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사정신 퇴색에 규탄의 목소리 높아, 범인 색출 어려워

 지난 6월 10일 아침 9시경 중앙도서관(아래 중도) 앞에 세워져있던 고(故) 이한열 열사 영정이 칼로 훼손된 채 발견됐다.

사건은 총학생회(아래 총학)가 6월 8일부터 이틀동안 열린 ‘이한열 열사 17주기 추모식’이 끝난 9일 밤, 잠시 영정을 중도 앞에 세워둔 사이 발생했다. 총학의 말에 따르면 사건 발생 당시 영정을 중도 뒤쪽으로 운반하는 남자 2명을 목격한 직원이 있었으나 총학 소속 학생들로 생각하고 제지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훼손된 영정은 현재 학생회관 3층 총학생회실 내 중앙운영위원회실에 보관돼 있다.

사실 이한열 열사 영정 훼손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1988년 9월 29일자 「조선일보」에는 ‘아침 9시경 학생회관 3층에 괴한이 침입해 이한열 열사의 영정에 검은 스프레이로 낙서를 하고 사과탄을 터뜨리고 달아났다’는 기사가 게재됐다. 당시에는 다행히 영정을 복원할 수 있었으나 이번 훼손 정도는 꽤 심각하다. 예닐곱 개의 칼자욱이 영정 곳곳에 그어져 있으며 가장 큰 흠집은 약 70cm 가량이다. 영정을 제작한 민중예술가 최병수씨는 “복원이 사실상 불가능하며, 영정을 새로이 그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총학생회장 배진우군(수학·휴학)은 “이한열 열사의 고귀한 정신을 계승해야 할 때 이러한 사건이 발생한 것을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며, “영정훼손은 열사의 뜻을 해치는 것뿐 아니라 망자에 대한 예의를 지키지 못한 파렴치한 행동”이라고 말했다. 또한 사회대 학생회는 ‘신성한 연세에서 저지른 만행에 대해 준엄하게 경고한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범인 색출을 위한 수사 여부에 대해 배군은 “서대문 경찰서를 통해 수사가 가능한지 알아봤으나 범인 색출이 어렵다는 말에 의뢰하지 않았다”고 답변했다.

지난 5일부터 이틀 동안 상경대 학생회 임원들은 광주 망월동 묘지를 참배하고 이한열 열사 생가를 방문했다. 상경대 학생회장 이수연양(경제·휴학)은 “영정훼손 소식을 듣고 가슴 아파하시던 이한열 선배의 어머니께 면목이 없었다”며, “세월이 흐름에 따라 학생들 사이에서 6월 민주 항쟁의 의미가 퇴색해가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한편 6월 12일 우리대학교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gaorun’이라는 ID를 사용하는 학생이 ‘영정훼손은 학생사회에 대한 영향력 부활을 위해 한국대학총학생연합이 꾸민 자작극이 아니냐’는 의견을 제기함에 따라 온라인 상의 논쟁이 진행되기도 했다. 이에 홍승규군(법학·휴학)은 “음모론 제기보다는 영정 복원을 위한 모금운동 제안 등의 실질적인 논의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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