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농촌체험마을 '비나리'

경상북도 봉화군 명호면에 위치한 비나리 마을(아래 비나리).'비나리'라는 명칭은 마을의 옛 이름인 '비진(飛津)'에서 유래됐다. 나루터로 유명했던 비진을 마을 주민들은 순우리말을 사용해 '비나루'라 불렀고, 이 이름이 세월이 흐르면서 '비나리'로 바뀌었다. 공동체에 대한 인식이 결여된 채 개인주의적인 사고에 젖어있는 젊은 세대에게 새로운 쉼터를 제공할 수 있는 공간, 비나리. 우리의 발길은 이미 자연과 함께 사는 법을 배울 수 있는 그곳으로 향하고 있다.

일상과 예술의 접점을 찾다

비나리는 마을 입구에서부터 소박한 예술의 숨결이 느껴지는 마을이다. 마을 어귀에 위치한 버스정류장은 비나리 미술관을 운영하는 서양화가 류준화씨(42)의 손길에 의해 한적한 시골집의 모습으로 탈바꿈돼 하나의 '작품'으로 다가선다. 또한 마을 곳곳에서 방문객들을 안내해주는 표지판도 마을의 소담한 이미지와 친근한 느낌을 잘 살린 '생활 디자인'으로서의 가치를 지닌다. 미술이 마을 일상으로 초대됐다는 점을 제외한다면 비나리는 논밭이 펼쳐져 있는 풍경을 지닌 시골마을에 불과하다. 이처럼 그냥 보기에는 여느 농촌과 다를 바 없는 마을이지만 비나리는 '녹색농촌체험마을(아래 체험마을)'이라는 특별한 이름을 갖고 있다. 정부에서 직접 선정하는 체험마을은 현재 우리나라에 백여 곳 정도가 지정된 상태다. "다른 체험마을들이 도시 인근에 집중돼 있거나 관광지와 차별성이 없는 것과 달리 우리 마을에는  자본으로 운영되는 상점이 하나도 없다"는 비나리 송성일 총무(43)의 말처럼 이 마을에서는 인위적인 모습을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이처럼 인위적인 면을 배제하고 자연을 잘 보존해온 마을을 체험마을로 만드는 일은 그리 순조롭지 않았다. 신청서를 군청에 제출할 때만 해도 관광상품 없는 '산골오지마을'이라는 이유로 대부분 사람들의 반응이 회의적이었기 때문이다. 비나리의 대표적 체험 공간인 '산속자연농장'을 운영 중인 윤기락씨(42)는 "도시민들의 자연을 즐기고 싶어하는 욕구에 부응하고 문화적으로 소외된 농촌을 새롭게 바꾸자는 문제의식이 비나리를 체험마을로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마을을 찾아와 농사일을 배우고 수확의 보람을 함께 느껴보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윤씨의 말처럼 여러 체험장들이 산업화 이후 단절된 도시와 농촌 사이의 '소통의 장'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 비나리에 흘러온 예술과 첫대면하는 곳. 비나리 미술관의 전경.

