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활의 현주소와 문제점 진단

여름, 바야흐로 농활의 계절이다. 적지 않은 학생들이, 함께 흘리는 땀방울의 감동을 체험하기 위해 더위와 고생을 각오하고 농촌으로 떠난다.

농활이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정형화 된 것은 지난 1990년을 전후해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아래 전대협)과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아래 한총련)이 전국농민회총연맹(아래 전농)과 함께 조직적으로 농민학생연대활동을 추진하면서부터다. 즉, 현재 진행되는 농활은 한총련과 전농이 설정한 기조를 중심에 놓고 학생과 농민이 동등한 위치에서 연대함으로써 정치적 목소리를 키우려는 목적의 '한총련 농활'이다.

그러나 문제는, 최근 들어 농활을 추진하는 연대 주체와 참여 학생, 그리고 일반 농민이 생각하는 '연대'의 의미가 서로 달라지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연대 주체들의 경우 "농민과 학생이 같은 사회적 약자의 위치에서 서로 이해하고, 하나의 목소리를 냄으로써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이 농활의 진정한 의미다"라는 사회대 농활 주체 박천일군(정외·3)의 말에서처럼 정치적 의미의 연대를 강조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농민과 학생의 유대관계라는 의미의 '연대'에는 동감하지만, 정치적 의미의 '연대 활동'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다"는 박영민양(사회계열·1)처럼, 농활을 농촌체험활동이나 농촌봉사활동으로 보는 학생들도 적지 않다. "연대 주체들이 말하는 농활의 의미를 그대로 받아들일 이유는 없다고 본다"는 나민영양(사회계열·1)의 말은, 교조적 성격의 농활에 대해 일반 학생들이 갖는 거부감을 그대로 보여준다.

농민들 중에서는 공동기조의 달성을 위한 연대보다는 학생들이 농촌을 찾는 것 자체에 의의를 느끼는 경우도 많다. "일반 농민들은 학생들이 농촌을 배우겠다는 생각으로 와 주는 것 자체가 고맙고 기쁘다고 이야기한다"라는 전농 충남도연맹 박종찬 정책부장의 말에서 이런 점이 드러난다.

비록 농활대 차원에서 농민-학생간의 이해를 넓혀가기 위해 각종 규정을 준비하는 등 노력은 하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선 실질적 소통과 이해의 통로를 마련하기 힘들다. 최근 빚어진 서울대 농활대 철수 사건은 농활에 대한 이같은 견해 차이가 초래한 문제다. 농활대의 경우 자신들이 생각하는 반성폭력 규율을 함께 연대하는 농민들도 인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반면 학생들과 함께 농촌 현실을 이야기하는 데 의의를 두었던 농민들은 이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연대에 대한 인식이 서로 다른 상황에서 성폭력 문제에 대한 양측의 입장은 판이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연대의 원칙이 더 이상 지켜지기 힘들 것으로 여겨 농활대를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회대 성명서에서도 간접적으로 드러난다. 결국 이번 사건은 참여자들간의 의사소통 과정이 부족한 현재 농활의 한계점을 보여준 셈이다. 이 문제에 대해 서울대 부총학생회장 박경동군(수학·3)은 "오랫동안 문제가 축적되면서 이미 예상됐던 일이다. 현재의 농활에 대한 전면적 재구성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같은 인식이 농활의 연대 주체들 사이에서 심각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도 많다. 우리대학교 총학생회 정책국장 권현준군(법학·4)은 많은 학생들이 농활을 정치적 연대 활동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데 대해 "농활 기간 동안 분반 활동, 교양 토론 시간을 통해 연대의 의미를 이야기함으로써 자연스럽게 풀리는 문제"라고 말한다. 즉 여전히 학생과 농민의 연대 활동을 통해 더 큰 정치적 힘을 이끌어내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형태상으로 정형화·관성화돼 각각의 구성원들의 견해차를 반영하지 못하는 농활은 이제 과도기를 맞이하고 있다. 농활에 대한 참여자들의 인식도 매우 다양화되고 있다. 이렇게 변화하는 농활의 의미와 성격에 대해서는, 농민과 학생이 서로를 이해하고 유대를 강화한다는 기본목적의 연장선에서 논의돼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제는 정형화된 목적과 형식에서 벗어나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소통할 수 있는 새로운 연대를 모색해야 한다는 견해가 설득력을 얻는다.

 /시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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