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인기 있고 가장 많이 팔렸으면서도 가장 읽히지 않는 과학책 ‘시간의 역사’의 지은이, 휠체어 위의 천재, 우주의 진실에 가장 가까이 가 있는 인간… 숱한 수식어를 달고 다니는 스티븐 호킹은 ‘내기’에도 열심인 것으로 유명하다.

1975년에는 쌍성계로 알려진 백조자리 X-1이 블랙홀 시스템인지를 놓고 캘리포니아 공대의 킵 손과 내기를 걸었다. 블랙홀 연구에 정진하면서 블랙홀의 존재를 확신하고 있던 스티븐 호킹은 아이러니컬하게도 블랙홀이 없다는 쪽에 내기를 걸었다. 킵 손이 블랙홀이 존재한다는 쪽에 표를 던졌음은 물론이다. 스티븐 호킹의 설명은 자신이 내기에서 진다면 자신의 이론이 맞았음이 밝혀지는 것이고, 만약 진다고 하더라도 내기에서 이긴 대가로 잡지를 무료로 구독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일석이조라는 뜻이다. 결국 잇따른 관측의 결과로 백조자리 X-1이 블랙홀 시스템임이 밝혀졌다. 스티븐 호킹은 졌지만, 그의 이론은 살아 남았다. 내기에 진 대가로 포르노 잡지 펜트하우스 구독권을 킵 손에게 보냈다. 덕분에 킵 손은 잔뜩 화난 아내에게 온갖 변명을 늘어놓아야만 했다.

또 다른 내기에서 스티븐 호킹이 또 다시 졌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지난 7월 21일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열렸던 ‘제17차 일반상대성이론 및 중력에 관한 국제학술회의’에서 스티븐 호킹은 자신이 1975년 발표했던 블랙홀에 관한 이론이 일부 틀렸다고 인정하면서 또 다른 이론을 제시했다. ‘블랙홀 정보 역설’이라는 제목으로 한 시간 가량 이어진 이날 강연에서 스티븐 호킹은 블랙홀로 들어갔던 정보가 방출될 수 있다고 믿는다면서 자신의 1975년 이론에서 한 발짝 물러났다. 블랙홀은 흔히 빛조차 탈출할 수 없고 어떤 물체든 빨아들여서 영원히 빠져나올 수 없게 하는 중력이 아주 강한 괴물 천체로 알려져왔다. 블랙홀 주위의 사건의 지평선을 넘어간 물체는 영원히 블랙홀에 갇혀버린다는 것이다. 블랙홀로부터는 아무 것도 되돌아 나올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서 스티븐 호킹은 1975년 그의 논문에서 블랙홀도 ‘호킹 복사’라고 불리는 블랙홀 증발 현상을 통해서 에너지를 방출하며 결국에는 질량을 상실해서 소멸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호킹 복사는 비가역적인 현상이어서 일단 한번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 버린 정보는 다시는 방출되지 않고 블랙홀이 소멸하면 함께 사라지게 된다는 것이다. 즉, 블랙홀로 들어간 정보는 블랙홀의 소멸과 더불어 영원히 소멸해버린다는 것이다. 우주의 아주 작은 영역에 적용되는 양자역학의 관점에서 이 이론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해보자. 양자역학의 기본이 되는 불확정성원리에 의하면 진공은 텅 빈 상태가 아니라 양자요동에 의해서 여러 소립자 쌍들이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곳이다. 블랙홀의 사건의 지평선에서 이런 현상이 일어난다면, 생성된 입자 쌍 가운데 하나는 강한 중력의 영향으로 블랙홀로 빠져 들어가 버릴 것이고, 따라서 다른 하나는 소멸되지 못하고 밖으로 튀어나갈 것이다. 우리 관점에서 보면 이렇게 튀어나온 입자를 블랙홀로부터 방출되는 입자로 관측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밖으로 튀어나오는 양의 에너지를 갖는 입자와 같은 수의 음의 에너지를 갖는 입자가 블랙홀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이다. 이렇게 음의 에너지가 블랙홀에 지속적으로 들어오면서 블랙홀의 질량은 서서히 줄어들게 되고, 결국에는 블랙홀 자체도 증발해버린다는 것이다. 블랙홀로 들어간 모든 정보도 함께 영원히 사라져버린다. 그런데, 문제는 블랙홀로 들어간 정보의 완전한 소멸에 있었다. 스티븐 호킹의 블랙홀 증발 이론은 어떤 경우든 정보의 완전한 손실은 있을 수 없다는 양자역학의 기본적인 원리와 정면으로 어긋난다는 점에서 계속해서 다른 학자들의 공격을 받아왔다.

스티븐 호킹은 극단적으로 강한 중력장 아래에서는 양자역학의 법칙에 예외가 생기는 아주 특이한 자연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는 논리로 자신의 이론을 옹호해왔다. 이번 국제학술대회에서 스티븐 호킹이 인정한 부분이 바로 이 정보의 복원 가능성이다. 그는 블랙홀에 들어간 정보가 방출될 수도 있다고 믿는다고 고백했다. 블랙홀은 빨려 들어온 정보를 완전히 파괴하지 않으며 오랜 시간에 걸쳐서 계속 방출하는데 결국에는 블랙홀 안으로 들어가 버린 정보도 블랙홀 밖에서 다시 복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스티븐 호킹은 지난 30년 동안 줄곳 이 문제와 씨름해 왔다면서 이제야 해답을 찾았다고 했다.

내기 좋아하는 스티븐 호킹은 오래전에 블랙홀 안으로 들어간 정보가 영원히 소멸된다는 주장으로 자신의 정보 손실 주장에 반대하던 캘리포니아 공대의 존 프레스킬과 내기를 한 적이 있었다. 자신의 이론을 먼저 포기하는 사람이 ‘Total Baseball’이라는 책을 사주기로 했던 것이었다. 강연이 끝난 후에 스티븐 호킹은 약속대로 존 프레스킬에게 책을 건넸는데, ‘Total Baseball’을 구할 수가 없어서 크리켓 백과사전으로 대신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일단 블랙홀로 빨려 들어간 물체의 정보는 결국에는 영원히 사라져버린다는 자신의 이론이 틀렸다는 것을 30년만에 인정한 스티븐 호킹이 이번에는 또 어떤 내기를 걸어올까 궁금해진다.

그런데, 정작 블랙홀로 빨려 들어간 정보를 복구할 수 있다는 주장을 해서 스티븐 호킹과의 긴 내기에서 이긴 프레스킬은 “솔직히, 스티븐 호킹이 새롭게 제시한 이론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고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그러니 스티븐 호킹의 블랙홀 이론이 이해할 수 없고 너무 어렵다고 실망하지 말자. 스티븐 호킹과 내기를 걸어 이긴 프레스킬 같은 학자들도 이해할 수 없다고 얘기하고 있지 않은가?

사실, 스티븐 호킹의 새로운 블랙홀 이론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는 아직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새 이론의 정확한 수학적 검증을 위해서는 곧 발표될 예정인 스티븐 호킹의 논문을 기다려 봐야할 것 같다. 어쨌든, 스티븐 호킹이 만들어 가는 새로운 블랙홀 이론이 어떤 모습일지 지켜보기로 하자.

 

/이명현 천문대 연구원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