/이효규 기자 ehyoehyo@yonsei.ac.kr
비나리에는 기본적인 농사체험장 외에도 '색다른 체험'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마련돼 있다. 비나리 할머니들과 함께 약초를 캐는 '산나물트래킹'이나 시인 안상학씨와 함께 산길을 거닐며 지은 시를 발표하는 '숲속 시인학교'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비나리는 단순히 농사만 체험할 수 있는 '팜스테이(farm stay)' 마을과는 뚜렷한 차별성을 갖고 있다. 이 마을이 일반적인 체험마을과 차별성을 갖는 또 다른 이유는 정부지원 예산의 대부분을 투자해 건립한 비나리 미술관에서 찾을 수 있다. 미술관을 공동운영하고 있는 송씨는 미술관의 역할에 대해 "도시민과 산골 주민들이 만날 수 있는 문화적 공간이라는 의미와 함께 문화적 혜택에서 소외된 지역주민들을 위한 휴식처로서의 기능도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다양한 체험공간과 문화공간은 아무도 찾지 않는 오지마을을 자연과 문화가 공존하면서도 도시민들의 발길이 닿는 장소로 변화시키고 있다. "마을에 같은 또래가 두 명밖에 없기 때문에 가끔 도시에서 찾아오는 아이들을 만나는 일이 기쁘다"는 유은혜양(14)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이러한 변화는 마을주민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비나리에서 부녀회장을 맡고 있는 심봉남씨(48)는 "체험마을로 지정되면서 외지 사람들을 배타적으로 보는 태도가 사라졌다"며, "마을경관이 깨끗해지는 등 많이 발전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주민들의 기대와는 달리 비나리가 '체험'마을로서의 기능을 잘 수행하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아이들의 방학을 맞이해 고향을 찾아왔다는 유영숙씨(38)는 "오빠가 직접 농사체험장을 운영하고 있지만 도시 사람들이 찾아와서 직접 체험을 하는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다"고 말했다. 일주일에 도시 사람들이 한 번 정도 다녀갈 정도로 대부분 체험장들의 이용률이 저조해 도시와 농촌간의 교류의 장이 되겠다는 원래의 취지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리고 "농사일이 바쁘기 때문에 미술관이 지어진 뒤 한번도 찾아가 보지 못했다"고 말하는 심씨의 말처럼 미술관처럼 좋은 문화공간이 있지만 현실적인 이유로 인해 주민들이 많이 이용하지 못하고 있다. 한편 일부 주민들 사이에서는 비나리의 체험마을 지정 사실에 반감을 나타내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그린투어'나 '팜스테이'라는 이름으로 지정된 농촌마을들이 도시 사람들에게 단순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관광지로 전락했다는 사실이 반대의 근거다. 이 곳에서 농사를 지으며 책을 쓰고 있는 정호경 신부는 "'그린투어'의 성격을 띤 채, 무분별한 자본의 침투가 예상되는 체험마을 자체에 반대한다"며, "자연은 그대로 둘 때 가장 아름다운 법"이라고 말해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이처럼 마을이 상업화되는 것을 우려하는 주민들을 설득해나가는 과정도 비나리가 풀어야 할 숙제 중 하나다.   

 

노력으로 영그는 비나리의 꿈

여러 문제점들이 남아 있지만 비나리가 아직까지 희망적인 이유는 더 나은 마을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 있기 때문이다. 비나리 미술관은 『고추그림전』, 『청량산 풍경전』 등 마을의 주변환경을 알리기 위한 전시회와 아이들과 함께하는 '생태미술캠프'를 준비 중이다. 또한 마을 주민들은 비나리를 '정보화 마을'로 만들기 위한 과정의 일환으로 특산물 직거래 홈페이지를 구축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의 중심에는 7년 전 귀농해 마을에서 가장 젊은 세대에 속하는 송성일씨가 있다. 그는 대부분 주민들이 노인들이라서 농업 생산력이 떨어지는 비나리를 '친환경 농업 생산지'로 만들기 위한 프로젝트를 구상 중에 있다. 이 프로젝트는 농사 이외에는 별다른 수입이 없는 주민들에게 경제적인 혜택을 주면서 마을이 상업화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모든 계획들은 농촌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농촌의 생활방식을 경험해보지 못한 도시 사람들에게도 색다른 체험의 장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라 말하는 그의 모습에서 비나리의 '희망'을 읽을 수 있었다.   

문화적 혜택을 받고 있지만 자연이 살아 숨쉬는 휴식처가 필요한 도시 사람들과 자연 속에서 살고 있지만 문화적인 혜택을 거의 받지 못하고 있는 농촌 사람들. 체험마을은 뚜렷한 대안이 없는 양쪽의 고민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 공간이다. 이처럼 도시와 농촌을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하게 될 체험마을이 천박하게 단지화된 관광지로 전락해서는 안된다. 이와 같이 산적해 있는 문제들이 해결된다면 농사와 예술을 결합시킨 독특한 형태의 마을을 꿈꾸는 비나리의 꿈이 실현될 것이다.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