중심 퓨전교육을 위한 맞춤형 교육과정 개발 운영’을 모토로 내세웠다. 원광대는 경쟁력이 있다고 여겨지는 한의학과 약학을 중심으로 다른 학문분야와 퓨전교육을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계획의 일환으로 올해부터 한방생명과학전공과 한약자원개발학전공, 한방식품영양학전공 등을 신설해 복합연계 전공으로 운영하고 있다. 우석대도 ‘퓨전의학’을 표방하며 새로운 전공을 만들어냈다. 한의학과, 약학과, 특수교육과, 유아 특수교육과 등 4개 학과의 특성을 접목시켜 탄생한 한방재활의학 전공은 퓨전전공 중에서도 독특한 전공에 속한다. 우석대 한의학과 이상룡 교수는 한방재활의학에 대해 “마약환자나 발달장애아동을 침술이나 한약으로 치료하는 방식”이라며, “한방 치료가 국한된 분야만 다룬다는 인식을 전환시켜주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우석대는 이 분야를 특화해 한방재활연구센터를 건립, 연구와 교육을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 ‘

'퓨전'전공의 조건

이처럼 대학마다 특색 있는 퓨전전공들이 하나 둘 생겨나고 있는 것은 2000년대의 시대적 코드가 퓨전이라는 점에서 더 이상 낯선 일이 아니다. 하지만 단지 두 가지 전공을 이수한다는 사실만으로 퓨전전공이라는 이름을 얻기는 어렵다. 여러 전공이 융합돼 하나의 독자적인 전공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의미를 가질때 ‘퓨전’이라는 말을 붙여도 어색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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